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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추석을 지내고 나니 또 한번, 갑자기 쓸쓸해진 느낌이 든다. 평상으로의 복귀가 나의 경우 안정감의 회복과 결부되는 것이 분명한데도, 아울러 쓸쓸한 느낌도 명확하니, 이것 또한 이율배반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해마다, 명절 때마다 겪는 일인데도 그것은 변함이 없고, 더욱이 추석이 지난 뒤의 깊어가는 이 가을에는 쓸쓸함에서 오는 우수도 점점 짙어지는 것 같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 집도 추석맞이 준비 공사가 꽤나 컸다. 그 공사의 거의 반은 팔순이 다 되신 연세에도 집안 살림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계시는 어머니로부터 비롯되고 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일찍부터 배추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굴을 넣어서 '흰젖'이라고도 부르는 무생채 등 여러 가지 김치를 담그셨다. 우리 집 먹을 김치만 담그시는 게 아니다. 이 공사에는 바로 뒷 동에서 사는 가운데제수씨가 도와드리곤 하니 가운데동생 집에도 나누어주어야 하고, 성당 수녀원에도 보내드려야 하고, 추석을 쇠러 대전에서 오는 막내동생 승용차에도 실려보내야 하니 실로 공사가 크다.

이렇게 어머니는 고령에도 몸을 아끼지 않으신다. 당신이 손수 김치를 담그고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서 명절을 풍성하게 쇠는 것을 즐기신다. 당신이 손수 장만한 음식을 자손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시는 재미로, 특히 대전으로 돌아가는 막내아들 차에 이것저것 당신의 노고가 깃든 음식들을 실어주시는 낙으로 사시는 것만 같다.

내년이면 팔순이시니 어머니의 그런 노고와 낙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그저 어머니께서 좀더 오래 사시고, 사시는 동안에는 그런 낙을 놓치시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한편으로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어머니가 계셔서 더욱 가능할 수 있었던 그런 풍경이 우리 집에서 많이 감소하게 되리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고, 그때마다 마음이 지레 아릿해지곤 한다. 직장에 매인 아내가 어머니의 역할을 100% 대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내 아내가 맏며느리답게 심성이 좋고 손이 크니(신체적으로는 손이 작음) 나름대로 다른 방책이나 지혜가 생겨나기도 하겠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 빈자리는 너무도 크고 뚜렷할 것이다.

언젠가 한번 대전에 가던 길에서 눈물이 앞을 가려 차를 멈춘 적이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일로 대전에 가는 일이 종종 있는데, 내가 또 한번 대전에 갈 일에 맞추어서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신 때문이었다. 내가 미구에 대전에 갈 계획임을 아신 어머니는 또 때를 놓치지 않고 김치를 담그셨다. 막내동생 부부가 모두 직장에 매인 몸인 데다가 어린아이까지 딸려 있으니, 항시 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 김치와 함께 여러 가지 밑반찬들을 내 차에 실어주셨으니, 나는 동생 집에 들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 순간 귀찮고 번거롭다는 생각이 드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이게 다 어머니가 계셔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적어도 김치를 실어 나르는 일은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돌연 눈물이 솟구치던 것이었다.

세월은 정녕 유수 같고 화살과 같다. 언제쯤일지 모를 그 마지막 시간을 향해 우리는 세월이라는 물결을 타고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명절에 막내동생 가족이 왔다 가는 일에서 나는 매번 시간의 빠름을 절감하곤 한다. 동생은 명절 하루 전이나 이틀 전에 왔다가 대개 명절 당일 오후에 돌아가곤 하는데, 하루 전에 왔든 이틀 전에 왔든 오는 것과 가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진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차례를 지내고 식사를 하고 성당에 가서 미사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 한 그 모든 일들이 순식간에, 동시에 이루어진 듯한 느낌….

막내동생 가족이 명절 당일 오후에 서둘러 돌아가는 것은 길이 막힐 것을 염려하고 공주 처가에 들를 일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내 집이 너무 비좁아서 불편한 탓이기도 할 터였다. 23평 연립주택에 삼형제 가족이 모두 모이니 집안이 몹시 비좁을 것은 당연지사. 똑같은 평수의 연립주택에서 사는 뒷 동의 가운데 동생 가족이야 하루가 멀다하고 큰집을 들락거리고 한 식구처럼 지내니 불편한 느낌이 덜하겠지만. 32평 아파트에서 사는 막내동생 가족은 아무래도 불편함이 클 터였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막내동생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집이 좀더 좁아진 느낌이었다. 점점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 물건이 늘어나는 데다가, 일 년 사이에 내 책이 더 늘었으니 집이 더욱 좁아질 것 또한 당연지사.

우리 집에서 책은 큰 문젯거리다. 내가 서점에 가서 구입하는 책과 정기구독으로 우송되어 오는 책도 꽤 되지만, 전국 각지의 문인들과 문학단체들이 보내주는 책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니다. 우편 집배원이 한번은 내게 "제가 일 년 동안 갖다 드리는 책이 한 트럭은 될 텐데, 그걸 다 어떻게 처리하십니까?"하고 물은 적도 있었다.

