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겄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 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이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사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살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쬭
남북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하고 목질기기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만한 도둑보가 곁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김지하 '오적' 일부)
...1964년, 외모가 제법 준수한 학생 한 명이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을 벌이다가 4개월간 차디 찬 철창 속에 갇힌다...
쇠토막을 삼켜도 소화시켜 낼 것만 같은 그 젊디 젊은 청년은 1969년 '황톳길'을 발표하면서 시인이 된다. 시인은 첫 옥살이를 한지 꼭 10년 뒤인 1974년, 민청학련사건 관련 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형집행정지로 10개월만에 풀려난다.
이후 시인은 인혁당 사건으로 다시 투옥되어 8년간의 긴 옥살이를 한다. 그 지리한 옥살이에서 시인은 옥방 창틀에 새싹을 틔운 민들레를 바라보면서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새싹을 틔운다. 그리고 1984년 겨울, 감옥에서 풀려난 시인은 화염병을 버리고 '생명운동'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이 세상에 던진다.
그리고 시인은 최루탄이 난무하는 도심을 버리고 길을 떠난다. 우리 민중사상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다. 시인이 우리 민중사상의 뿌리라고 생각한 것은 동학과 증산도였다. 그래서 시인은 동학과 증산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계룡산과 우금치, 모악산과 황산벌 등지를 헤맨다.
하지만 시인은 병이 들고 만다. 긴 옥살이에서 비롯된 그 병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병마 앞에서도, 박정희 때 그랬던 것처럼 끝내 굴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인이 그 긴 병마와 싸우며 닿은 땅, 그 새로운 생명의 땅은 '율려(律呂)'라는 땅이었다. 그래서 시인은 한때 '죽음의 굿판 집어치워라'라는 그런 이상한(?) 글을 썼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시인 김지하(61)의 철학과 사회, 미학사상을 총 망라한<김지하 전집>(전3권, 3만5천원)이 실천문학사에서 나왔다. 원고지 7500장 분량을 묶은 이 전집은, 그의 파란만장한 삶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과 중복된 글들을 하나로 모은, 김지하 백과사전이다.
제1권 '철학사상'에는 김지하 시인의 철학적 사유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동학사상과 증산도, 생명운동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으며, 1990년대가 기울 때 이 세상에 화두처럼 툭 던진 율려사상이 풍경처럼 뎅그랑, 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다.
제2권 '사회사상'에는 김지하가 보고 느꼈던 사회현상에 대한 사유와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나름대로의 새로운 세계관을 여는 글들이 실려 있다. 또 그에게 첫 옥고를 치르게 했던 '조(弔) 반민족적 비민주적 민족적 민주주의'란 글과 민청학련 사건 때 법정최후진술문 '나는 무죄이다'란 글이 지금도 고개를 빳빳히 치켜들고 있다.
제3권 '미학사상'에는 김지하의 문학론과 미학론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실려 있다. 그와 더불어 1970년대의 '저항시인' 김지하의 일기 등, 시인으로서의 김지하의 문예미학이 그의 시처럼 눈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율려는 음양의 조화... 우리 전통 음계에서 율(律)은 양(陽)이고, 려(呂)는 음(陰)입니다.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해요. 강증산은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은 율려가 다스리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요"
오는 25일 오후6시, <김지하사상전집> 출간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가 한국일보사 13층 송현클럽에서 열린다. (실천문학사, 3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