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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2천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세상의 모습을 드러낸 빙마용(兵馬俑)의 1호갱. 발굴이 모두 끝낸 1,3호갱 외에 2호갱은 아직도 발굴이 진행중이다.
1973년 2천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세상의 모습을 드러낸 빙마용(兵馬俑)의 1호갱. 발굴이 모두 끝낸 1,3호갱 외에 2호갱은 아직도 발굴이 진행중이다. ⓒ 모종혁
이런 시안과 한동안 사랑에 빠진 필자는 1년 반의 기간 동안 본업인 중국어 공부보다는 역사유적 순례에 세월을 보냈었다. 대부분의 강의를 '땡땡이'친 뒤 자전거 한 대에 의지하여 시안 시내 구석구석과 주변에 산재한 유적을 찾아다니기 정신 없었던 경험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필자가 17년 동안 인도와 그 주변 국가를 여행한 후 수많은 경전을 번역하고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남긴 승려 현장(玄奬)의 흔적을 밟기 위해 싱지아오스(興敎寺)를 찾았을 때였다. 한참 현장의 사리가 봉안된 절 경내를 둘러볼 때 일단의 관광단이 부딪친 것은 운명과도 같았다.

열댓 명으로 구성한 '깃발' 여행단은 여느 중국인들과 다름없이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면서 자신들끼리 유쾌하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관광단원끼리 쓰는 말은 아무리 귀를 곤두세워 들어봐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어가 자신이 없었지만 중국 표준어(普通話)와 지방 방언의 차이는 어느 정도 구별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광단원이 내뱉는 말은 너무나도 난해한 방언이었다.

"쓰촨은 하늘이 축복한 땅"

'광둥(廣東)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어느 동네에서 왔을까?' 의구심이 점점 높아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필자는 결국 관광단을 이끌고온 여성 가이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사람들 어디서 왔나요?" 쓰촨 청두에서 온 고등학교 선생님들이라고 친절히 답해주는 가이드. 허나 이를 어쩌랴.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은 나는 곤혹스러웠다. "쓰촨? 어디에 붙어있는 동네인데…." "아니, 쓰촨도 몰라요? 당신 혹시 간첩?"이라 답하는 가이드의 농담에, "아뇨, 저는 시안에서 유학하는 한국인이랍니다"라며 해명에 진담을 뺐다.

순간 "유학생이라고!"하며 리포터에게 몰려든 사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질문들…. "한국 어느 지방 사람이냐?" "어느 학교에서 공부를 하느냐?" "왜 중국에 유학을 왔느냐?" "왜 시안에서 중국어를 배우느냐?" 등등 너무나 갑작스런 주목에 당황했다.

안 되는 말에 전투중국어와 콩글리쉬를 섞어가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사람이 질문을 한다. "쓰촨에 왔었나요? 이후 오게 되면 우리들에게 연락해요." "쓰촨에 뭐 볼 게 있습니까? 여기 시안만 하겠어요?"라며 필자가 시큰둥하게 대꾸하자, 엄숙한 표정으로 일장 연설을 펼치는 선생님들. "그런 소리 마세요. 쓰촨이야말로 역사와 자연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이랍니다. 또 먹거리 많지, 사람들 인심 좋지, 살기 편하지. 그야말로 하늘이 축복한 땅이에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쓰촨

'쓰촨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원래 뻥이 심한 중국인의 과장법이라 여긴 나는 속으로 웃으며 그들과의 만남을 즐겼다. 그 날밤 기숙사에서 한국서 가져온 가이드북을 뒤적이며 쓰촨이 뭐하는 동네인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건 필자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 아닌가?

1987년 고탑(古塔)을 수리하던 중 드러난 지하궁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발견된 파먼스(法門寺). 발견된 사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석가모니 진신사리이고, 지하궁에서 출토된 수많은 문물들은 국보급 진귀품이다
1987년 고탑(古塔)을 수리하던 중 드러난 지하궁에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발견된 파먼스(法門寺). 발견된 사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석가모니 진신사리이고, 지하궁에서 출토된 수많은 문물들은 국보급 진귀품이다 ⓒ 모종혁
청뚜를 중심으로 하여 쓰촨 곳곳이 소개되어 있는 가이드북의 내용은 충분히 마음을 사로잡았다. 좀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곧바로 미국과 일본인 친구에게 찾아가 해당 국가에서 발행된 가이드북을 빌려 새벽녘까지 쓰촨지역을 독파하고 말았다. 그런 후 확신에 차서 내린 결론은 '내년 여름엔 일찌감치 방학하고(?) 쓰촨을 먼저 여행한 뒤, 꿈꾸어 왔던 실크로드로 떠나자'는 것이었다.

