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월드컵 때의 아련한 감동이 아직 남아 있는 지금. 갑자기 고대 주변에 붉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띈다. 상점 주변에도 대형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한다. 이 풍경은 신촌 지역에서도 똑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깃발과 머플러까지 준비한 그들을 보며 의아해지지만 잠시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매년 이맘때에 시작되는 연·고대의 교류행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연고전 혹은 고연전이라고 불리는 행사는 매년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사이에서 열리는 5개 종목 운동경기(축구, 농구, 야구, 아이스하키, 럭비)를 주축으로 한 양교 교류의 행사이다. 연고전은 양교 학생의 교류를 바탕으로 하지만 당일의 운동경기를 중심으로 구성이 된다.
이 기간 동안 양교 학생들은 붉은 악마처럼 각 학교의 대표되는 색깔의 옷을 입고 경기장마다 열띤 응원을 펼친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각 학교 주변의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술과 음식을 합법적으로(?) 제공받는 기차놀이와 응원을 즐기며 경기의 여흥을 계속 이어간다.
이 행사는 각 학교 재단과 교우회 등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진행된다. 이 경기를 치르기 위해 학교들은 거액의 돈을 들여 잠실 야구경기장과 올림픽 주경기장 같은 체육시설을 대관할 뿐만 아니라 고대의 경우 경기가 있는 27일과 28일의 모든 수업을 교무처장의 공고를 통해 휴강을 할 정도이다.
이렇게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교측에서도 쌍수를 들고 협조하는 행사에 딴지를 거는 이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안티연고전모임(고대문화, 장애인권위, 여학생위원회, 생활도서관, 이안승진)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실천단과 함께 연고제 기간 동안 토론회와 다양한 그들만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왜 연고전을 반대하는가?
(25일에 있었던 토론회의 내용을 발제자 별로 정리한 것임)
- 학벌주의적 연고전 비판
지금의 연고전은 대학 서열이 비슷한, 명문사학을 자처하는 두 학교가 학벌 우월의식을 즐기는 그들만의 축제이다. 연고전 동안 학생들은 경기장에서뿐만 아니라 잠실과 신촌 혹은 안암을 점거한 채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려고 한다.
거리를 점거한 채 이루어지는 응원과 기차놀이 속에 질서와 배려는 없다. 문제의 핵심은 시민들에게 주는 불편과 주변 상권의 불만을 쉽게 무시한 채 그러한 행동을 하게 하는 연대생/고대생이라는 우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자신은 특별한 의식 없이 경기에 참가하고 그 문화를 즐기고 있을 뿐이라고 부정하기도 하지만 "나는 엘리트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 자신을 엘리트로 규정되고 있다는 것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장애 친화적인 대학문화를 기대하며
월드컵기간 9시 뉴스에서는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위로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천진하게 웃음 짓는 모습을 오버랩하면서 "월드컵은 정상인과 장애인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라는 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하지만 경기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 휠체어에 탄 사람을 통째로 봉고차 트렁크에 싣는 장면은 처절했다.
시종 일어나서 해야하는 응원과 계속 이동해야하는 고연제의 특성상 장애학생들이 함께 하기는 힘들다. 장애학생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거라면 여태까지의 모든 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연고전이 진정한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주류를 이루는 이들만(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의 잔치가 아니라 고대내의 소수자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 왜 모두가 똑같은 모습, 똑같은 목소리인가?
서로 다른 개인이 같은 "공동체"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감동과 즐거움일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을 존중하는 공동체 문화가 아니라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문화 풍토 속에서 형성된 집단주의라면 그 것은 비판받을 지점이다.
"연대,고대!"라는 말 아래 몰려드는 사람들, 일사불란하게 똑같은 동작으로 움직이면서 집단광기에 사로잡힌 모습들, 그리고 이에 대해 왠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나아가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면 거의 반사적 본능과 같이 혐오감을 드러내는 언행들 속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인정하기 싫어하는 집단적 의식이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우월의식과 경쟁심에서 이루어지는 운동 경기와 응원, 대학가를 점거하는 왜곡된 축제에서 무엇이 남는가? 집단주의가 만능이 아니라 개인이 다양함이 존중되는 공동체를 모색할 수 있는 축제가 필요하다.
