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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11일 밤, 나는 초등학교 동창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참 술이 거나하게 오를 무렵, 9.11 테러 소식이 전해졌다. 화장실에 간 친구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에게 비보를 전했다. 우린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곧바로 친구들은 두 패로 나뉘었다. 한쪽은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테러를 성토했다. 죄 없는 시민들의 죽음과 정신병자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비행기 자폭에 대해 비난했다.
다른 한쪽은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정책과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사이의 문제에 끼어 들어 부린 만용이 화를 자초했다"며 자업자득론을 펼쳤다. "걸프전 당시에 죽은 수많은 시민들과 뉴욕의 시민들엔 어떠한 차이점도 없으며 9.11 테러만을 놓고 선과 악을 나눌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술자리를 접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자동차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장면을 묘사하는 동시통역사의 음성은 TV화면을 보는 것보다 훨씬 공포를 배가시켰다. 처참한 테러현장을 자꾸만 상상하게 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TV를 켰다. 연달아 일어난 비행기 납치와 자폭, 무너져 내리는 무역센터빌딩과 불타는 미 국방부, 고립된 아내가 남편에게 거는 마지막 전화 음성 메시지는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테러를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테러가 일어난 이후 한동안 온갖 매스컴은 빈 라덴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미국의 상처와 아픔에 대해 깊은 애도와 동정을 갖기에 충분했다. 미국의 보복전은 시간문제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부시정부는 전쟁을 선과 악의 싸움, 중세의 십자군 원정으로 공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이 들었다. 왜 빈 라덴의 테러집단은 미국을 공격했을까? 그들이 정말 광신도 집단이어서 그럴까? 그렇다면 아랍국가들은 테러에 대해 왜 그렇게 열렬히 환호하는 걸까? 왜 매스컴은 그 원인을 이야기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매스컴들은 CNN을 비롯한 미국 방송을 그대로 번역했다. 그러한 보도는 하나 같이 천편일률적이었다. 마치 앵무새처럼 철저하게 미국의 편에서 바라본 뉴스를 전했던 것이다.
왜 미국의 보복전으로 생겨난 수많은 난민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에 관한 논평은 없을까? 왜 뉴욕의 시민들과 소방관들의 죽음에만 한결같은 애도의 뜻을 전할까?
9.11테러 1주년을 맞은 오늘까지 논란은 여전하다. 미국의 음모론도 여전히 팽배하고 선과 악의 구분을 명백하게 나누는 것도 헷갈린다.
하지만 내가 9.11테러를 보며 알게 된 게 있다. 그건 우리나라 언론이 공정한 방송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랍 국민의 목소리에 검은색을 덧칠하고 미국의 대아랍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방영하지 않는 우리나라 언론말이다. 술자리에서도 두 개의 목소리가 서로의 관점을 이야기했는데...
공정한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을수록 내 귓가엔 떠오르는 말이 있다. 내 주위의 지인(知人)은 내게 말했다.
"빈라덴은 아프카니스탄의 안중근이야. 안중근은 일본 쪽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영웅이라고."
언론이란 두 가지 입장을 늘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쪽만을 보여주는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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