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서울시립대학교에 강의를 나오고 있는 진중권씨(현 서울시립대 철학과 강사)를 만난 건 지난 25일 '예술철학' 수업을 마치고 나서였다.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기 이전에 그의 다양한 이력과 활동에 평소 짜릿한 통쾌함을 적잖게 많이 느꼈던 바, 용기를 내고 자리를 만들어 보았다. 사전에 약속도 없었던 말하자면 나만의 깜짝 인터뷰라고 할까. 그 전 수업에도 괜스레 친한 척 인사를 했던 나를 알아봤는지 우리는 서로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인문학관 앞 벤치에 앉아 짧은 세상사를 주고받았다.
"어떠세요? 우리 학교에 대한 특별한 인상이라도 있는지요? 시립이고 공무원들이 많아서 좀 보수적인 것 같지 않습니까?"
"특별한 인상 같은 것은 없어요. 저는 대학을 구별해서 보거나 하는 건 없거든요. 어딜 가나 젊은 학생들과 같이 있는 걸 좋아해요. 다만 시간당 2~3 만원 수준인 강사료가 거의 착취수준이라는 것은 참 문제죠. 그리고 시립이라서 보수적이라는 것은 우선 말이 안됩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립대보다 더 민주적이어야 하는 거죠. 공익성이 더 강조되어야 하잖아요."
시립과 민주성이 등치 해야지 배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미처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첫 질문부터 범상치 않는 대답에 일순 긴장. 부랴부랴 양해를 구하고 녹음기를 가동시켰다. 그래도 우리학교는 보수적이지 않는가? 그래서 먼저 학내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학생위원회의 교내 활동 제한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학칙상 수업에 지장을 주는 한 외부 정치단체의 교내활동을 제한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전까지 다양한 토론회를 개최해 왔던 이 단체의 활동을 학교측이 제한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몰랐었는데 학생정치위원회는 당연히 허용되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학생들의 이런 활동도 수업의 연장이기 때문이죠. 서구 여러 나라들은 각 정당들이 학생위원회를 갖고 있고 그래서 그 학생들은 각 정당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생회 선거를 통해서 미리 민주주의 연습을 해요. 이런 학생자치활동을 통해서 정부와 의회를 꾸리는 연습을 하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정치에 나가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민노당 뿐만 아니라 여타 정당들에게도 이는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할 부분이에요. 언제까지 당원 없는 당으로 있을 거냐는 거죠. 이것은 사실 민주주의의 미비고 가짜 민주주의거든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막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고 법적 근거도 없죠. 막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죠."
진중권을 수식하는 많은 말이 있겠지만 그를 가장 실질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은 그가 민노당 당원이라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지식인들의 말들이 칼럼으로 포장되어 나오지만 누구하나 특정 정당의 당원임을 밝히고 나서지는 못한다. 난무하는 말만 있지 감히 참여가 없다. 이런 면에서라도 그를 좀 더 이해하고자 던진 질문의 방향과 그로부터 얻을 답변의 해석도 여기에서 출발해야 온당하리라 생각했다. 진도를 더 나가봤다.
"그래서 말인데요 여타 보수 정당들도 적극적으로 학생정치위원회를 만들어서 좀 더 솔직해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까 그것이 자기들의 실력이죠. 그렇게 검증이 되어야하는 겁니다. 이런 것을 통해 자기들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변신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발전이 있는 것인데 아무 것도 안하고 매번 선거 때만 되면 지역감정이나 조작하고 있는 건 원시적이고 야만적이죠. 다만 학생회의 경우에는 학생회는 특정 정파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특정 정치적 정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보편적 상식의 입장에서 견해들을 내냐 되는데 지금 보면 이런 면이 많이 깨졌죠. 예를 들면 특정 정파의 다수가 상층을 장악해서 백만학도의 대표가 된 양 생각하는 것이 학생회 내에서 비민주적인 모습인 것인데 학생들 스스로가 반성해야될 측면이죠. 이런 모습이 우리 때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치더라고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한 것 같아요."
평소 좌파 안의 파시즘적인 모습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 그의 과단성의 면모가 드러난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그의 대학생활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는 적이 분명하게 있었잖아요. 당시 학생회의 운영이 비민주적일 수밖에 없었던 건 민주적으로 해서 일단 공개가 되면 잡혀가니까 학생들이 전권을 모아준 거죠. 당시에는 학생운동이 학생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어요. 데모 안 하는 학생들도 미안해할 줄 알고 그래서 데모하는 학생들 도와주고 숨겨주고 감춰주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못하면서 아직 낡은 모습을 보이고 있죠."
