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저녁에도 안면도엘 갔습니다. 안면도 성당에서 '태안 성당 신축기금 마련을 위한 사랑 나눔 작은 음악회'가 열렸기 때문이지요.
그 음악회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부터 나는 안면도 성당 윤종관 신부님과 신자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우리 같은 시골 사람들에게 특이한 악기에 의한 질감 좋은 음악의 세계를 보여 주시는 것만도 고마운데, 거기다가 이번 음악회는 모(母)교회인 태안 본당의 성전 건립 기금을 보태기 위한 것이라니….
나는 지난해 9월 15일 저녁에 있었던 '파이프오르간 봉헌 연주회' 광경도 잠시 떠올려보았습니다. 첫 번째 공식 음악회였던 그 행사 덕분에 나는 그날 난생 처음 파이프오르간에 의한 '생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요. 안면도라는 후미진 곳의 작은 성당에서….
그때 그 자리에서 얻었던 감동과 감미로운 생각들을 정리하여 '파이프오르간의 선율 속에서 조화의 세계를 꿈꾸며'라는 이름의 글을 써서 웹상에 올리기도 했지만, 그때 나는 윤종관 신부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참으로 컸지요.
그때의 고마움 역시 단순히 좋은 음악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지요. 안면도 성당 최초의 음악회 연주자가 개신교 신자라는 사실이 참으로 고마웠답니다. 이화여대 종교음악과에서 오르간을 전공하고, 독일 뮌헨국립음악대학 연주자 과정을 졸업한 박희성 씨. 서울 응암장로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 중인 아가씨라고 했지요.
박희성 씨는 그날 안면도 성당의 파이프오르간으로 미사곡들을 포함한 도합 12곡을 들려 주었는데, 나는 박희성 씨의 섬세한 손가락들이 만들어 내는 파이프오르간의 아름다운 선율에 취하면서 실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안면도 성당 윤종관 신부님과 서울 응암장로교회 오르가니스트 박희성 씨가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개신교 신자인 그녀가 천주교 성당에서 천주교 신자들을 상대로 파이프오르간으로 미사곡들을 연주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답니다. 참으로 고맙고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지요.
두 번째 공식 음악회인 이번 행사에 대해서도 정말 고마운 마음이 두 겹이었습니다. 음악회 자체에 대한 고마움과 행사 취지에 대한 고마움….
음악회 자체에 대한 고마움도 좀더 증폭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파이프오르간 연주, 플룻 연주와 함께 핸드벨 합주가 있다고 해서 나는 핸드벨 합주에 큰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말만 들어 조금 알고 있던 핸드벨 합주 장면을 내 눈으로 직접 보며 소리를 접할 수 있는 생전 처음의 기회였습니다. 윤종관 신부님이 그런 기회를 마련해 주셨으니, 아직은 세상의 이런저런 사물들에 대한 호기심의 끈을 소중하게 지니고 살고 있는 나로서는 어찌 고마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생전 처음 핸드벨 합주도 보고, 음악회 참가비가 일인 1만원이라 하니 우리 본당 성전 건립 기금도 보탤 겸 아내와 함께 가기로 하고, 저녁을 일찍 차려먹고 6시 20분쯤 출발을 했습니다. 태안 읍내에서 안면읍 승언리까지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참으로 편리해진 세상이었습니다. 밤에도 훤한 길을 달리며 다시 옛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면도에 있는 공소(公所)들에 판공(辦功)을 하러 가시는 신부님을 수행하여 무거운 '미사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고 터덜거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남면 신온리까지 가서는 배를 타고 판목을 건너고, 안면도 땅에서부터는 마이크로버스라고 부른 소형버스를 타고 중장리까지 가서 또 거기서부터는 시오리 길을 걸어서 누동 공소를 가고 했던 청소년 시절의 일…. 그 시절이 어제 같건만….
이제는 훤하고 편해진 길을 타고 내 차로 금세 안면도를 가고 오는 세상이지만, 안면도 성당에서 열리는, 우리 태안 본당의 성전 건립을 돕기 위한 음악회에 가는 신자들이 너무 없어서 내 12인승 승합차에 나와 아내, 제수씨와 우리 구역의 전 구역장이었던 자매님 한 분, 이렇게 겨우 네 사람만이 타고 간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쉽고 썰렁하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지난해 가을의 '파이프오르간 봉헌 연주회'가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일년하고도 두 달이나 지난 일이었다니, 세월 빠름을 새삼스럽게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세월 빠름과 세월을 이길 장사 없음을 정직하게 알아챈 사람이라면 이런 작은 여유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되리라는 생각도 하며 안면도 성당에 기분 좋게 도착을 했지요.
주차장에 차를 놓고 언덕을 오르니 예쁘게 한복을 차려입은 꽃다운 아가씨들이 (자세히 보니 우리 성당의 주일학교 기혼 교사들이) 성당 문 앞에 도열해 서서 오시는 분들께 인사를 하며 일일이 가슴에 장미꽃송이를 하나씩 달아주더군요. 감사와 축복의 의미라고 하면서…. 그것을 보며 가장 흐뭇해하는 이는 우리 태안 본당의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님이었고….