- 진정한 교육의 발전을 위해
학교와 교우회에게 있어서 연고전은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는 선전물일 뿐이다. 연고전이 만들어내고 있는 맹목적인 애교심과 학벌의식의 강화는 사회 내에서 이들 학교가 가지고 있는 '최고사학'의 지위를 놓치지 않게 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학교의 발전은 그 학교에 들어오는 사람의 '질'을 높임으로서 얻고자 해서는 안되고, 학교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더욱 좋은 교육을 마련해 줄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찾아야만 한다.
연고전이나 학교 선전과 같은 일에 자금을 쏟아 부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각 학교로 향하게 하고, 정작 교육이라는 본연의 목표를 등한시한다면 그것은 학교를 찾아온 학생에게도, 그리고 이 사회에게도 불행이다. 학교에 대한 맹목적 사랑보다 학교가 교육의 공간이라는 바람직한 기준에 얼마나 부합되는가를 끊임없이 살피고, 비판하는 속에서 연고전이라는 행사를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 축제의 새로운 전환을 바라며
이들의 활동이 순탄치 많은 않다. 인터넷 커뮤니티(www.freechal.com/ankomo)에 들어가 보면 이성적 대응보다는 감정적으로 격양돼서 반응하는 많은 수의 학생들의 글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대화의 수단으로 삼은 대자보나 현수막도 얼굴 없는 사람들에 의해 훼손되기 일 수다. 그러나 이들은 '연고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넘어서 보다 적극적인 대안 문화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의 다양함이 존중되는 공동체, 장애/비장애 집단 간에 소통이 단절된 채 한 집단이 일방적으로 문화를 주도하는 것이 아닌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하는 대학, 학생들이 '소비자'와 '구경꾼'의 위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나서서 '만들어져 있는' 공간에 단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 나가는 대안적인 문화의 장으로서의 축제를 기대해 본다.
| | 안티연고전에서 활동하는 사람 | | | "니들 우리 노는데 훼방놓지 마라!" | | | |
| | | ▲ 민준(01, 생활동서관)씨의 인터뷰 사진 | | 안티연고전은 고대 내의 여러 단체가 모여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고대문화(학교 교지), 여학생위원회, 장애인 인권연대, 생활도서관, 이안승진(학벌 없는 사회)등이 참여하고 있다.
25일에는 토론회를 개최하였고 26,27일에는 부분별 행동 마당을 고려대 민주광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며 27일 저녘 7시에는 같은 장소에서 문화제를 계획하고 있다.
안티연고전에 참가하고 있는 민준(01, 생활도서관)씨를 만나 보았다.
- 이 모임이 만들어진 계기는?
"작년에 여학생위원회가 중심이 되어서 안티연고전이라는 활동이 있었습니다. 금년에는 이 취지에 동의하는 4개의 단체가 모여서 자연스럽게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점과 좋았던 점이 있으면?
"저희가 저희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서 Anti라는 개념을 쓰다보니 학생들이 내용을 읽기도 전에 감정적 반감을 가지고 반응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니들 우리 노는데 훼방하지마라"라는 등의 말도 많이 들었고 저희가 만든 대자보다 선전물이 하루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훼손되는 것도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좋았던 점이라면 게시판에 들어와서 취지에 공감한다고 하면서 격려의 글을 남겨주신 분들의 글을 읽을 때죠."
- 폐지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 않은가요?
"저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저희가 제기하고자 하는 것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안티라는 것을 내걸 수밖에 없었고 궁극적으로는 폐지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조금씩 고쳐나가는 선에서는 그 안에 얽혀 있는 문제점을 풀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황승택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