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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제학의 태두 아담 스미스는 '한계생산/효용 체감법칙'으로 유명하지요. 밭에 비료를 뿌리고 경작해 농부가 소출을 얻는데 한 평의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단위 면적 당 생산량은 비료를 많이 뿌린다고 무한정 늘지는 않고 곧 한계치에 이르는데 바로 이 시점에서 비료투여를 그치는 것이 최적의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의 맨 첫 장에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요즘의 정보화 사회에서 '한계생산 체감법칙'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경제학자는 아무도 없지요. 정보화 사회는 커녕 심지어 산업사회에서조차 '한계생산 체감법칙'은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초기생산비 투여만 끝나면 단위생산 당 한계비용은 곧 무시할 수준에 이르고 말지요. 더구나 CD 패키지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는 방식으로 구입하면 한계생산비는 그야말로 제로에 근접합니다.

개인적으로 학문의 진리란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수백여개의 원소기호를 알고 심지어 인공원소까지 만들어내고 있지만 플라톤은 물/불/흙/공기의 4원소설을 주장했지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우리가 모르던 또 다른 진리가 발견된다면 플라톤의 4원소설이 오히려 세상의 진짜 모습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20세기의 과학이 자꾸만 극단의 전문화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미세한 영역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지식의 양이 방대해져 거시적 그림을 그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죠.

하지만 강력한 성능을 지닌 컴퓨터가 책상마다 하나씩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사물을 자꾸만 세분하지 않고 하나의 큰 덩어리로 보려는 '홀리스틱 접근(Holistic Approach)'이 새삼 각광을 받기 시작합니다.

홀리스틱 접근이 대세가 되면 우리는 조만간 플라톤의 4원소설이 세상의 본래 모습에 더 가깝다고 결론을 내리게 될 지도 모르죠. 결국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인 진리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우리의 지식 역시 시대의 한계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지난 20세기 인류사, 좁게는 우리 한민족의 비극의 씨앗이 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극한대립 역시 산업시대가 인류에게 선사한 대량생산기술의 사생아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거대자본을 들여 대규모 공장을 짓고 수천명의 노동자를 정시에 출근시켜 규칙적으로 일하게 만드는 것. 결국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20세기 대량생산 기술사회라는 시대적인 테두리 안에서나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시출근이 대량생산사회의 기본규범이 되면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시계 보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시계의 보급 역시 느닷없이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아담 스미스의 한계생산 체감법칙이 농경시대의 세계관이라면 맑스의 자본론은 산업시대의 세계관이죠.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정보화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의 경우 어떤 새로운 경제학적 세계관을 정립해야 하는 것일까요.

지난 세기에 LP와 CD매체를 통해 비싼 값을 주고 사서 듣던 대중음악은 MP3 포맷으로 값 없이 인터넷에서 대량으로 유통되고, 할리우드 영화는 극장에서 개봉도 되기 전에 이미 네티즌의 하드디스크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또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하루종일 접속이 되어있는 네티즌에게 도대체 시계는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벌써 시계는 시간을 일러주는 도구라는 원래의 기능을 잃고 단순히 손목에 차는 패션 악세사리로 전락한지 오래입니다. 공항면세점의 인기품목인 '스와치'는 바로 이런 세상의 변화를 얼른 눈치 채고 재빠르게 적응한 경우라고 볼 수 있겠지요.

한번 주위를 둘러 보시지요. 요즘 휴대폰 들고 다니는 10대 중에 시계 차고 다니는 아이들이 몇이나 되는지.

시계가 똑같은 시간과 장소에 수많은 사람을 모으는데 필요한 산업시대의 유물이라면 24시간 네트워크로 연결이 되어 굳이 시간 약속이 필요 없는 세대가 우리사회의 대세를 이룬다면 그때 경제와 재화의 가치는 어떻게 변할까요?

실제로 요새 젊은 직장인들은 굳이 모여 회의를 하지 않고 메신저를 통해 즉석에서 파일과 자료를 교환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온라인 회의를 선호한다고 하는군요.

소련과 동구의 몰락에 서구는 자본주의의 최후승리라며 환호했고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운위했지만 사실 승자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고 단지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갔다는 것이 진상일 뿐 입니다. 정보화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산업자본은 동구나 서구를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산업시대의 계급구분이 화이트 칼라와 블루 칼라였다면 정보화 시대의 신흥계급은 누가 될까요? 또 그 시대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로 판명 날까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도 세상 어느 곳에서는 끊임없는 변화가 꿈틀거리고 그 향방은 섣불리 예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최근에 많이 언급되는 신흥계급으로 '골드칼라'를 들 수 있지요. 지식과 정보화기술로 무장하고 사이버 세상에서 네티즌들의 영웅으로 부상한 수 많은 별들... 지난 10년의 정보화 과정은 바로 이들의 부침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두서 없는 글 자문자답으로 끝내고자 합니다. 굳이 얼굴 맞대고 볼 필요 없이 언제나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가 도래한다면 시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저는 '사라진다'는 쪽에 걸겠습니다.

jean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테크노 폴리틱스>(시와사회, 2002)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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