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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남는 자의 것을 덜어서 모자라는 자에게 주지만, 인간사회는
그렇지 않아서 모자라는 것을 빼앗아 남는 자에게 바친다.(노자)
새벽에 또 잠이 깼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잠 설치는 밤이 잦아졌습니다.
그런 밤들이 시작된 것은 부모님 사시는 곳에 다녀온 뒤부터였을 겁니다.
어머니도 밤잠을 설치고 계실 테지요.
동생은 공고를 졸업하고 군에 다녀온 뒤 일찍 컴퓨터에 눈을 떴습니다.
조그만 중고 컴퓨터 가게를 열어 자기 기술 하나를 밑천으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얼마 후 가게를 확장해 직원까지 두고 의욕적으로 일을 해나갔지요.
하지만 오래지 않아 빚만을 떠안은 채 가게는 문을 닫았고, 동생부부는 별거에 들어갔습니다.
한동안 방황을 겪은 동생은 컴퓨터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며 재기를 모색했습니다.
나는 그저 동생이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아주길 바랬지만 동생의 마음은 달랐던가 봅니다.
어느 해 명절이던가, 늘 과묵하기만 하던 동생이 "돈을 벌어야겠습니다"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동생은 여전히 별거 중이었고, 명절이라고 외가에서 살다가 온 조카는 아비 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후 동생은 동업자 한 사람을 만나 사무실을 얻고 인터넷 게임 개발을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 잘 되 가고 있다 하더군요.
사업의 희망이 보였던지 동생 부부도 다시 함께 살기 시작했고, 어머니께서도 한 시름 놓는 듯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성실하게 돈벌 생각을 할 일이지 주식을 했더란다."
동생은 인터넷 게임 개발을 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주식 투자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동생은 1억 5천 만원이나 되는 카드 빚에 몰려 쫓기고 있었고, 당연히 이혼을 당했습니다.
아내를 속이고 카드 빚을 쓴 것은 이혼 당해 마땅한 사유가 되겠지요.
제 스스로 판 무덤인 걸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그러나 언뜻 그런 마음도 들더군요.
이유불문하고 동생이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었더라도 이혼을 당했을까.
참으로 쓸데없는 생각이었지요.
그 뒷수습을 위해 부모님과 동생을 만나고 왔습니다.
내가 간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었겠습니까.
돈이 있으면 갚아주면 되겠지만, 그럴 능력도 없고, 그저 상심해 계시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동생이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였지요.
동생은 연립의 지하 창고를 개조한 듯한 쪽방에 환자처럼 누워 있었습니다.
"네가 저지른 일인데 이렇게 있으면 되겠니. 어떻게든 수습하고 다시 살아야지.
어째서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주식 따위를 할 생각을 했니.
설령 네가 주식을 해서 돈을 벌었다 한들 그것이 좋은 돈이겠니.
백, 천에 한 명 돈을 버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다 너같이 지하 쪽방으로, 길거리로, 삶의 막다른 골목으로 쫓겨난 사람들이 잃은 돈을 가져가는 것뿐이지.
너 같으면 그 피묻은 돈을 가져와 행복할 수 있겠니.
나는 오히려 네가 그 더러운 방법으로 돈을 벌지 못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동생은 말이 없었습니다.
1억 5천 만원의 빚을 내서 주식을 시작한 동생의 통장에는 십 몇 만원이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동생은 완전히 파산했습니다.
빚에 몰려 파산한 동생이 온전한 직장 생활을 하기도 어렵겠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그 빛을 다 갚아내기란 평생을 일해도 쉽지 않을 테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겠니, 기왕 이렇게 된 것, 감옥에라도 가게 되면 가야지.
네가 저지른 일이니 매듭도 네가 지어야지.
앞으로는 절대 주식 같은 거 하지 말아라.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벌려다가 벌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너무 낙담하지도 말아. 그까짓 걸로 사람이 죽기야 하겠니.
죄의식은 갖고, 벌이야 달게 받더라도 절망하지는 말아라.
수 백억, 수 천억씩 부도를 낸 자본가들은 수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떵떵거리며 감옥 몇 년 살고 나와 잘 살지 않던.
아예 감옥조차 가지 않는 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들에 비하면 네가 진 빚은 그리 큰 게 아니야.
딴 맘 먹지 말고 다시 기운을 차려."
내가 보길도로 돌아온 뒤 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닥쳐올 폭풍의 시간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동생의 운명은 무자비한 폭풍에 또 어떻게 휘둘리게 될까요.
나는 하루도 편안히 잠들 수가 없습니다.
내 동생을 파멸에 빠뜨렸고,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의 구덩이로 내몰고 있는 주식투자.
주식 투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요.
본래적 의미의 주식 투자란 생산을 통해 얻은 이익을 투자한 만큼 분배받는 것이니 그 또한 정당한 노력의 대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매달리고 있는 투기성 주식투자는 노름에 불과합니다.
나는 그것이 카지노와 슬롯 머신, 마작이나 포커와 어떻게 다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나라가 자본주의 길로 접어든 이후 어느 때라고 다르지 않았겠지만, 요 몇 년새 더욱 노골화된 돈 숭배와 부자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부자 되기'는 오늘날 이 땅을 지배하는 유일 사상이며 돈은 유일신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입니다.
옛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을 수치로 알았지만 오늘날에는 '부~ 자 되세요'하는 인사가 덕담으로 오가며 '찬송가'처럼 불리어집니다.
'부자 되기'의 한복판에서 주식투자라는 '부흥회'가 열리고 광신도들은 열광합니다.
유일신 숭배를 위해 이 절해 고도의 한구석에서도 땅 팔고 빚내서 주식 투자를 했다가 패가 망신한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동생 또한 그 신에게 바쳐진 번제(燔祭)물일 테지요.
하지만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덕담'은 기실 혹세무민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의 본질은 집중과 편중에 있습니다.
집중되지 않으면 부가 될 수 없고, 편중되지 않으면 부자가 생길 수 없기 때문이지요.
산출되는 부는 일정한데 부가 한편으로 집중되고 편중된다는 것은 다른 또 한편에서는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한 사람이 부자가 되 것은 아홉 사람이 가난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모르겠습니까.
아니지요.
남이야 죽든 살든 그저 나만 부자가 되면 다라는 악덕에 길들여져 죄의식을 갖지 못할 뿐이겠지요.
오늘도 사이비 예언가들은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광야에 외치고 다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귀가 솔깃해집니다.
자본주의 역사란 늘 이런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복음은 맘몬의 사제인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내려주는 강복(降福)이 아닌 것을.
부자들의 비열한 야유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러므로 부자가 되라는 말은 덕담이 아니라 욕인 것을.
그 치욕적인 욕을 듣고도 많은 사람들은 그저 즐겁게 웃기만 합니다.
예전 어느 글에선가 나는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은 여유로움이 아니라 거의 죄악"이라는 믿음을 신앙 고백한 바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 부유함이 타인의 불행으로 인해 얻어진 것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오늘 나는 다시 한번 간절히 고백합니다.
부자가 되지 마십시오, 부자가 되는 것은 죄악입니다.
천추에 씻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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