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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6년 전인 1986년 여름에 있었던 한가지 일을 잊지 못한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정당의 대표였던 노태우씨가 충남 도당 행사에 참석하려고 대전에 온 일이 있었다. 그때는 태퐁 '베리'호가 왔다가 막 물러나고 난 직후였다.
태풍 베리는 예상보다는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일찍 물러갔다. 막대한 피해를 예상하고 잔뜩 경계를 했던, 특히 피해 예상 지역에 속했던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예상보다 적은 피해를 큰 다행으로 여겼다.
물론 피해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거듭 말하지만 예상보다 적은 피해였고, 적은 피해라도 피해는 분명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전에 와서 민정당 충남 도당 행사에 참석한 노태우씨의 제 일성이 이런 것이었다.
"여러분의 열기가 태풍 베리호를 녹여버렸습니다!"
그의 그 말에 행사장을 가득 메운 모든 당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하며 온 장내가 떠나갈 듯이 환호성을 올렸다.
노태우씨의 그 말과 온 당원들의 박수와 환호 ―그것을 신문의 작은 '낙수' 기사를 통해 보면서 나는 야릇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공연한 것이겠지만, 큰 아쉬움과 함께 일종의 공포감마저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노태우씨가 만약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거나 어떤 겸허함이 몸에 배인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말만이라도 가령, "피해가 전혀 없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상보다 적은 피해를 주고 태풍이 일찍 물러간 것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지방의 피해 주민들께 위안과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태풍이 일찍 물러가서 우리가 도당 행사를 차질없이 잘 치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 하늘에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하였다면 얼마나 겸손한 태도이며, 또 얼마나 온유하고 아름답고 낭만적이기조차 한 모습이겠는가.
"여러분의 열기가 태풍 베리호를 녹여버렸습니다!"
군인 출신답게, 그리고 5,17쿠데타로 집권한 민정당의 대표답게 박력 있고 패기 있고 자신 만만한 말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는 나름대로 의미 있고 멋있는 말을 하자고 해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소름끼치는 말이기도 했다. 사람의 열기로 태풍을 녹여버렸다니! 태풍까지 녹여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는 당시 그 얘기를 접하면서 집권 여당의 대표라는 사람의 정신세계의 조악함을 확인하는 기분이었고, 그 말에 환호작약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아무리 당파와 관련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나이, 계층, 학력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는 철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오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16년 전의 그 일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태풍까지도 녹여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의 하늘을 울울창창하게 뒤덮고 있는 현상 때문이다.
생각하면 정말 그때나 지금이나 암울한 현상은 마찬가지다. 수많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우리 사회가 급변하며 16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국민의 전반적인 정신 세계나 의식 수준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거나 기형적으로 변해 있는 현상은 내게 참으로 착잡한 심회를 안겨 준다.
그런 음울한 현상을 상징적으로 내포할 수 있는, 다시 말해 권세 있는 사람들이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하늘을 향해 엄포까지 해대고 있는 현실을 시사하는 두 가지의 희화적인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16년의 시차를 두고도 거의 동질의 사건이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에게 내면적으로는 16년의 시간이 너무도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가지 사건은 지난 여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8·8재보선' 직전에 지원 유세장에서 행한 연설의 한 대목이다. 자기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과 관련하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소리 높이 외친 그 강변은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때 나는 '하늘'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매일같이 하는 '주님의 기도' 첫 마디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순간적으로 떠올렸다. 이회창 후보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더불어 깊은 상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천주교 신자인 이회창 후보의 신앙관이 몹시 궁금해지는 상황 속에서 돌연 16년 전의 그 일이 떠올랐다.
당시 민정당 대표 노태우씨가 행한 "여러분의 열기로 태풍을 녹여버렸다"는 말과 16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 민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 이회창씨가 행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이 어떻게 다른가를 흥미롭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말들을 하게 된 상황과 표현 방식은 각기 달랐지만 맥락은 같은 것임을 느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하늘 무서운 줄을 모르니 못할 일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그 결론은 '단군 이래 최대의 도둑'이 되어버린 노태우씨에게서는 이미 사실로 드러나버렸다.
