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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의 사주를 내게 맡기라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선 여인, 백경은 가슴에 안은 꽃 다발 처럼 밝다.
세상 사람들의 사주를 내게 맡기라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선 여인, 백경은 가슴에 안은 꽃 다발 처럼 밝다. ⓒ 황종원
교통 사고가 났다. 아내가 죽을지, 살지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입을 앙 다물며 현실과 맞섰다. 훗날 어머니나 장모님께서는 입을 맞춘 듯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용한 곳(점술 집이나 역학원인듯 했다)에 가서 보니 그 해에 남자에게 살이 있어. 여자가 다치지 않았다면 남자가 죽을 운이였다는 거지."

이 말에 아내 자신은 한 순간에 2급 중증 장애자가 되고서도 남편 몸이 성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자신의 불운을 받아 들였다.

나는 슬퍼하기 보다 당당하게 두 발로 곧게 일어선 아내에게 고맙고, 자랑스럽고, 죄진 기분이다. 자신이 불행해져도 남편만은 몸 성하게 있기를 바라는 아내의 입장은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어찌되었던 역술원 출입은 내 생리에 맞지 않았다.

팔자대로 살게 마련. 내 자신은 나의 것, 내가 제일 잘 안다. 역경에 처해도 때로는 상처 입고 회복하면서 살면 그뿐. 인생은 어차피 슬픔과 기쁨의 곡예 속에 있기 마련. 그러다가 역학에 골몰한 전 직장 동료 P형에게 이끌려 역학 학원에 등록을 하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나는 언제고 때려 칠 생각으로 시작을 했던 공부가 1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아야겠다며 공부에 빠졌다. 내 생애에 끝이 안 난다손 치더라도. 할수록 묘미 있는 공부다.

한 사람의 팔자를 적어 놓고 들여다보면 안개 너머 그 사람의 성격, 배우자, 직업이 보이면서 소름이 돋는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다는 말일 게다. 팔자를 고칠 수 없는 것일까.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난 사람은 인생이 어떻게 굴러가는가. 아직 나는 거기까지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공부가 멀었다. 사주팔자를 보면서 저절로 입이 열리는 것은 남자 보다 여자가 앞선다.

남들은 일주에 한 번 듣는 강의를 등록금 세 곱 내고 남보다 세 번을 듣는다는 여인은 역학원에서도 전설적이다. 전설의 여인이 새로 지은 오피스텔 17평에 깔끔하게 역학원을 냈다. 등촌동 sbs 공개 강의실 근처 새로 지어서 딱지조차 떨어지지 않은 새 오피스텔에 이름하여, 백경 철학원. 모든 사실을 거울 보듯 알려주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큰 일간지마다 공개 강의를 알리는 광고비 2000만여원 매달 아까운 줄 모르고 쓰면서 후학 기르기에 욕심쟁이 해정철학원장과 수강생 30여명이 백경철학원의 실내를 꽉 채웠다.

“남은 이렇게 역학을 배워 개업을 하는데 나는 언제쯤 묘리를 터득하여 개업하나?”하는 것은 이제 공부를 하고 있는 수강생들 생각이다.
“개업은 했으나 용하다는 소문을 얻어서 잘 되야지.”하는 것은 이미 개업을 한 사람의 생각이다.

사주팔자를 보아주는 집들이 대개가 어둡고 낡은 데다가 찾아온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욱박지르다시피 기선을 제압하여 스스로 입을 열게 마련. 그에 비해 백경은 이름처럼 환하다.

실내 인테리어에 적지 않게 신경을 썼다. 무슨 알록달록한 색깔의 색지와 귀신 나올 듯한 신기 어린 분위기가 아니어서 좋다. 서가에는 역학 책과 성경까지 있는 것으로 보아 백경은 기독교인인가 보다. 역학은 신들려 하는 것이 아니니 기독교인이 할 수도 있고 불교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인테리어는 중년의 티가 난다. 중년 아줌마들을 겨낭한 탓이리라. 아니면 백경의 취향일 수도 있다.

삶은 돼지 머리 놓고 고사를 지내는 것은 손님들이 떼지어 와서 돈 벌자는 것이 아닌가?

"돈을 벌면 좋지만 저는 무엇보다 공부가 먼저예요."

때묻지 않은 맑은 마음이다. 돈부터 생각하면 손님의 사주팔자가 제대로 보일 리 없다. 6년 공부에 2년 역학 학원 공부를 남들 보다 세 곱절하고 철학원의 문을 연 여인, 백경은 딱 부러지게 말한다.

이 시절, 공부를 마음먹기 따라 몰두하다 보면 직업이 된다. 남이 한다고 따라서 했다가는 사업 실패 인생 실패이지만 하고픈 공부를 하며 남의 인생을 보아주며 상담을 하겠다고 나선 마음은 봉사의 마음이다. 시작한 길이 기쁨의 길이기를 원생들은 빌어준다.

자기 학원 출신이 개업을 하면 내 자식이 학교 입학 한 양 기쁜 것은 학원장 고해정씨의 기쁨이다. 이미 시작한 공부를 문 활짝 열어 언제쯤 세상에 열어 보일까 나는 내 마음이듯 원생들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내 발로 한 번도 관상이나 점 보러 가보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 역학 공부를 하는 것도 팔자 소관 인가보다.

사람에 따라서는 공부로만 끝내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용기 있게 역학원 문을 여는 당찬 여인도 있다. 한 달에 기천만원을 버는 역학원도 있고 사무실 운영비도 힘든 역학원도 있지만 인생은 시작이다. 흥망은 팔자 소관이라지만 용기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있다면 그것은 승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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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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