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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아름다움을 뽐내는 쓰촨(四川)의 한 평야지대.(루얼까이초원의 고산 평야)
석양에 아름다움을 뽐내는 쓰촨(四川)의 한 평야지대.(루얼까이초원의 고산 평야) ⓒ 모종혁
한국인에게 있어서의 쓰촨

한국인에게 쓰촨(四川)은 무슨 이미지로 다가올까? 첫째는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이 떠오를 것이다. 156cm의 작은 단구로, 인구 13억의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덩은 1억 2천만명이 바글대면서 사는 쓰촨지역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유명인일 것이다. 덩은 자신이 추종한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세 번이나 권력 울타리에서 쫓겨나 사지의 문턱까지 떨어졌었다. 하지만 '부따오웡'(不倒翁, 오뚝이)이라는 별명처럼 꺾이지 않는 의지로 다시 재기하여, 결국은 중국 최고의 정치지도자 자리를 거머쥔 불굴의 쓰촨인이다.

둘째로 쓰촨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삼국지'(三國演義)를 들 수 있다. 원대 몽골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골몰했던 나관중이 한족(漢族)을 정신적으로 각성하기 위해 쓴 '삼국지'는 알려진 것처럼 역사서를 바탕으로 둔 장편소설이다. 후한 말엽 중앙집권체제의 약화와 환관세력의 권력농단, 봉건제후의 발흥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위·오·촉 삼국의 성립과 진에 의한 천하통일까지 그린 '삼국지' 후반부의 중심무대 중 하나가 촉(蜀), 즉 쓰촨이기 때문이다. 제갈공명이 일찌기 '천하분열론'에서 언급했던 "땅이 비옥하고 물이 넘쳐 농사를 짓기 적당하고, 산세가 험해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어려운 천혜의 요새"가 바로 쓰촨인 것이다.

셋째로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로, 맵고 짜기로 유명한 쓰촨요리(川菜)를 들 수 있다. 우리 문인들의 문장에도 심심지 않게 등장하는 마파두부(麻婆豆腐)를 비롯하여 셀 수 없이 많은 맵고 짜고 시큼한 중국음식이 모두 쓰촨에서 유래됐다. 기름기가 많고 느끼한 다른 중국요리와 달라서 쓰촨요리는 한국인의 입맛에 딱 제격이다.

쓰촨성 내의 주요 도시·관광지 분포도.
쓰촨성 내의 주요 도시·관광지 분포도. ⓒ 광동여행출판사

"촉 가는 길은 험하고...(蜀道之難, 難于上靑天)"

쓰촨은 긴 시간동안 중국의 중앙무대와 동떨어진 세계였다. 한 때 위·오와 더불어 천하통일을 놓고 쟁패했던 촉은 사마염이 이끄는 진에 의해 허망하게 사라졌다. 촉의 멸망 이후 간혹 이름없는 지방정권이 등장하긴 하지만, 중국사에 있어 정치적 권력은 언제나 북방인들의 손에 좌우되었다. 여기에 진입하기조차 힘든 험한 쓰촨의 지형은 다른 외지인의 접근마저 가로막아 지역의 발전을 저해했다. 안사의 난이후 장년기를 쓰촨에서 보냈던 당대 시인 이백(李白)은 자신의 시 '촉 가는 길은 험하구나(蜀道難)'에서 이렇게 읊었다.