그의 눈에 비친 지금의 우리 모습은 어떻게 얼마나 변했을까. 그리 좋지 않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일단은 공부를 안 해요. 의식수준도 한참 낮아졌고요. 옛날 운동권은 대게 똑똑했고 그래서 학생 대중에게도 매력이 있었어요. 모든 면에서. 삶을 살아도 의롭게 살았어요. 유시민씨 보세요. 자기 후배들이 한 일이고 자기는 있지도 않았지만 그 책임지잖아요. 사과하고. 그리고 그 때는 문화가 있었어요. 소위 대학문화라는 민중문화 탈춤 등이. 지금은 그런 거 없잖아요. 미감이 거의 30년대 북조선 미감이고 구호하나를 외쳐도 촌스럽기 짝이 없어요. 의식수준이나 윤리성이 일반 학생대중보다 못한 면이 많아요."
30년대 북조선 미감이라니. 당시에 남북이 따로 있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튼 역시 그다운 지적이지만 이런 비판도 서슴지 않는 진중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일단은 무작정 재단해 보기로 했다.
"얼마 전 한국의 지식인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보여줬든 논문이 발표됐는데 혹 자신은 어디에 위치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거 순 가짜거든요. 그런 걸 만들어봤자 그 사람이 현실적인 영향력을 갔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죠."
"그래도 굳이 자신을 규정하자면요."
"맨날 이야기하잖아요.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데 안 믿으니까 그게..."
"자유주의자라는 지적도 있는데요"
"자유주의자라는 것은 20세기 상식이거든요. 그건 누구나 다 자유주의자이어야 하는 것이고 자유주의자가 아니고서 어떻게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냐는 거예요. 지금 상황 속에서 개인의 결정권의 자유를 말하지 않고선 사회주의도 보수주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거죠. 문제는 사회주의자이라면 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겁니다. 국유화라는 기본 경제체제, 그리고 전체주의라는 일당독재 체제 입각한 그런 식의 사회주의 국가는 몰락한 것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바탕에서 사회주의가 갖는 의미는 이제 평등과 사회정의에 대한 요구라는 겁니다. 이런 요구들이 각 사회에 맞게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때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좌파들이 사회민주주의 정도 선에서 모여야 되지 않나 생각해요."
그의 이런 발언을 미뤄 짐작하자면 그를 과격(?) 사회주의자로 보기보다는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봐야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게 뭐 그리 중요하겠냐 만은. 대선도 임박하고 해서 정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았다. 특히 진보진영의 여러 움직임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어보았다.
"유시민 씨의 개혁적 국민정당 추진위의 활동을 어떻게 보세요."
"지지해요."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정당설립의 이유가 정말 국민이 바라는 개혁적 국민정당이 없기 때문이라는 데 분명 대안으로서 민노당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민노당이 문을 열고 껴안고 나가야할 세력인데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민노당 자체가 마인드가 낡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왜냐면 일단 그 사람은 민노당이 내거는 그런 식의 강령을 동의하지 않거든요. 민노당 내부에 아직 현실 사회주의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는 세력이 상당부분 있어요. 그래서 사민주의를 얘기하면 이단으로 찍히는 그런 분위기인데 어떻게 대중 정당으로 거듭나겠어요.
우리상황에선 사민주의를 내걸어도 아마 최대 10~ 15% 정도의 지지 밖에 얻기 힘들다고 봐요. 대중들은 정치적 정파니 정체성이니 하는 것에 이제 관심이 없다라는 거죠. 구체적으로 우리의 고통이 무엇이고 과연 어떤 방식을 택해서 해결할 것인지 명확히 해서 대중적 지지를 묶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잖아요. 따라서 우리나라 좌파가 아직 현대화가 덜 됐다 라는 거예요. 그 틈을 유시민씨가 파고 들어온 거죠."
"그럼에도 본인은 일전에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벌인 논쟁에서 민노당의 이번 대선에서의 '의미있는 득표'가 의미 있다고 주장하셨는데요."
