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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백화산을 오를 때마다 주머니에 새우깡을 한 주먹씩 넣고 다닌다. 내 입이 심심해서가 아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시작된, 특별한 목적이 있는 일이다.
요즘도 거의 매일같이 오후 4시경이면 백화산을 오른다. 당뇨와 통풍이라는 심각한 질병을 가진 데다가 콩팥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나에게는 매일의 등산 운동이 참으로 중요한 일과다.
새벽 4시경부터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지 않으면 신문이나 책을 끼고 구들장 신세를 지니, 저녁 무렵에는 등산을 재촉하는 어머니의 채근도 듣곤 한다.
건강 문제야 불운하다 쳐도, 거의 매일 산을 오를 수 있는 내 처지는 복터진 팔자가 아닐 수 없다. 팔순 연세에도 집안 살림을 챙겨 주시는 어머니와 직장에 몸을 맨 아내에게 늘 감사하곤 한다. 비록 잘 나가는 작가 축에는 들지 못했지만, 그리고 실속 없는 일도 많지만, 하루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내 일복에도 감사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녀석에게 컴퓨터를 내주는 저녁 무렵의 여유, 산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산에 대한 고마움, 신선한 공기 속에서의 기도와 사색, 보고 또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자연 풍광 감상 등은 요즘의 내 삶을 가꾸어주는 귀중한 요소들이다.
지난주 토요일에도 오후 4시경 집을 나섰다. 그런데 그 날은 등산길에서 좀 특별한 일들이 있었다.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머금어지기도 하면서 아쉬움이 커지는, 조금은 재미있는 일일 듯도 싶어서 면구스러움을 무릅쓰고 기록을 하고자 한다.
내가 다니는 백화산 등산로 초입머리 부근에는 작은 길 바로 옆에 외양간 하나가 있다. 산기슭 동네의 맨 마지막 집에 딸려 있는 외양간이다. 그 외양간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외양간 안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 외양간에는 지금 두 식구가 살고 있다. 엄마소와 아기소다. 엄마소가 한 달 전쯤에 새끼를 낳았다. 첫배 새끼이고 암송아지라고 했다. 새끼를 낳은 후 한동안은 외양간 안에만 있었는데, 요즘은 외양간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내가 산을 오를 때는 주로 외양간 밖에 있던 소들이, 산을 내려올 때는 외양간 안에서 저녁 여물을 먹곤 한다.
하루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 팔순 노인이 정성 들여 쑨 여물을 가져다가 여물통에 부어주는 모습도 보기 좋고, 엄마소와 아기소가 함께 여물을 맛있게 먹는 모습도 보기 좋다.
농경 사회의 마지막 재래식 풍경과 내음이 거기에 남아 있다는 생각이며, 정겨움과 평화스러움의 실체라는 느낌이 절로 들곤 한다. 하여튼 외양간 안의 소 모녀의 여물 먹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참으로 안온하고도 구수한 평화 속으로 빠져들곤 한다.
그런데 소 모녀를 괴롭히며 내 마음의 평화까지도 방해하는 참으로 귀찮은 존재가 있다. 바로 쇠파리들이다. 소들은 여물을 먹으면서도, 또 편안히 앉아 되새김질을 하면서도 한시 반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계속적으로 꼬리를 흔드는 것만으로는 어림없다. 머리를 내두르거나 뒷발로 배를 차는 시늉까지, 쇠파리를 쫓는 동작을 무수히 반복한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모기약을 생각하곤 했다. 집을 나설 때는 까맣게 잊었다가 외양간 앞에 이르러서야 또다시, 오늘도 모기약 가져오는 걸 깜빡했음을 깨닫곤 하는, 내 한계에 대한 자각과 한탄도 마냥 반복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가을에는 잊지 않고 동네 슈퍼에서 모기약을 한 통 사 가지고 가서, 외양간 근처 콩밭에다 숨겨놓고, 며칠 동안 외양간 앞을 지날 적마다 소에게 뿌려 주곤 했던 것을 상기하니, 올해부터 부쩍 심해진 내 건망증에 스스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주 토요일은 외양간 앞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소 모녀가 외양간 밖에 나와 있는데, 바람이 시원하게 통하고 있는 곳인데도 쇠파리 떼가 들끓고 있었다.
고삐 매인 머리와 꼬리는 물론이고 네 발을 다 움직여 파리 쫓는 동작을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어미소는 그것이 이미 만성이 된 상태라 하더라도, 귀여운 새끼소의 그런 동작은 볼수록 가엾기만 했다.
나는 걸음을 되돌려 재빨리 산기슭 동네를 내려갔다. 동네 슈퍼에 가서 모기약 한 통을 외상으로 샀다. 그리고 다시 잰걸음으로 올라가서 소들에게 뿌려 주었다.
송아지는 놀라서 외양간으로 달아나고, 새끼소의 그런 동작 때문에 어미소도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지만, 나는 바람의 방향을 잘 살펴서 효과적으로 약을 뿌려 주었다.
쇠파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쇠파리들의 생존 방식을 너무 방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쇠파리 역시 생명이었다.