이런 목표가 정작 현실로 나타난 것은 지난 97년 6월. 중국정법대학으로부터 입학통지서를 일찌감치 받고, 준다는 어학코스 수료증도 마다한 채 짐을 꾸려 쓰촨으로의 여행길에 나섰다. 정확히 6월 21일부터 7월 18일까지 빠듯한 일정으로 짠 쓰촨 여행을 완수한 것이었다.

마침 그 때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시기와 겹쳤는데, 도교 성지인 칭청산(靑城山)에서 홍콩에 오성홍기가 올라가는 장면을 TV중계로 시청할 수 있었다.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하룻밤의 중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이러했던 쓰촨 여행 하이라이트는 뭐니 해도 지우자이꺼우(九寨溝)와 황롱(黃龍)·루얼까이(若爾蓋)를 들 수 있다. 1주일여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 다녀온 쓰촨의 오지였기에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방중으로 한번 더 가다

'언젠가 한번 더'를 외쳐온 필자에게 다시금 기회가 온 것은 2000년 8월 중순. 오래 전부터 앓아오신 병치료를 위해 충칭을 방문하신 어머니께 중국의 산 좋고 물 맑은 명승지를 보여드리려 애가 탔었다. '비싼 비행기값 치르시고 이 멀리까지 오셨는데, 공해 심한 충칭의 인상만 남겨드리면 안 되는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머리를 스쳐간 곳이 바로 지우자이꺼우와 황롱. 헌데 여기에 난관이 있었다. 97년 여행길에 엄청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어 지우자이꺼우 가는 길이 염려가 되었다. 이에 청뚜에 사는 중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요즘 청뚜 날씨는 어떻지? 지우자이꺼우·황롱을 가려는데 괜찮아?" 조심스러운 물음에 들리는 굿 뉴스. "요새 이곳 날씨는 청뚜 답지 않아. 날씨가 너무 좋아. 지우자이꺼우 가는 도로도 작년에 포장되어서 편해졌지. 너 어머님도 오셨는데 모시고 거기나 다녀오지, 그래?"

이 소식에 바로 어머니를 모시고 청뚜로 달려가게 되었다. 억세게 운 좋게 지우자이꺼우·황롱의 아름다운 절경을 두 번 보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어린 시절이후 처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한 여행길에 나눈 많은 이야기는 모자간의 정을 더욱 깊게 했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지우자이꺼우를 떠오를 때면 언제나 마음이 짠해진다.

지우자이꺼우·황롱을 가려면?

인간세계의 비경인 지우자이꺼우와 황롱에 가려면 어떤 경로로 가야 하는가? 노선은 몇 가지가 있다. 가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문제는 목적지까지 가려는 여행자가 출발점을 어디로 잡느냐에 있다. 만약 쓰촨의 청뚜(成都)에서 출발한다면 선택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떠난다면 철저한 배낭여행을 각오해야 한다. 여기에 최종 목적지를 청뚜로 정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점. 이를 비추어 볼 때 대략 다음과 같은 4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1) 청뚜에서 가는 방법: 여행사 이용하기
대부분의 중국인 관광객이 이용하는 정공법이다. 필자 또한 2000년 여름 어머니를 모시고 중국인들과 함께 중국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했다. 투어 신청은 그리 어려운 점이 없다. 어느 호텔이나 상품을 파는 여행사가 있고, 청뚜 시내 곳곳에 투어관광을 권하는 삐끼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여행 일정이나 코스는 거의 유사하고 가격에 있어도 큰 차이는 없다. 단 외국인만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여행사는 바가지를 씌우니 주의해야 한다. 여름 성수기 때는 대략 600위안(우리돈 9만원) 안팎으로, 초봄 늦가을 겨울철에는 가격이 조금 올라간다.
투어상품의 전체 일정은 보통 4,5일인데, 그 기간내 숙박 교통 식사 입장료 등을 모두 책임진다. 에어컨이 설치된 차량에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탑승해 여행을 함께 한다. 숙박은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비교적 깨끗한 호텔에서 묵고, 매끼 식사는 같이 여행하는 일행들과 조로 나누어 함께 한다. 가이드가 모든 일정을 안내해서 편리하지만, 한정된 장소를 지정된 시간 사이에 구경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하지만 중국 관광객들과 같이 어울릴 수 있어 예상치 않게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오지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이에게 권한다.

