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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부처 및 단체들 입을 모아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이대로는 안 된다"


▲ 9월 10일 프란치스코 2층 강당에서 "가정폭력피해자 보호 이대로는 안된다" 토론회 열려
ⓒ 이민주
지난 7월 31일 천안 1391 아동학대 예방센터(이하 천안1391) 상담실에서 발생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남편에게 살해되고 피해자의 남동생이 중태를 입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MBC에서는 상담실 카메라에 잡힌 이 화면을 내보냈고, 엽기적인 살인 사건의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는 시청자들의 항의에 방송사가 사과를 하는 등 물의를 빚기도 했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지 5년째, 그러나 아직도 피해자의 보호에는 허점을 드러내고 있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이 사건으로 인해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한 정부 및 민간의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토론회가 9월 10일 정동 프란치스코 강당에서 열렸다.

보건복지부와 법무부 관계자가 빠진 채 열린 이번 토론회에는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한우섭 사무처장이 사회를 맡고,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가정폭력추방운동센터 배인숙 센터장이 사건개요에 대해 짧은 보고를 하였으며 여성부 인권복지과 정제숙 과장과 경찰청 여성청소년계 이성재계장 및 교육부의 신현옥 여성정책담당관이 참석하여, 이번 사건으로 인한 관련 부처들의 입장과 대처 방안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개죽음이 아닌 승화된 죽음이 되길

특히 토론회의 시작에 앞서 부모대신 피해자를 키웠던 이모가 참석하여 "조카의 죽음이 개죽음이 아닌 승화된 죽음이 되길 바라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고 올바른 제도가 마련되길 바라는 심정일 뿐이다"라면서 아직 사건의 충격에 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눈물로 호소하여 좌중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서울여성의전화 이문자 회장은 이 사건이 "가정폭력 전문기관이 아닌 '아동학대상담소'와 '모자일시보호시설'의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전문성이 결여되어 빚어진 사건"이라고 정의하며, "가정폭력 쉼터가 가장 주요하게 중점을 두는 것은 바로 비밀보장이다. 피해 여성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가해자의 협박이나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피신하는 것"인데 가정폭력 가해자의 이중성에 속아 피해자와 가해자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만나게 한 천안 1391아동학대 예방센터의 잘못을 꼬집었다.

또한 "일부 언론사와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마치 피해자가 어떤 잘못이 있어 살인을 당한 것이라 생각하는 등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진상규명은 뒷전으로 하고 단지 엽기적인 장면을 내보냈다는 사실 자체만 부각되어 앞으로의 대책 마련 등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것은 큰 문제"라고 밝히며, 각 부처 및 관련기관의 개선안이 나올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제언을 곁들였다.

여성부 정제숙 과장과 경찰청 이성재 계장은 모두 "가정폭력과 관련된 부처들끼리의 협의체가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중앙 네트워크의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피해자 보호 방안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아 일선 및 관련 단체들에 전달하였다며, 사건 발생으로 인한 이후 대책 마련에 힘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는 고등학교의 전학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부의 조치가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았음이 밝혀져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의 강한 반발을 들어야 했다.

폭력가정이라고 인정되는 학생들은
무조건 주거지 없이 전학 허용해야


이번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 가정 폭력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자녀의 학업 문제다. 대부분 어머니가 자녀를 데리고 피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때 자녀의 학업이 중단되지 않기 위한 전학의 필요성이 절실해진다.

▲ 서울여성의전화 이문자 회장은 이번 사건이 가정폭력상담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일부 기관들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 이민주
이문자 회장은 "초등학교의 경우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21조 ③항 <초등학교의 장은 학생의 학교생활 부적응 또는 가정사정 등으로 인하여 학생의 교육환경을 바꾸어줄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학생의 보호자 1인의 동의를 얻어 교육장에게 당해 학생의 전학을 추천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인해 어머니에 의한 단독적인 전학 절차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이 법령의 적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피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웃지 못할 경우가 발생한다"며 초중고등학교에 상관없이 폭력가정이라고 인정되는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주거지 없이 전학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토론회에 참석한 부산여성의전화 쉼터 관계자는 "관련 부처에서는 학교장이 잘 이해하지 못할 때는 시,도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하지만 현장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아이들을 전학시킬 때마다 시,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때문에 <전학불만신고센터>를 교육부에서 마련해야 가정폭력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교장들로 인한 피해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 교육부 관련자는 한달이 넘도록 각 시도 교육청에 이번 사건과 관련해 대처방안 공문을 전달하지 않아 참석자들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 이민주
우리나라의 가정폭력은 이미 심각한 수준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부 중 31.4%가 폭력을 경험한다고 한다. 심각하고 명백한 범죄 행위인 가정폭력이 근절되고 이번 사건과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신혜수 상임대표는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은 결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지만 그 주무 부처가 다른 지금, 이를 통합하는 것이 시급한 숙제이다. 다만 그 이전에 관련부처간의 네트워크가 이루어져 보건복지부, 법무부, 경찰 등 관과 민간이 함께 주도하는 정식 협의체를 여성부에서 주관해 시급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면서 "가정폭력문제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교사에 대한 양성평등교육이 연수과정에 마련되는 등 주무부처의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비극적인 가정폭력 살해사건 왜 일어났나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파악한 사건 진상 내용