조물주의 안배에 의해 생겨나고, 조물주로부터 부여받은 생존 방법으로 억겁의 세월을 이어온 생물이었다. 일방적으로 소를 위하면서 무자비하게 대량 살생을 감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우스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쇠파리는 가축을 괴롭히는 해충이었다. 해충을 죽이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나의 오늘의 행위로 말미암아 쇠파리가 멸종을 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여간 작은 일 하나와 관련해서도 별 우스운 생각을 다하며 사는 것은, 나의 업보이며 숙명이기도 할 터였다.
모기약이 많이 남은 약통을 주인 노인에게 드리니 소를 애지중지 기르시는 노인은 여간 고마워하지 않았다. 작년의 일도 기억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소가 옥수수를 몹시 좋아한다는 것을 안 내가 2천원어치나 사다가 새끼 밴 소에게 준 사실도 기억하는 노인은 모기약 값이라며 내게 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손을 저었다. 그러다가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노인에게 볏짚을 좀 달라고 했다. 그리고 소에게 여물을 주려고 노인이 골라놓은 깨끗한 볏짚을 반 아름 정도 얻을 수 있었다.
볏짚을 묶어서 외양간 옆에다 놓고 나는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턱쯤 오를 때였다. 야옹 소리와 함께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앞에 나타났다. 꽤 큰 어른고양이였고, 황갈색 털과 노란 눈망울을 가진 놈이었다.
놈은 나를 되게 반기는 기색이었다. 내게 다가와서 작은 소리를 내며 내 다리에 제 몸을 비비는 동작을 반복했다. 나는 그 놈이 처음부터 사람 손에서 자란 집고양이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놈이 내게 먹을 것을 요구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놈은 내 손을 주시하고 머리를 쳐들며 입을 들이대기도 했다.
놈에게 줄 것이 없었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집고양이라면, 왜 인가와 멀리 떨어진 산길 한가운데 와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혹 어떤 사람이 여기에다 버리고 간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들을 지닌 채로 다시 걸음을 떼자니 놈이 졸랑졸랑 따라왔다. 그러나 곧 포기했는지 놈은 걸음을 멈추고 점점 멀어지는 나를 한참이나 망연히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무거운 느낌이었다. 산길에서 그런 고양이를 만나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설마 그러랴 싶으면서도 누가 만일 버린 고양이라면, 앞으로 그 고양이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지, 괜히 걱정이 되었다.
이윽고 산의 정상에 올랐다가, 예정보다 일찍 하산을 했다. 그 고양이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놈은 아까보다 더 위쪽으로 올라온 지점에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햇볕이 잘 닿는 바위 위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야옹 소리를 지르며 발딱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또 내게로 와서 발목에 몸을 비비며 먹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저 미안한 마음으로 놈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기만 했다. 놈이 낯선 사람에게 와서 아양을 떠는 것도, 낯선 사람이 제 몸을 만지는 데도 전혀 싫은 태를 하지 않는 것도 참 신기했다.
내가 다시 걸음을 떼니 놈은 또 따라왔다. 그러나 곧 걸음을 멈춘 놈은 실망하고 섭섭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놈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놈이 끝까지 따라오면 내가 거두어줄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놈을 집에까지 안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고양이 모집까지 하는 나를 가족과 이웃들이 어떻게 대할지,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놈은 끝까지 나를 따라올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별수 없이 혼자 걸음을 떼던 나는 홀연 무슨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바빠졌다. 산기슭의 외양간에 도착하자마자 아까 묶어놓았던 볏짚을 들고 외양간 안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걸음을 빨리 했다.
집에 온 즉시 집 앞 화단에 있는 고양이 집의 바닥에 볏짚을 두툼하게 깔아주었다. 고양이 집은 며칠 전에 앞집 은옥아빠와 함께 만들었다. 근처 PC방이 폐업을 하면서 버린 컴퓨터 설치용 책상을 하나 주워다가 적당한 크기로 보기 좋게 만들어서 화단의 수목들 사이에다 놓아주었다.
처음에는 바닥에다 두꺼운 종이만 깔았는데, 이제 볏짚까지 푹신하게 깔아주었으니, 그 아늑하고도 안온한 집안에서 고양이 가족은 더욱 팔자가 늘어질 판이었다.
여자들보다 두 집의 두 남자가 고양이들에게 지극 정성을 다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와 은옥아빠는 고양이들에게 신경을 썼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아침을 주었고, 은옥아빠는 저녁을 주었다. 은옥아빠의 퇴근이 늦는 것 같은 저녁에는 내가 놈들에게 망둥이 따위 간식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한가지 섭섭한 것은, 새끼고양이들에게는 아직도 여전히 사람을 피하고 경계하는 야생고양이의 습성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놈들은 아침과 저녁에는 내가 집 문을 열고 나가기만 해도 일제히 현관 쪽으로 몰려와서 내 주위를 뱅뱅 돈다.
밥을 줄 때는 내 코앞에서 밥을 먹다가도 내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라도 할라치면 몸을 사리고 피하고 한다. 내가 밥그릇을 들었을 때는 바짝 다가와도 그 외는 절대 가까이 오지 않는다.
