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제의 '노무현 계란 투척' 특종사진  지난 13일 노 후보가 농민대회에 참석해 '계란'을 맞는 사진. 이 사진은 주월간지 사진공동취재단 이름으로 각 일간지에 제공됐다.
문제의 '노무현 계란 투척' 특종사진 지난 13일 노 후보가 농민대회에 참석해 '계란'을 맞는 사진. 이 사진은 주월간지 사진공동취재단 이름으로 각 일간지에 제공됐다. ⓒ 주월간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4일자 각 일간신문들이 한 장의 동일한 사진을 서로 다른 크레딧(저작권 표시)으로 내보내 '저작권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해당 사진을 직접 찍은 기자가 명확한 저작권 표시 요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신문들은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나 주요 일간지들의 '저작권 불감증'이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13일 여의도 둔치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느닷없이 봉변을 당했다. 성난 농심(農心)을 달래기 위해 대선후보로서 연설을 하던 도중 군중 속에서 날아온 계란에 얼굴을 정면으로 맞은 것.

14일자 각 중앙일간지는 이날 오후 농민대회에 참석한 노무현 후보가 한 참석자의 '계란 투척'으로 봉변을 당한 사진을 일제히 실었다. 사진에는 왼쪽에 계란을 맞을 당시 노 후보가 서 있고 오른쪽에는 경호원 한 사람이 옷을 펼쳐 계란 투척을 막으려는 찰나의 장면이 담겨 있었다.

특종사진 제공 기자는 명확한 '크레딧' 요구
사진 협조 받아 써놓고 크레딧 표기는 제멋대로


농민대회장에서 노 후보가 계란을 맞은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이 때문에 대선 후보들의 연설 장면을 담기 위해 단상에 올라 있던 7, 8명의 사진기자들은 대부분 이 장면을 찍지 못했다. 이날 농민대회 현장을 지키던 100명 정도의 사진, 카메라 기자들은 단상이 좁아 모두 올라가지 못했고 8명 정도만 '풀단'을 구성해 사진을 공유하기로 했었다.

농민대회에서 노 후보가 계란을 맞은 사진을 유일하게 찍은 사진기자는 <오마이뉴스> 권우성 기자였다. 권 기자는 당시 현장에서 구성된 '주·월간지 사진기자' 풀단으로 다른 사진기자 1명과 함께 단상에 있었다. 일간지 사진기자들은 이와는 별도로 2명의 기자를 뽑아 단상에 올려보냈다.

'계란 투척 사건'을 포착한 주·월간지 사진기자단은 이 사진을 일간지 기자들과 공유하기로 하고 각 언론사에 사진을 제공했다. 다만 이들은 제공한 사진의 크레딧은 '주·월간지 사진공동취재단' 이름으로 내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일간지를 대표해 사진을 제공받은 <경향신문> 기자는 이 사진을 사진기자협회 홈페이지 <오늘의 사진>란에 올리면서 "저작권 표시를 '주·월간지 사진공동취재단'으로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는 사용 불가"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14일자 각 신문들은 이러한 조건을 무시한 채 '똑같은' 사진을 '다른' 이름으로 내보냈다.

<대한매일>과 <동아>는 14일자 신문에서 이 사진을 '사진공동취재단'으로 표기한 채 내보냈고, <중앙>과 <한국일보>는 '국회사진기자단'이라는 크레딧이 붙었다. 심지어 <매일경제>에는 '연합'에서 받은 사진으로 표시됐다. 애초 약속대로 '주·월간지 공동취재단' 이름으로 사진을 내보낸 언론사는 <경향신문>과 <세계일보> 뿐이었다.

같은 사진, 다른 크레딧.  주월간지 사진공동취재단 명의로 올려달라는 요청과는 달리 각 일간지는 서로 다른 크레딧을 달았다. 왼쪽부터 대한매일, 경향신문, 중앙일보.
같은 사진, 다른 크레딧. 주월간지 사진공동취재단 명의로 올려달라는 요청과는 달리 각 일간지는 서로 다른 크레딧을 달았다. 왼쪽부터 대한매일, 경향신문, 중앙일보.
'신문사의 자존심' 등 여러 이유로 저작권 표시 안해

이 같은 사실을 두고 일각에서는 일간 신문들의 '저작권 불감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 '신문사의 자존심' 등을 이유로 보도 사진의 저작권을 지키지 않는 '관행'의 비윤리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일간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사진기자는 "외국의 경우 사진을 받아썼을 때 신문사나 기자 이름까지 정확하게 밝혀주는 것이 관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크레딧을 밝혀 달라고 요구해도 안 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근래에 와서는 그래도 상황이 나아진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중앙일간지 사진기자는 "일반 언론사는 자존심이 있어서 다른 회사 이름을 넣기 싫어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 때문에 흔히 다른 신문이 찍은 사진이더라도 '연합'에서 다시 받아 그냥 '연합'이름만 넣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한편 크레딧을 정확히 하지 않은 채 사진을 내보낸 언론사들은 대부분 '실수'나 '오해'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계란 투척' 사진을 '국회사진기자단' 크레딧으로 내보낸 <중앙일보> 사진부 관계자는 "국회 출입기자가 그 사진이 '국회사진기자단'이 찍은 것이라고 해서 저작권 표시가 그렇게 됐다"고 밝혔다. 역시 '국회기자단' 이름으로 사진을 내보낸 <한국일보>의 사진부장은 "원래 편집 전에 그 자리에 있던 사진은 국회기자단이 찍은 다른 사진이었는데, 편집 과정에서 사진만 교체하고 미처 크레딧을 바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진을 다운 받는 홈페이지에 명확히 '크레딧'을 밝혀달라는 설명이 함께 붙어 있었다는 사실은 비록 '실수'라는 해명을 하더라도 석연치 않은 점들이 남는다.

'떳떳하게 얻어쓰자'는 결의에도 '저작권 불감증' 남아

그 동안 각 일간지들이 보도 사진의 저작권을 지키지 않았던 관례는 오랫동안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사항이다.

지난 2000년 3월에도 한국사진기자협회 편집위원회는 '서해교전 사진의 크레딧 도용'으로 불거진 저작권 침해 문제를 두고 각 일간지 사진기자와 '풀단' 대표들을 모아 토론회를 개최해 '윤리강령 도입' 등의 방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시에도 토론회 참석 기자들은 크레딧 도용이 "사진기자들이 자멸하는 길"이라며 "얻어 쓰더라도 떳떳하게 얻어 쓰자"고 결의했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공공연한 크레딧 도용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사진기자협회 석동률 회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 "<주·월간지 사진공동취재단>이란 명칭이 다소 생소해 편집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고의성은 없다고 본다"며 "타사 사진을 받아 게재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들어 사진기자들도 명확한 출처를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