그런데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맥락은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에게서 더 더욱 명확하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인옥씨는 최근에 있은 한나라당 소속 광역·기초단체장 부인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연설을 하던 중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이번 대선에서 기필코 이겨야 한다"며 기염을 토했다고 한다.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말은 우리네 소시민들이 술자리에서나 강팍한 생존 현장의 와중에서 자기 위안 차원으로 하는 상투적인 말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며, 정치 보복의 내음까지 풍기는 섬뜩할 정도의 강고한 투쟁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는 등의 분석들은 너무 단순하고 상투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한인옥 씨의 그런 천박한 발언에서 하늘까지 요절을 낼 수 있는 위세를 지닌 우리 나라 특권층 사람들의 사고 구조를 확인한다. 더 나아가 나이, 계층, 학력과 상관없이 그런 천박한 사고 구조에 물들어 있는 우리 사회 전반의 허약한 체질을 실감한다.
이회창 후보는 연설 원고에 무척 신경을 쓰는 듯하다. 그의 연설에는 '새 역사 창조'니 '국민 대화합'이니 하는 말들이 단골 메뉴로 등장한다.
그런데 오늘 한나라당이 자행하는 일들을 보면 '국민화합'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를 절감하게 된다. 한나라당이 집권을 한다고 해서 국민화합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야당 시절부터, 대선 국면에서부터 집권 후의 국민화합을 염두에 두고 그것의 여지를 만들어가는 쪽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 것이 바로 선진국형 지혜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오늘의 행태를 보면, 오로지 대선 승리에만 철저히 집착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갖가지 '의혹'을 만들어 공세를 가하는 태도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식의 사고 수준과 그대로 연결된다.
그들은 오랜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정치공작 습성에 젖어 있는 탓인지, 모든 것을 공작 차원의 눈으로만 보는 듯하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김대중 대통령의 2000년도 노벨평화상 수상까지도 '로비'의 결과인 양 '아니면 말고' 식의 '유령적 공세'를 가함으로써 나라의 체면을 크게 손상시키는 짓까지 감행한다.
대선 승리만을 생각하고, 국민화합이라는 말만 할 줄 알았지, 집권 후의 국민화합을 참으로 어렵게 만드는 일들을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감행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우리 나라에는 하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국민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국민을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 있다고 생각하니(실제로 그것이 통하는 세상이니), 그들이 어찌 하늘을 두려워하겠는가.
16년 전 민정당 행사 때 노태우씨가 "여러분의 열기로 태풍을 녹여버렸다"고 한 발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16년 후인 오늘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 후보의 입을 통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발언으로 나타나고, 이회창 후보의 부인 한인옥씨의 입을 통해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라는 발언으로도 이어진다.
16년의 시간은, 사회 전반의 숱한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민 대중의 내면에서는 거의 무의미하다. 겉으로는 민주화가 많이 진척되었지만, 국민 대중의 의식 수준은 대체로 겉도는 수준임을 사회 도처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금 '가톨릭 굿 뉴스'를 비롯한 천주교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병원 노조의 파업과 공권력 투입, 그리고 명동성당 단식농성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치열하다.
나는 아직까지 그 논쟁들을 면밀히 지켜보기만 할 뿐 직접적인 의견 표현을 삼가고 있지만, 여기에서 내가 안타깝게 느끼는 것은 한국천주교회의 변모된 모습, 즉 급격한 보수 회귀 현상이다.
한국 민주화 과정의 중요한 견인차였던 한국천주교회가 외형적 민주 발전 이후의 '내실'들을 이룩해가는 일에는 거의 무관심한 것에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책임의식 실종을 읽는다면 지나친 과민이며 독단일까?
일반 사회에는 얼마든지 오만한 교회권력의 책임 방기로도 투영될 수 있는 현실을 굳세게 외면하고 있는 교회 지도층과 함께, 노조원이라든가 노조를 지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제한적인 언어폭력적인 글도 내게는 큰 우려를 안겨준다. 그 글들의 난폭성을 접하다보면 천주교 신자로서 그럴 수가 있을까 싶을 때가 많다.
하늘 두려운 줄 모르는 사실을 만천하에 선포했던 노태우씨의 '태풍 분쇄' 발언 이후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하늘 두려운 줄 모르는 사람들의 '하늘 분쇄' 발언마저 도도히 기승하고, 거기에 환호작약하는 사람들이 많은 오늘, 우리는 대체 어디쯤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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