어미는 전혀 그렇지가 않아서 내가 일부러 어미를 안아주고 만지고 하는 것을 보여 줘도 새끼들은 도무지 나를 믿지 않는다. 저희들의 잠자리를 보살펴주고 맛있는 밥을 주고 하는데도 놈들이 내 애정 표시를 거부하니, 나로서는 여간 섭섭한 일이 아니다.
내 차에 치어 다리를 다친 놈은 암코양이라서 그런지 얼굴이 제일 예쁘게 생긴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 맛있다는 소리도 제일 잘 낸다. 자연 그 놈에게 관심이 가장 많이 가고 특별히 예뻐해 주고 싶은데, 그 놈 역시 밥을 줄 때 외로는 내 곁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새끼들의 아비는 완전히 야생고양이인가 보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어미와 함께 살면서도 새끼들이 어미와는 다르게 행동하니 아무래도 '씨' 쪽의 야생성이 강하게 작용하는가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날 고양이 집에 볏짚 깔아주는 일을 마친 나는 서둘러 지갑을 꺼내 들고 슈퍼로 갔다. 모기약 외상값을 갚고 새우깡을 큰 것으로 한 봉지 샀다.
우선 시험적으로 화단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들에게 새우깡을 주어보았다. 새우맛을 믿은 내 기대는 적중했다. 놈들이 새우깡을 잘 먹는 것을 보고, 나는 봉지에서 두 주먹 정도 모자에다 덜어 담아 들고 바삐 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젊은 시절 술김에 소주 한 병 꿰차고 오밤중에도 백화산을 오른 적이 있지만, 백화산을 하루에 두 번 밟아보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누구에게 그 얘기를 하면 어지간히 할 일도 없다는 핀잔을 들을 게 뻔하고, 핀잔을 들어도 싼 짓이었다.
중턱쯤에서 만난 사람에게 혹시 내려오는 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으니, 올라갈 때는 보았는데 내려올 때는 보지 못했다는 대답이었다. 우려를 안은 채로 그래도 걸음을 빨리 했다.
아까 산을 내려올 때 고양이를 만났던 지점에서 발을 멈추고 주변을 살피며 야옹 소리로 놈을 불렀다. 그러나 놈은 어디로 갔는지 나타나지를 않았다.
아마도 해가 떨어진 때라서 놈이 잠자리를 찾아 갔는가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라도 놈이 이곳에 다시 오면 먹을 수 있도록 산을 내려오면서 군데군데에다 새우깡을 몇 개씩 놓아주었다.
그런데 모자 안의 새우깡을 모두 비우고 50미터쯤 내려오자니 저만치에서 놈이 야옹 소리를 내며 나타나는 게 아닌가. 나는 발을 멈추고 놈에게 오라는 손짓을 했다.
하지만 놈은 아까 와는 달리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놈에게 그냥 거기에 있으라는 말을 하고는 잽싸게 몸을 돌려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내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새우깡을 놓은 곳으로 오른 나는 두 군데의 새우깡을 바삐 모자에 주워 담았다.
그리고 다시 바삐 산길을 내려가며 야옹 소리로 놈을 불렀다. 놈이 대답하는 소리가 멀리에서 두어 번 들렸다. 결국 놈에게 새우깡을 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내 가슴에서는 기쁨이 솟구쳤다.
그러나 놈의 야옹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고, 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주변을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어도 허사였다.
끝내 놈에게 새우깡을 주지 못하게 된 섭섭함이 참으로 컸다. 애초 모자 속의 새우깡을 남기지 않고 모조리 털어 버렸던 내 지혜 없음이 여간 후회되지 않았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며, 아까 지갑을 가지고 나간 탓에 술을 마시고 온 것으로 의심하는 가족들에게 사실 얘기를 하니, 어머니와 아내 아들녀석 모두 나를 동정하면서도, 그러다가는 진짜 고양이 첨지가 될 지도 모른다는 말로 나를 놀렸다.
다음날 일요일은 출타 관계로 백화산을 오르지 못했다. 그 고양이에 대한 궁금증이 하루종일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월요일부터 백화산을 오를 때마다 주머니에 새우깡을 한 주먹씩 넣게 되었다. 놈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새우깡과 함께 내 주머니 속에 꼭꼭 담겨지는 기분이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새우깡 때문에 나는 더욱 놈을 다시 만나고 싶다. 벌써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놈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어제는 새우깡을 깜빡 잊고 나섰다가 백화산 등산로 초입머리에서 되돌아와서 새우깡을 가지고 다시 산을 올랐는데도….
오늘도 나는 오후 4시쯤이면 백화산을 오르게 될 것이다. 오늘은 산길에서 놈을 만났으면 싶다. 오늘 만나지 못하면 내일이라도, 내일이 아니면 모레라도…. 그리고 매일같이 만나도 좋을 것 같다.
요즘 매일같이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새우깡을 마침내 놈에게 주는 기쁨을 누리고 싶은데, 오늘은 놈을 만날 수 있을지…. 요즘의 이런 기대와 소망도 내게는 제법 소중한 일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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