"촉 가는 길은 험하고, (그 곳에서) 파란 하늘을 보기란 힘들다."(蜀道之難, 難于上靑天)

이백 뿐만 아니라 옛 중국인들은 쓰촨에 들어오면서, "무슨 이런 동네가 있담. 물살이 거센 강에 가파른 절벽에 높은 산, 정말이지 들어오기 힘들 땅이군"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게다가 햇볕을 거의 보기 힘들고 후덥지근한 기후 풍토는 건조하고 메마른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 중국 여타 지역과 확연한 차이가 보인다. 충칭(重慶)의 경우 연평균 일조시간은 겨우 1259시간 밖에 안 되지 않고 안개 끼는 날이 68일에 달한다. 이는 중국에서 일조시간이 가장 적은 것으로, 충칭은 공해로 인한 스모그 현상과 더불어 '안개의 도시'(霧都)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얼마나 햇빛을 보기 힘들면 '슈츄엔페이리'(蜀犬吠日,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햇빛을 보고 쓰촨의 개가 해를 보고 짖는다)라는 고사성어까지 낳았을까? 사시사철 흐린 날씨와 여름에는 40도에 가까운 무더위, 끈적이는 습한 기후는 사람들의 성격에도 큰 영향을 미쳐 쓰촨 사람들은 성격 급하고 다혈질로 유명하다.

쓰촨이 가진 오지들

이런 쓰촨에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오지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믿기 힘들 것이다. 허나 쓰촨에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가 무수히 널려져 있다. 해발 500m에 위치한 청뚜(成都)를 중심으로 서쪽 방향은 높고 험한 산세로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다. 인구 1100만명에 달하는 거대도시 주변에 해발 3000~4000m가 넘는 고준설령이 즐비하다면 그대는 믿겠는가? 이런 현실 속에 나라 잃은 티베트인의 슬픔이 깊이 숨겨져 있다면 그대는 이해할 수 있겠는가? 거친 고원지대에까지 한족들의 끊임없는 이주가 이루어지고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자연·문화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그대는 아는지?

첫 여행지 쓰촨을 통해 필자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의 아름다운 풍경를 전하는 동시에, 고난의 세월 속에 눈물 흘리는 소수민족의 아픔을 전하려 한다. 팬더와 대나무의 고향 쓰촨의 미려한 산야를 묘사하면서도 그 안에 파괴되어 신음하는 자연 현장을 고발하고자 한다. 영광과 오욕이 뒤범벅이 된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서부 대개발의 중심지로 재도약을 꿈꾸는 쓰촨지역의 오늘을 조명코자 한다. 한국인에게는 아직 낯선 쓰촨의 여행지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풍습 등을 조사하여 중국 지역학 연구의 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쓰촨이 자랑하는 오지 중 으뜸으로 꼽히는 지우자이꺼우(九寨溝)·황롱(黃龍)·루얼까이(若爾蓋) 일대를 시발로 여행기를 시작하겠다.

험난한 쓰촨 가는 길

머나먼 쓰촨성(四川省)을 가는 방법은 어떤 경로가 있을까?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쓰촨까지의 여정은 실로 험난했다. 먼저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 광저우(廣州) 등지를 경유한 후,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수십 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가야지만 쓰촨까지 닿을 수 있었다.

허나 이제 이런 걱정은 없어졌다. 지난 재작년과 작년 잇따라 서울에서 충칭, 청뚜로의 직항로가 개설되었기 때문이다. 매주마다 3,4차례씩 아시아나 항공과 중국 서남항공이 충칭·청뚜으로 날아가기에 쓰촨 관문의 입성은 한결 수월해졌다.

그렇다면 서울-충칭·청뚜 노선의 항공료는 얼마일까? 아쉽게도 현재 전체 중국노선은 취항항공사가 그리 많지 않은 특성으로 인해 거리가 더 먼 일본, 동남아 노선보다 항공료가 높게 책정되어 있다.

이는 충칭·청뚜 노선 또한 마찬가지여서 현재 왕복표가 52~58만원대를 오르내린다. 여기에 여행사를 통한 5일 이상의 단체투어를 이용할 경우, 가격은 8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따라서 쓰촨 여행길을 나서고자 하는 이에게 경비 부담은 만만치 않다.

비행기 표값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최영택 충칭지점장는 "우리 노선이 비슷한 시기에 취항하고 거리도 더 먼 독일-충칭노선보다 가격이 비싼 것은 사실"이라며 "좌석 점유율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표값이 조금씩 내려갈 것"이라고 귀띔했다.