우편 집배원이 가져다주는 책을 가장 반겨하지 않으시는 분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자주 책을 좀 솎아내서 처분을 하라고 성화를 하신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다. 문인들이 심혈을 기울여 저술한 책, 사인까지 해서 우송료 들여 보내준 책을 어떻게 함부로 처분할 수 있는가. 나도 문학단체를 운영하며 어렵게 책을 만들어내는 처지인데, 문학단체들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 땀 흘려 만들어 보내준 책들을 어떻게 함부로 취급할 수 있는가. 모든 책을 일일이 밥그릇 비우듯이 읽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 다하도록 끌어안고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튼 책 처분을 강요하는 어머니와 한사코 책을 끌어안고 살고자 하는 나 사이에는 거의 매일같이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것 자체가 일종의 신경전일 것이다. 그러나 노상 그러고만 살 수는 없는 일이어서 나는 집안의 책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처분할 수 있는 방책들을 강구해 보기도 했다.

이웃들의 동의를 얻어 옥상에 조립식 가건물을 하나 짓는 방안, 근처 공터의 땅을 좀 얻어서 컨테이너 박스를 하나 놓는 방안, 근처 건물의 3층쯤에 방 하나를 얻는 방안 등을 깊이 생각해 보았지만, 무엇 하나도 마땅하거나 수월한 방법이 아닐 것 같아서 그저 고민만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요즘엔 군 교육청 도서관에 몽땅 기증을 해버릴까도 생각중인데, 역시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어머니의 성화에 시달릴 때마다, 그리고 글을 쓰다가 참고할 게 있어서 책을 하나 찾으려고 책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그 책을 찾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대공사를 할 때마다 슬픈 생각이 절로 들곤 한다.

전에는 나로 하여금 수년 동안 1억4천여 만원의 '보증빚'을 갚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미운 감정이며 원망 등이 복받치곤 했지만, 지금은 남을 원망하는 마음보다는 내 무능을 탓하고 한탄하는 마음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작가로서의 무능, 일찍이 진로를 잘못 선택했음에 대한 뼈아픈 후회 등에 사로잡혀 절로 한숨 지을 때가 있다. 요즘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열중하는 아이들로부터 왜 드라마 작가로 나가지 않았느냐는 엉뚱한 말을 듣기도 한다.

순수 문학의 쇠퇴, 소설 작가로 대성하지 못한 내 능력의 한계, 그런 것들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 내게 극복의 노력을 채근해주기보다는 슬픔과 절망감을 안겨주는 것만 같다. 여기에다 자신 없는 내 건강 문제도 결부되어서 점점 더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 같고….

고작 1억 수천 만원의 보증빚을 갚기 위해 허덕거리며 살아온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쩨쩨하고 초라하게 살았는가도 반추하게 된다. 수십 억, 수백 억이라는 금액이 동네 아이들 이름처럼 불리던 온갖 게이트 사건, 국무총리 인준 절차로 시행되었던 인사청문회에서 노정된 지도층 인사들의 갖가지 형태의 부의 축적 실상들을 접하면서 참으로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현실을 내 삶의 십자가로 다소곳이 받아들이는 겸허한 마음도 지니고 있다. 이것 역시 하느님께서 내게 베푸시는 은총이리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나 자신을 위안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어찌 생각하면 오늘의 나의 이런 조건이나 환경만도 내가 믿는 하느님의 얼마나 크신 은총인지…. 이런 과분한 마음으로 진정 불행하고 불우한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비록 지난날을 후회하고 내 무능을 통감하며 살기는 할지언정, 그리고 소설 작가로 대성하지 못하고 이제는 그 꿈을 접고 살지언정 현재의 내 위치에서 계속적으로 최선을 다해 진실과 옳음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비록 이문열씨 같은 큰 영향력은 없을지라도, 그가 태양이라면 나는 고작 반딧불에 불과할지라도 진실과 옳음을 추구하는 삶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 삶의 옳은 길만큼은 내 시야에서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올해도 추석이 지났다. 오늘도 이른 아침에 동네의 가로등과 방범등들을 끄러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니 엊그제까지 만월이었던 달이 그새 벌써 많이 좀먹은 듯 한쪽이 찌그러든 모습이었다. 달은 앞으로 점점 더 작아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없어진 듯했다가 이윽고 다시 생겨나고 점점 자라 오를 것이다. 그러다가는 또 마침내 만월이 될 것이고….

자연 순환의 반복 속에서, 더욱이 이런 가을에는 인생 무상과 관련하는 짙은 우수를 체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고자 한다. 나는 이미 인생의 가을 기에 접어들었음을 잘 알고 있다. 나이와 걸맞은 차원의 인생의 현실적 소득이야 많이 얻지도 쌓지도 못했지만, 겸허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정갈한 우수만큼은 알뜰히 챙기고 싶다.

또 한해 가을이 깊어가면서 내 우수도 점점 짙어질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것이 내 가난을 스스로 존중하게 하고, 내 가슴을 좀더 맑게 하고, 나를 저 겸허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면 나는 가을의 우수를 포만감으로 즐겁게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는 마침내 벼 베기가 모두 끝난 저 텅빈 논의 적막한 벼 그루터기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실보다는 조락 속에 더욱 장엄한 아름다움이 존재함을 체감할 수도 있을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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