"그렇죠. 다양성의 문제죠. 모든 정당이 다 자기 나름의 문제가 있는 것이고 민노당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죠. 하지만 선거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항상 될 사람만 찍는 거 아닙니까. 이것이 가장 큰 적이고 이건 민노당의 책임은 아닌 것이죠. 두번째 민노당 자신의 책임은 낡은 레토릭, 낡은 사고방식, 행동방식, 언어. 이런 것들을 수정하지 못하고 대중들의 운동을 스스로 차단해 버린다는 거죠. 하지만 민노당이 그래도 있어야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실제 다를 게 없거든요. 제대로 된 상황이라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정 파트너가 되어야 하고 민노당이나 녹생당이 연정을 해야되는 건데 정치 역학관계상 민주당과 민노당이 합쳐져야 한다는 상황이 짜증나죠. 그래서 민주당은 맨 날 우리보고 양보하라고 하고 우리는 그럴 수 없다고 하고 그러고 있죠."
당장 급한 눈앞의 승리를 도모할 것인가 미래의 더 큰 승리를 위해서 지금 그 씨를 뿌려야 할 것인가. 언제 생각해도 조급함과 결연함의 대치가 팽팽한 긴장을 이룬다. 무겁고 미세하다. 그래서 좀 큰 주제를 다뤄봤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시급히 극복, 해결해야할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회복지비의 확충이죠. 소득수준에 비해서 사회 안전망이 너무 허술하잖아요. 이는 우리가 이 사회에 태어날 때 안전감이 없다는 거예요. 나에게 어떤 일이 벌어져도 사회가 책임을 지지 않고 모든 걸 나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거죠. 한 마디로 모험이고 사회가 도박판이죠. 이런 위험사회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시스템의 확충이 필요한 거고 그래서 장애인이동권보장, 최저임금제, 제대로 된 의로보험, 적어도 교육에 있어선 대학까지 무상교육 등의 요구를 내걸고 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주장들에 앞장서야할 한국의 좌파들은 종파적인 주장들에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구체적 정책을 가지고 서로 논쟁하지도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규율이 선 당의 당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요."
슬슬 인터뷰를 마쳐야 할 것 같았다. 준비한 질문도 바닥이 났고 워낙에 그의 말이 일사천리라 할 말은 다했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대미를 장식하는 질문은 언제나 보편적이어야 하는 법. 해서 마지막 당부의 말을 부탁했다.
"소위 보수신문에서는 20대가 정치에 무관심하다며 짐짓 걱정스레 굴지만 한편으로 우리학교처럼 학내의 정치활동을 규제하기도 합니다. 대선도 다가오는데 이 시대 젊은 학생들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과 관련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요."
"사람이 정치에 관심을 안 보이는 것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어요. 그건 정치 자체가 우리 삶에 별로 중요해지지 않게 됐다는 거죠.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민주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고 봐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폴리스의 동물이라고 말했잖아요. 폴리스 안에는 인간이 있고 그밖에는 신 또는 동물들이 있다고 했어요. 즉 인간은 폴리스(정치)에 속해야된다는 거예요. 바로 그리스인들에게 정치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방법인 거죠.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정치라는 게 더럽고 치사하다 하더라도 인간이 가장 인간적일 수가 있는 길은 여전히 정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게 좋은 이유는 일단 개인이 정치를 통해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인 것이고. 두 번째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인데 우리나라 정치가 문제인 것은 참여가 안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돈주고 동원해야하고 그럼 돈이 필요하죠. 그 돈은 당연히 검은 돈이어야 할 것이고 그래서 썩는 거고.
그래서 시민들이 정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자기가 보수적이라면 한나라당 들어가서 정말 보수적인 정당으로 만들고 자기가 리버럴하다면 민주당 들어가서 그야말로 리버럴한 정당으로 만들고 좌파라면 민노당 들어가서 그 내부에서 논쟁을 통해서 바꿔내려는고 하는 이런 참여의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근데 '대선에 참여하세요'는 민주당 구호인데..."
기실 우리가 부딪히는 많은 사회 현상과 문제들이 모두 크든 작든 정치와 관련을 맺고 있다. 거친 붓글씨 톤의 현수막에도 교내에 손맞잡은 커플들 사이에도 정치는 자리한다. 2차 대전 당시 나치는 정치를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고 공산주의자는 예술을 정치의 경지로 올려놓았다고 한다. 이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최소한 우리는 이제 정치가 피치 못할 현실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괴물은 되지 말자'고 했던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우린 인간이지 않는가. 바빠진 일상과 번잡한 이 사회가 긴 호흡의 학문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푸념하던 진중권. 그가 다시 장고의 고민 속으로 들어가 새로운 영감과 예리한 통찰로 우리 앞에 다시 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