청뚜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김수현 사장 또한 "아직은 이 지역을 찾는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아 패키지 가격을 내리기 힘들다"라며 '쓰촨은 풍부한 여행상품으로써 갖는 매력이 크기 때문에 제대로 홍보가 이루어진다면 여기를 찾는 분들이 늘어날 것이다. 그 뒤 항공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망했다.

허나 젊은이들에게 고리타분한 패키지투어는 권할 사항은 아니다. 드넓은 중국 대륙을 진정으로 느끼려면, 시간의 여유를 갖고 기차를 이용해 쓰촨을 들어가는 방법이 적격이다. 중국의 민중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생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값진 여행 경험이 될 수 있다. 쓰촨 사람들은 중국 내 다른 지역과는 한국인에게 큰 호감을 지니고 있어 여건이 더욱 좋다.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인으로부터 생생한 현지 정보를 얻을 뿐만 아니라, 무료 가이드에 따뜻한 환대를 받는 행운까지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행 계획을 어떻게 짜는가 하는 점이다. 짧은 1주일 동안의 휴가를 중국의 열차 안에서 썩혀 보내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따라서 시간을 고려하여 안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주 혹은 그 이상의 휴가를 얻은 여행자라면 첫 목적지인 연해지방에서 2,3일 동안 구경을 한 뒤 해당지의 기차역에서 표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경제적 능력과 체력 상태를 고려해서 표를 사야 한다. 중국의 열차는 속도나 객실의 환경에 따라 혹은 좌석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각기 다르다. 따라서 여행경비를 아끼기 위해 무턱대고 싼 기차표를 사는 것은 어리석다.

10시간 이내의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움직인다면, 딱딱한 좌석(잉주오, 硬座)칸에 앉아 주변 경관을 감상하면서 중국인들의 삶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허나 연해지방에서 쓰촨까지는 보통 30시간 이상이 요구되므로 최악의 경우가 아니고서는 잉주오를 이용한 쓰촨 입성은 되도록 피할 것을 권한다. 여행지에 가기 전에 지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극기단련을 위해 잉주오를 구입한 여행자는 무엇보다 인내심을 가지고 같이 앉은 중국인들과 어울리면서 기차 여행을 한다면, 남이 해보지 못하는 좋은 추억을 남길 수도 있다. 중국 기차의 잉주오는 서로 마주보는 구조로 되어 있기에 같이 앉은 사람들과는 쉽게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경비에 여유가 있는 이라면 부드러운 침대(루안워, 軟臥)표를 구입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보통 재력있는 중국인이 타는 루안워 칸에서 생각지도 않는 부자 친구를 사귀어 여행지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두 4칸으로 된 루안워는 밀폐된 객실 형태로 안락한 여행을 즐길 수 있고 승무원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모두 6칸으로 된 딱딱한 침대(잉워, 硬臥)표를 사서, 한국에서 맛볼 수 없는 장거리 열차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주변 중국인들의 잠자고 식사하고 노는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 중국인 문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를 통하든, 중국에서의 여행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적극성,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한 존중이 중국인들과의 교류를 이끌어 내는 힘이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모종혁

덧붙이는 글 | 오늘 1회부터 앞으로 실릴 11회까지의 기사는 2000년 11월부터 2001년 4월까지 동아닷컴 e포터에 실렸던 기사를 재편집하여 내보냅니다. 여행기는 동아닷컴 기사의 일부 표현만을 고쳤고, 여행 정보 기사는 현재 상황에 맞게 다시 썼습니다. 기사 내의 이미지 파일 또한 보충했습니다. 12회부터는 오마이뉴스 독자를 위한 새 기사가 나갈 예정이고, 1부 구채구-황룡이 끝난 이후 중국 서부지역의 다른 오지를 여행한 기행문이 잇따라 나갑니다. 새로운 형태의 여행기에 많은 질책과 비평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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