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북한이 비밀리에 핵개발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에 시인했다는 부시 행정부의 발표 이후 한반도 정세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관련 장비를 해외로부터 도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북한의 핵개발 능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제조 과정 및 북한의 핵개발 능력에 대해 심층적인 이해를 돕고자 10월 24일 밤 평화네트워크 사무실에서 강정민 핵공학 박사를 만나 구체적인 얘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이번 북핵 파문을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시종일관 강조했고, 또 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정민 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핵물질 전문' 강정민 박사는 누구?

▲ 강정민 박사
국내에서 손꼽히는 핵물질 및 핵연료주기 전문가인 강정민 박사는 올해 37세로, 87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89년 동 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90~93년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원자로 노심설계 분야 연구를 수행했다.

1993년초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대학에서 원자력을 전공한 강 박사는 1999년 7월 스즈키 아츠유키 교수의 지도로 핵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박사학위 수여 전인 1998년 9월 도미, 2000년 12월까지 프린스턴대학 에너지환경센터의 핵비확산/핵군축 그룹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2000년 12월 귀국한 강 박사는 서울대 내 기초전력공학공동연구소 산하 원자력정책센터(임시기구) 소속으로서 핵비확산, 사용후 핵연료 관리, 후행핵연료주기 분석 등의 분야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핵 문제 현안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강 박사는 이밖에도 핵문제 등 주요현안에 대해 국내 대중매체에 왕성한 글쓰기를 해오고 있다. / 정욱식 기자
- 문제가 되고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제조 과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고농축 우라늄은 우라늄 동위원소의 하나이며 핵물질인 우라늄235가 20% 이상인 우라늄을 뜻한다. 천연 우라늄의 경우 우라늄235는 0.7%이며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우라늄238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고농축 우라늄을 만들려면 우라늄 내 우라늄235의 비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특별한 농축설비가 필요하다. 우라늄농축 방법으로 가스확산법, 원심분리법, 레이저분리법이 대표적이며 원심분리법이 세계적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현재 핵무기에 사용되는 핵무기급 우라늄은 우라늄235가 90% 이상인 고농축 우라늄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까지는 그 이하 농축도의 고농축 우라늄도 핵무기에 사용 가능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핵무기에 사용된 우라늄의 농축도는 70%였다.

전력소비가 적고 분할건설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원심분리기에 의한 우라늄 농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높이 1-2m 직경 약 30cm 크기의 원심분리기 하나의 분리능력은 연간 약 5 SWU(우라늄농축 단위)인데 약 250kWh의 전력으로 핵무기급 우라늄을 연간 약 30g 생산할 수 있다.

제조가 비교적 쉽다고 알려져 있는 '건-타입'(gun-type) 우라늄 핵무기의 경우 50kg 정도의 핵무기급 우라늄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한 개의 우라늄 핵무기 제조를 위한 핵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1700여기의 원심분리기를 1년간 가동시켜야 한다.

참고로, 핵무기급 우라늄으로 핵무장을 한 파키스탄의 경우 1990년경 2000여기의 원심분리기로 연간 약 60kg 정도의 핵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하였다 한다. 이렇듯 고농축 우라늄 제조에 많은 시간이 소비됨에 따라 파키스탄도 최근 고농축 우라늄보다는 플루토늄을 이용해 핵무기를 제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 문제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실은, 농축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지만 고농축 우라늄은 이를 이용한 핵무기 제조가 단순하며 플루토늄 핵무기의 경우와는 달리 사전에 폭발시험을 할 필요 없이 실전에 사용 가능하다는 최대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심분리기
원심분리기
- 현 단계, 북한의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 단계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위해 원심분리기를 주로 이용하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레이저 분리기술을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 90년대 말부터 원심분리기 도입 및 우라늄 농축을 시도해 왔다는 정보에 근거할 때, 원심분리기를 대량 확보하였을 가능성은 적으므로 고농축 우라늄 확보량은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것으로 예상된다. 가령, 100기의 원심분리기를 5년간 연속 운전했다 가정하더라도 15kg의 핵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1개의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 필요량의 3분의 1도 안된다.

그리고 레이저분리법에 의한 우라늄농축은 아직 세계적으로 상용화가 안된 기술로 북한이 이 기술을 이용해서 원심분리기만큼의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레이저분리법으로 고농축 우라늄을 만드는 것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현재 북한이 그 동안 원심분리기를 이용하여 핵무기급 우라늄을 우려할 수준의 양만큼 확보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이 원심분리기를 대량으로 확보하여 우라늄 농축을 앞으로도 계속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원심분리기 이용이 아니라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자체를 외국으로부터 대량으로 확보하였을 경우를 가정할 수 있겠는데, 이 경우 또한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제네바 합의의 앞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경수로 사업 지연이 북한으로 하여금 고농축 우라늄 확보라는 비밀 핵 프로그램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제네바합의의 근본은 북한의 핵 동결 및 제거에 있으므로 이번에 북한이 시인한 비밀 핵프로그램은 그 근본을 흔들어 버린 사건이다.