2) 청뚜에서 가는 방법: 배낭여행으로 떠나기
1997년에 필자가 배낭여행을 통해 갔을 때는 가는 데만 이틀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지우자이꺼우까지 전 도로가 포장되어 하루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여행자는 먼저 신난먼(新南門)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지우자이꺼우행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아침과 오후 하루 2차례에 걸쳐 출발하는데, 7시 20분에 첫차가 떠나니 서둘러야 버스를 탈 수 있다. 표값은 여름철의 경우 77위안으로, 계절에 따라 약간씩 변동이 있다. 고속버스는 갓 출고된 차량으로, 일반 투어버스보다 좌석공간이 넓고 승차감도 좋은 편이다.
지우자이꺼우로 바로 직행하지 않고 송판(松藩)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도 권할 만하다. 지우자이꺼우와 황롱·루얼까이로 나뉘는 도로의 중간 갈래점이기도 한 송판은 과거 한족과 티베트인 분쟁과 관련된 수많은 역사유적이 있다. 또한 1930년대 홍준(紅軍, 중국 인민해방군의 전신)의 대장정과 투쟁이 낳은 여러 영웅담이 곳곳에 깃들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송판까지 가는 일반버스는 신난먼과 시먼(西門) 터미널 두 곳에 있는데, 차량 수명이 오래되어 좌석이 좁고 지저분하다. 하지만 함께 탄 중국 기층민중 모습을 옆에서 생생히 접하고, 그들과 격의 없이 사귈 수 있는 최상의 기회이므로 불편함을 참길 바란다. 아침 6시부터 하루 4차례 운행을 하고, 표값은 50위안이다.

3) 광유엔(廣元)에서 가는 방법
기차를 타고 가다가 쓰촨 북부 광위안에서 내려서 가는 코스로 일부 서양의 '여행광'들이 이용한다. 먼저 광위안 주변의 관광지를 훑어본 후 떠나는데, 이것만해도 3,4일은 족히 걸린다. 광위안구청(古城) 황저스(黃澤寺) 치엔포옌(千佛巖) 지엔먼슈다오(劍門蜀道) 등 고대 쓰촨문화와 연관된 볼거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 일대를 여행한 다음날 아침 광유엔에서 난핑(南坪)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장장 308㎞의 거리로 같은 날 밤 늦게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열악한 버스여행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지우자이꺼우로 바로 가는 것은 어려우니, 난핑에서 하룻밤을 잔 뒤 지우자이꺼우로 이동해서 구경을 하는 것이 좋다.

4) 란저우(蘭州)에서 가는 방법
이 코스를 택하는 그대는 진정한 여행매니아다. 먼저 그대의 선택에 찬사를 보낸다. 주로 서양과 일본의 자유여행자들이 선택하는 이 코스는 중국에서도 자연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산악루트 중 하나다. 란저우에서 출발해 린시아(臨夏)-시아허(夏河)-허주오(合作)-랑무스(郞木寺)-루얼까이(若爾蓋)-지우자이꺼우로 이어지는 이 긴 여정은, 해발 3000m 이상의 고산지역에 거주하는 티베트인들의 때묻지 않은 생활양식과 신비로운 종교세계를 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라부랑스(拉卜楞寺) 랑무스(郞木寺) 등 비롯한 수많은 라마불교의 사원을 볼 수 있어 우리가 보아온 중국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간수(甘肅)성 란저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아침마다 출발하는 차를 타면 3시간 반이 지난 후 린시아에 도착한다. 린시아는 회족의 자치도시로 별달리 볼 것은 없다. 점심식사후 시간을 내서 시내 곳곳에 자리잡은 이슬람 사원(淸眞寺)을 가보는 것이 좋다. 린시아에서 시아허까지는 4시간 남짓 걸린다. 시아허는 해발 2920m의 고지대로 티베트인들이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라부랑스이다. 1709년에 처음 창건한 라부랑스는 지난 3세기동안 수차례에 걸친 중건을 통해 티베트 라싸(拉薩)의 포달랍궁 다음 가는, 지금의 규모로 성장했다. 라마불교 6대 사원 중 하나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전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으며 불교이론을 연구하는 학교까지 개설되어 있다.
보통 오전 10시 반이 되어야 사원 내를 개방하는데, 정문에 대기하고 있으면 중국 표준어에 능한 승려가 여행객을 이끌고 다니면서 안내해 준다. 시아허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 허주오에 다다르면 눈앞에 드넓은 고산초원지대가 펼쳐진다. 환상적인 초원 풍경을 보면서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어느덧 몸은 랑무스에 도착하게 된다. 랑무스는 간쑤와 쓰촨의 접경지대로, 전원 풍경이 물씬 나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물질문명을 초월한 듯한 랑무스의 라마불교 사원들에는 수백명의 승려들이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넉넉한 수도생활을 즐기고 있다. 랑무스에서 멀지 않은 루얼까이는 고산초원의 중심지로 연평균 기온이 0.7도로 상당히 추운 곳이다. 해발 3500m의 루얼까이 대초원에서 지우자이꺼우까지는 6시간 거리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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