성당 안에서는 토요일 저녁의 '특전미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평소의 습성대로 앞쪽으로 가서 비어 있는 둘째 줄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윽고 미사가 끝나고, 제의를 벗고 나온 윤종관 신부님의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 음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60평 규모의 성당 안은 자리가 다 차지 않았지만, 음악회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충만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맨 먼저 연주석에 오른 핸드벨 합주팀의 인사에 호응하는 큰 박수 소리가 그것을 잘 말해 주는 것 같고….
핸드벨 연주자들은 여자 11명에 남성이 3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지휘자는 총각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인데, 조금은 오동통하고 귀엽게 생긴 모습이 착한 심성을 느끼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들이 앞에 한 줄로 서고 뒤에 남자 세 명이 섰는데, 그들 앞에는 긴 상이 놓여져 있고 그 상위에는 악보들 앞에 종과 차임벨과 실로폰 봉 등 악기들이 많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연주자들은 각기 조금씩 크기가 다른 종을 양손에 쥐고, 때로는 한 손에 두 개를 쥐기도 하고 이놈저놈 재빨리 번갈아 쥐기도 하면서, 리드미컬하면서도 절도 있는 동작으로 팔운동을 하며 소리를 내는데, 소리가 참으로 맑고 경쾌하더군요. 때로는 종의 봉을 뜯기도 하고 실로폰 봉으로 종을 치기도 하고 종 대신 차임벨을 들고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그러자니 동작들이 바쁜 때도 있더군요. 두뇌 회전과 동작이 여간 민첩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동작 음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나는 처음에는 열 한 명 여성 연주자들의 미모에 눈요기(?)를 하면서, 14명의 조화로운 연주 동작에 정신이 팔렸지만, 나중에는 눈을 감고 14명의 연주 동작이 만들어 내는 화음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말았지요. 그들의 연주 동작도 내 눈에는 참 경이로운 것이었지만, 그들의 그 동작들이 만들어 내는 화음의 세계는 정말 신비스러움을 가득 안겨 주더군요.
한 사람이 손끝으로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소리, 그 화음의 세계도 참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것이지만, 14명이 각기 종을 흔들어서 자신의 짧은 음 하나씩을 적절히 결합시켜서 멋진 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도 신비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들이 사용하는 악기가 종이라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종, 또는 종소리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이미지를 자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소리는 대개의 경우 인간의 구원과 연결되는 것이므로…. 각성과 구원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종을 가지고 합주 형태로 화음의 세계를 창출할 수가 있다니…. 그것을 처음 고안한 사람은 누구일까?
핸드벨 음악을 처음 고안한 사람과 그것의 전파와 연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슬며시 차 오르는 내 가슴을 느끼자니 정말로 행복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더군요.
신자 수가 냉담자들까지 합해 기백 명밖에 되지 않는 후미진 시골의 작은 신생 본당에 계시면서도 엄청 발이 넓고 음악에 조예가 깊어 이런 음악 행사를 마련해 주신 윤종관 신부님께 마음속으로나마 다시 한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핸드벨 합주단의 이름은 '상투스'이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복지국 장애인복지과에서 봉사 활동을 하는 분들로 이루어졌다고 하더군요. 대학생이나 직장인으로 생활하며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 활동을 하는 틈틈이 핸드벨 연습을 하고 있다는데, 올 연말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연주회를 할 예정이라더군요. 나는 그분들께 감사의 표시로 정말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크고 오래 박수를 치곤 했지요.
이 기회에 핸드벨 합주단 '상투스'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안면도까지 오시어 참으로 좋은 파이프오르간 음악을 들려주신 김순천 님과 플룻 연주를 해주신 김태식님께도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인간 세상에 음악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음악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인들을 존경한다는 사실, 가끔씩이나마 음악 연주회를 즐기며 살 수 있는 것을 참으로 기쁘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음악이 있어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내 생각이 단순하긴 해도 틀린 것은 아닐 것 같고….
이 달 7일과 8일 이곳 충남 태안에서는 매우 뜻깊은 음악 행사가 있답니다. 태안군문예회관 대공연장에서 7일 저녁에는 'KBS교향악단 태안 가을연주회'가 있고, 8일 저녁에는 러시아 '볼쇼이합창단 초청공연'이 있다는군요. 이곳 태안에서 KBS교향악단의 연주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태안문화원 덕분이고, 작년에 이어 올해 또 한번 러시아 볼쇼이합창단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서산장학재단' 덕분이지요.
태안문화원과 서산장학재단에도 감사하는 마음 크고, 그런 음악 행사가 열릴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 주고 있는 태안군문예회관에 대한 고마움도 큽니다. 음악 연주회를 보며 느끼는 것 하나는, 내 삶의 주변들에 대해 갖게 되는 고마운 마음들이 더욱 크고 확실해진다는 것인데, 이런 소박한 마음도 나로서는 마냥 아끼며 즐기고 싶은 것이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