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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국관 앞에서. 왼쪽부터 동료, 필자, Libby 그리고 조선족 통역
전시장 한국관 앞에서. 왼쪽부터 동료, 필자, Libby 그리고 조선족 통역 ⓒ 류근하
힘들게 운송해온 몇 천장의 카탈로그가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또한 우리 물건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아볼 수 있도록, 부스를 한 번이라도 기웃하는 이들에게는 인포메이션 데스크 앞에서 카탈로그를 떠 안기듯 나누어준다. 내가 나누어주면 조선족 처자는 현지어로 뭐라 설명하는데, 아는 단어는 '한국'이라는 말 밖에 없다. 하지만 공짜 카탈로그를 품에 안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설명하기는 하는 모양이다.

싸구려 현지식 도시락의 반찬이 어제보다는 못하다. 그래도 찌꺼기 하나라도 남김없이 다 먹는다. 오후의 결사적 전투를 위하여..

오후에도 오전처럼 적극적으로 호객을 해본다. 오전과 다른 게 있다면 내일까지의 전시를 위해 카탈로그의 남은 수량을 가늠질해보며 배포의 강약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강약중강약'으로 손님 유치를 해본다. 동료와 Libby와 조선족 처자도 모두 열심이다. 이들의 수고가 때론 안쓰러워 나이에 걸맞지 않은 농담 나부랭이도 실없이 가끔씩 던져가며 소총들을 쏘아대는 사이에 어느새 폐장이 된다. 옆 부스에서 한 총각이 트럼펫으로 생연주하던 케니 지의 아름다운 선율을 읊조리며 장을 마감한다.

숙소로 가는 버스에 올랐더니 못 보던 처자가 옆 좌석에 앉아 있다. 얼굴 윤곽과 긴 하체를 보니 한족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출발한 지 5분도 채 안되어 그 처자는 자신이 버스를 잘못 탔다며 내려달라고 한다. 우리가 탄 버스는 한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대절 버스인데 이 처자가 행사장 버스인줄 알고 잘못 탄 것이었다. 우리가 누구던가.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 가무를 좋아하는 민족답게 어김없이 노래를 시키는 게 우리가 아니던가.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버스에서 못 내려 준다는 반 강제 협박으로 노래를 시킨다.

동방명주 앞에 선 Libby. 건너편 강가에 황포공원이 있다.
동방명주 앞에 선 Libby. 건너편 강가에 황포공원이 있다. ⓒ 류근하
몇 번의 고사에도 아랑곳없는 우리의 우뢰같은 박수소리에 그 처자는 현지 노래를 마지못해 부르지만 천연덕스럽게 잘도 부른다. 일행 모두는 그 한족 처자의 우연한 무임승차 해프닝에 쾌활하게 웃으며 피곤한 하루의 일과를 말끔히 씻어버린다.

내 나라 음식이 그리워 저녁 식사는 한식당에서 하기로 결정하였다. 오늘도 주문을 받는 아가씨들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동료와 Libby가 식사를 마칠쯤에야 내가 주문한 육개장이 나와 약간은 짜증이 났다. 그러나 오랜만에 맛보는 맛있는 우리 음식에 포만감을 느끼며, 음식점 주인장에게는 주문을 잘못 받은 종업원에게 야단치지 말라는 알량한 너그러움을 베푼 뒤 도시 사냥을 나섰다.

어제의 전례로 보아 무난히 각개 전투를 할 수 있으리라는 Libby를 떼어놓고, 동료와 나는 강 너머의 시내로 향하였다.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는 '황포(黃浦)공원'이다. 넓은 강을 끼고 불어오는 강변의 바람이 시원스러워 무척 살갑지만, 습기를 머금은 탓에 한강시민공원의 나들이보다는 못하다는 느낌이 든다. 공원 길 건너에는 휘황찬란한 불빛들로 치장한 건물들이 서있다. 이 건물들은 예전에 유럽 열강들이 강점한 연합조차지에 세운 것들이란다.

그들은 땅을 뺐는 것도 모자라, 공원 입구에는 '현지인과 개는 출입을 금한다'라는 팻말을 내거는 금수만도 못한 짓거리를 했단다. 한데, 지금은 이 공원과 형형색색의 네온옷을 두른 유럽풍 구건물들이 이 도시의 상징이 되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명소가 된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한 편으론, 쓰라린 과거를 잊지않기 위해 무료로 개방한다는 공원과 그 침략적 건물들을 보며, 구한말의 격랑과 일제시대를 경험한 우리의 아픈 과거가 떠올려지면서 이 나라와의 동지애가 느껴져, 멀고도 가까운 이웃임을 깨닫는다.

상해임시정부청사 입구의 골목. 허름한 골목길이 당시의 간난신고를 대변해 주고 있다.
상해임시정부청사 입구의 골목. 허름한 골목길이 당시의 간난신고를 대변해 주고 있다. ⓒ 류근하
죽어도 발맛사지는 해보아야겠다는 동료의 의향을 따라 간 곳은 유명하다는 '상해한의대 부속 서광병원'이다. 평소에 마사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지 홀 안에는 의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나무통에 담아온 뻘건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니 시원하다. 마사지는 경락을 열어주는 것이므로 음양의 조화가 맞아야 하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마사지를 해주어야 제격이라는 설명과 함께, 앳된 한족 여자 마사지사가 들어와 내 발을 낚아챈다.

마사지하는 중간에 연변에서 온 조선족 한의학 교수가 들어와 발 마사지의 효용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발 마사지를 단순한 피로회복제나 쾌락으로 생각하지 말고, 치료와 진단과 예방을 동시에 하는 일거삼득의 훌륭한 한의 문화를 접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교훈적인 설교이다. 그리고 새벽의 정기를 머금은 음의 기운을 잘 받으려면 졸리더라도 자면 안 된다는 야릇한 말을 덧붙인다.

호리호리한 아가씨의 손끝이 무척 맵다. 발바닥 지압을 할 때는 악 소리라도 내고 싶었지만 남아의 기개를 생각해 꾹 참는다. 나의 위와 신장이 좋지 않다는 족집게같은 진단을 내리는 마사지사에게 허준 선생보다 뛰어난 명의라고 치켜 세워주는 잇속 있는 아부도 떨어본다. 시원한 마사지에 잠이 몰려오지만 새벽의 정기 운운을 상기하며 억지로 눈꺼풀에 힘을 주고 참는 동안 마사지는 끝이 난다. 덤으로 해주는 어깨와 등 안마를 받고 나니, 피곤이 싹 달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 효과가 있었는지, 기분상으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선다. 아마 이제 죽어도 원이 없을 동료의 흐뭇한 표정을 보며.

이렇게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간다. 십 몇억과의 전투와, 한족 처자의 장기자랑과, 제국적 침략의 역사와, 음양의 조화를 피부로 느끼면서 내일을 기약한다. 이불 속에서 쭉 뻗은 두 발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공상을 하며.

안드레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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