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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두 명의 학생이 스스로 죽었다. 며칠 전에 재수생이 죽더니, 엊그제는 초등학생까지도 죽었다. 매년 반복되는 끔찍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점점 학생들의 죽음 앞에 무뎌지는 것 같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까지 모두 더하면 도대체 한 해에 몇 명이나 죽는 것일까? 예년에 비추어 봤을 때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올해에도 몇 명은 더 자살할 것이다. 이런 사회가 정상인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인간이 왜 사회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심각하게 되묻게 한다. 이런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불행이다. 만약 죽은 학생이 학벌 없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는 학벌계급 차지싸움에서 희생된 것이다. 그의 선생님과 부모님 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 사회는 학벌이 지배한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몇 개 대학 출신이 이 땅의 권력 있는 자리를 몽땅 차지하고 있다. 권력을 독점한 이른바 일류대 출신은 자기들끼리 남 배척하는 패거리를 만들고 이 사회를 운영한다. 이러한 권력 집단에 들어갈 사람을 공정하게(?) 뽑는 장치가 입시다.

매년 치러지는 대학입시를 통해 일류대로 일컬어지는 권력집단에 들어가 지배계급이 될 것인지, 아니면 평생동안 차별 받고 살 것인지, 한 인간의 사회적 계급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몇 개 대학이 사회 권력을 독점하는 한, 사람 죽이는 입시경쟁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학생들은 권력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공정한(?) 입시경쟁에서 죽기살기로 싸울 것이다. 물론 계속 자살하는 학생들이 나올 것이고, 학교 교육은 지금처럼 시험문제 잘 풀어 입시경쟁에서 남을 이길 수 있는 시험선수를 길러낼 것이다.

이제는 모든 문제의 주범인 학벌계급을 하루빨리 깨뜨려야 한다. 몇 개 대학에 독점된 사회 권력을 빼앗아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 도대체 이 처절한 학생들의 계급차지 싸움이 언제까지 계속되고, 또 얼마나 더 많은 학생들이 죽어야 하는가?

학벌계급 자체를 없애지 않고서 이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매년 학생들이 자살할 때마다, 언론과 지식인들은 '입시제도를 바꾸자, 인성교육을 하자, 청소년들에게 삶의 존엄성을 알려주자' 같은 매우 기만적인 이야기만 반복해왔다. 그들이 침묵해온 문제의 본질은 특정 집단, 그 중에서도 서울대가 이 사회의 권력을 몽땅 갖고있는 것이다.

학생들이 죽어 가는데도 그동안 언론과 지배계급은 입시를 공정하고 정확한 능력평가 시험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학벌차별을 정당화해왔다. 우리는 이들이 퍼트려온 거짓이념에 속아 학벌계급 자체에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자살한 학생들을 탓하기도 했다.

이제 순수한 분노를 떳떳하게 바깥으로 끄집어내자. 나이 어린 학생들이 스스로 죽는 사회에 사는 우리가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이 나라가 제대로 된 사회였다면 학생들의 죽음에 이토록 무관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류대라는 권력집단에 속한 관료, 정치인, 언론, 지식인들은 결코 자기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입시라는 '죽음의 속임수 장치'를 계속 놔두면서 자신들의 권력집단에 들어올 권력 후계자를 충원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의 끝없는 권력욕 때문에 더 이상 학생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일류대 출신들이 퍼트려온 거짓이념 때문에 분노마저 잃어버렸던 많은 민중들, 기성사회가 만들어 놓은 굴레 속에서 자기 파괴적인 입시경쟁을 해왔던 학생들, 이들이 눈을 뜨고 일어나 이 말도 안 되는 사회를 뒤집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승진 기자는 '학벌없는사회 전국학생모임 회원(antihakbul.jinbo.ne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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