사건 이후 가정폭력 상담전문기관인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은 창원여성의전화와 천안여성의전화를 중심으로 진상파악에 들어갔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천안 1391은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건 피해당사자(34세, 어린이집 교사 및 음식업)는 가해자인 남편(40세, 무직)과의 사이에 두 딸(16세, 고1/ 9세, 초등3)을 두고 있으며, 피해자의 남편은 택시 운전 중 교통사고 이후 무직 상태에서 피해자가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결혼 생활 15년 동안 피해자는 남편으로부터 "만일 집을 나가면 친정식구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둥의 갖은 협박과 폭력에 시달렸으며, 피해자는 남편의 심한 의처증과 끔찍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이웃이나 친척에게 사실을 숨기며,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남편의 폭력이 심해지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언니네로 몸을 숨겼다.
남편은 피해자를 찾기 위해 두 딸 앞에서 칼로 소파를 찢고, 같이 죽자며 딸의 손목에 칼자국을 내는 등 폭력을 일삼았고, 이를 알게 된 피해자가 주변의 도움으로 두 딸을 데리고 나왔던 것이다.

초등학생인 작은 딸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21조에 3항에 의거하여 보호시설에 기거하면서 인근 학교를 청강생으로 다닐 수 있게 되었으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딸은 보호시설 인근학교로 전학을 시도하였으나 전 학교의 전학 증명서가 필요하다고 하여 보호시설 담당자가 큰 딸이 다니던 아산 H고등학교 관계자에게 상황설명을 4차례나 전화하여 설득했으나, 친권자인 아버지의 요청이 없으면 전학이 불가능하다며 거절당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피해자의 남편)의 누나가 아빠의 폭력으로 엄마와 함께 집을 나간 아이들이 실종되었다고 천안 1391에 신고하였고, 7월 4일 천안 1391은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를 방문하여 실종된 아이들이 창원여성의집에 기거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후 계속 눈물로 호소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나게 하는 주선의 자리를 가지려 하였다. 그러나 창원여성의 집 담당자는 가정폭력 가해자의 이중적인 성향에 대해 설명하고 피해자에게 위험한 자리이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자 천안 1391이 직접 피해자와 통화를 하면서 일을 진행하였고, "그렇게 두려우면 경찰을 입회하게 할 수도 있고, 경찰서 안에서 상담을 할 수 도 있다"고 피해자를 설득하였다.
이에 피해자는 큰 딸의 학교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한 마음으로 어렵게 가해자를 만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천안1391상담소는 경찰의 입회 없이 상담실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옆자리에 앉히고서는 관련서류를 가지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고, 바로 이때 가해자는 양말에 숨겨놓았던 칼을 꺼내 피해자를 죽이고, 피해자의 동생을 중태에 빠지게 하였다.

덧붙이는 글 |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지은이 : 미상   
옮긴이 : 신혜수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제 생일이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지난밤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지요.
그리고 그는 잔인한 말들을 많이 해서 제 가슴을 아주 아프게 했어요.
그가 미안해하는 것도, 
말한 그대로를 뜻하지 않는다는 것도 전 알아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기념일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요.
지난밤 그는 저를 밀어붙이고는 제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마치 악몽 같았어요.
정말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지요.
온몸이 아프고 멍 투성이가 되어 아침에 깼어요.
그가 틀림없이 미안해 할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날이라거나 무슨 다른 특별한 날이 아니었어요
지난밤 그는 저를 또 두들겨 팼지요.
제가 그를 떠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어떻게 아이들을 돌보고?
돈은 어떻게 하구요?
저는 그가 무서운데 떠나기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거예요.
왜냐하면 오늘 저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오늘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어요.
바로 제 장례식 날이었거든요.
지난밤 그는 드디어 저를 죽였지요.
저를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했지요.
제가 좀더 용기를 갖고 힘을 내서 그를 떠났더라면 
저는 아마 오늘 꽃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위 기사는 한국여성단체연합(http://www.women21.or.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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