그렇지만 그렇다할지라도 제네바 합의의 앞날은 북한과 미국의 앞으로의 대화여부 및 그 결과에 따를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은 양측이 평화적 해결을 원하고 있으므로 제네바 합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고 본다."

- 이번 북핵 파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북한이 시급하게 취해야할 조치가 있다면 무엇이 있는가?
"이번 북한의 비밀 핵프로그램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북한은 신뢰하기 힘든 국가라는 이미지를 깊이 새겨주었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북한에 다가서는 성의를 보이지 않을지라도 세계적으로 비난받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북한이 먼저 이번 파문을 수습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의 체제보장 및 미국과의 관계개선 등을 요구하는 조건으로 이번이야말로 완전히 핵을 포기하고 투명성을 보이는 절차를 밟는 등 적극적인 외교 공세로 나온다면, 이번의 북핵 파문은 오히려 북-미간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 제네바 합의가 원안대로 이행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개정' 내지는 '파기'가 불가피한 것 같다.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개정되어야 한다. 현재처럼 한쪽이 뭔가를 해주어야 다른 쪽이 그 다음 단계를 밟아나가는 현 제네바 합의 형태로는 핵무기 우려가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기가 어렵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고농축 우라늄 핵폭탄 'Little Boy'
히로시마에 투하된 고농축 우라늄 핵폭탄 'Little Boy'
- 제네바 합의를 개정해야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북한으로 하여금 IAEA 핵사찰을 즉각 수용하게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안으로 제네바 합의를 개정하기를 바란다.

먼저, 북한은 핵사찰 즉각 수용을 발표하고 과거핵 규명에 적극 협조한다. 그러면, 이에 대한 인센티브로서 미국은 북한의 핵사찰 수용시기에 맞추어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당량의 전력(연간 50만KW 발전설비 용량 정도)을 현재 공급되고 있는 중유와는 별도로 경수로 1호기 완공 전까지 부가적으로 제공하는 조치를 주선한다.

그리고 북한의 경수로사업의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없애고 미국에 의한 핵공격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IAEA 핵사찰 결과 북한의 과거 핵이 규명된 이후에도 경수로사업은 중단 없이 계속됨을, 그리고 제네바합의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북한을 핵무기로 위협 또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미국은 공식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50만KW의 전력공급에 필요한 추가 비용 확보문제에 대해서는 대북한 전력 지원에 긍정적인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경수로 사업 비용의 70%를 부담하는 우리 정부가 북한 전력지원에 필요한 재원까지 추가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 및 KEDO 집행이사국 간의 동의 하에 다음과 같은 방안의 인센티브가 제공된다면 우리 정부가 필요 재원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 KEDO 경수로로부터 국내 전력망에의 송전선 건설 비용은 우리가 지불한다는 가정하에, 경수로 2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10-20년 정도 전량 또는 상당량 적절한 가격으로 우리가 수입 이용하는 방안이다. 이 방안으로 우리는 국내 전력공급에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북한은 수억 달러가 소요될 기존 전력망의 개선 없이는 이용하지도 못할 경수로의 전력 수출로 수입을 올리게 될 것이다.

둘째, 북한 전력인프라시장, 즉 북한의 전력망 개선 및 중소형 발전설비 시장에 국내 민간기업을 진출시키는 방안이다. 이로써 국내 기업은 이윤을 창출하게 될 것이고 북한은 자국의 경제, 산업발전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셋째, 북한 흑연로 및 재처리시설의 해체작업에 있어서 국내 민간기업을 참여하게 하는 방안이다. 북-미 기본합의에 의하면 경수로사업이 완료될 때, 북한 핵 시설의 해체작업 또한 완료되어야한다. 핵 시설 해체는 가까운 장래 세계적으로 유망한 사업 분야이다. 북한 핵 시설 해체작업에서 얻게 될 기술적 노하우로 국제시장진출을 꾀할 수 있으므로 국내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

- 끝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결론적으로 북한의 핵물질 보유가능성에 대해서 나는 대량의 고농축우라늄을 외국으로부터 직접 확보하였을 경우가 아니라면 북한이 최근 인정한 비밀 핵 프로그램에 따라 자국의 농축시설을 이용하여 확보하였을 고농축우라늄 양은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것으로 예상하며, 오히려 이미 추출한 양을 알 수 없고 또한 앞으로도 추출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북한 플루토늄의 경우가 더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북한이 핵사찰을 당장 수용하여 핵무기 개발 의혹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것만이 북한이 장기적으로 경수로를, 단기적으로 상당량의 전력 지원 등의 혜택을 받으면서 동시에 핵 문제로 인한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상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최선의 길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 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공헌이 크게 기대되고, 또 큰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