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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과 연예인, 또는 문화예술인의 공통점을 하나 꼽는다면 아마도 대중의 지지를 먹고산다는 점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둘은 매우 닮았다. 흔히 연예계나 문화예술계는 대선과 큰 관련이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선은 사회 각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연예계와 문화예술계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때로는 소극적으로, 특정 연예인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지원한다. '이들의 만남'은 대중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회창은 개그맨 심현섭, 노무현은 영화배우 문성근·명계남, 정몽준은 가수 김흥국, 권영길은 영화감독 변영주. 2002년 말 현재 형성된 후보와 대표적인 지지 연예인 또는 문화예술인의 '만남'이다. 이들의 만남을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편집자 말>

 

연예계에도 이회창 대세론?

 

귀순여배우도 이회창 후보 지지자! / 김정훈 기자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11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직능특위 한사랑 봉사단 발대식에서 단장을 맡은 개그맨 심현섭(오른쪽), 탤런트 박철(왼쪽)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11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직능특위 한사랑 봉사단 발대식에서 단장을 맡은 개그맨 심현섭(오른쪽), 탤런트 박철(왼쪽)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1월 10일 오후 1시30분 국회 의원회관 대강당에서는 한나라당 '한사랑자원봉사단' 발대식이 열렸다. 한사랑자원봉사단은 팬클럽이 주축이 된 이회창 후보지지 조직으로서 젊은 연예인과 스포츠인도 약 2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연예인은 KBS 개그콘서트 팀과 탤런트 박철·김인문·한혜숙, 한나라당 강신성일 의원의 부인 엄앵란씨, 가수 조갑경·홍서범·이자연·이승철·신성우·변진섭·베이비복스 등이다. 스포츠인들로는 심권호·유남규·오경훈 등 금메달리스트들이 참석했다. 유남규씨는 한사랑자원봉사단 홍보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이날 분위기는 개그맨 심현섭씨를 중심으로 한 개그콘서트 팀이 주도했다. 참석한 개그콘서트 팀원은 김철호·김대희·강성범·이병진·황승환·이태식·박성호·김숙·김미진 등이다. 이들은 심씨의 리드로 이회창 후보가 입장하고 퇴장할 때마다 "이회창! 대통령!"을 연호했고, 발대식의 사회는 '운동권 학생 흉내'가 특기인 개그맨 박성호씨가 봤다. 이 후보는 개그콘서트팀과 함께 즉석해서 약식 난타 공연을 벌였는데 자주 박자가 틀리는 이 후보에게 심씨는 "박자감각이 좋다"고 치켜세웠다. 심씨는 발대식 때 이 후보 옆자리에 앉아 귓속말을 하며 친근한 사이임을 나타냈다.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연예인 수는 약 1200여명에 이른다. 적어도 양적인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다. 한나라당에 몰리는 연예인들은 '연예인홍보단'과 '한사랑자원봉사단'으로 묶여서 관리되고 있다. 지난 6일 중견급 연예인을 중심으로 발족한 연예인홍보단에는 무려 10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 발대식에는 방송인 이창명씨와 가수 현미·한명숙·김수희·문희옥·김혜영·최석준·박상민, 코메디언 배삼룡·구봉서·황기순, 탤런트 사미자·양택조·임채무·전원주씨 등이 참석했다.

 

또 너훈아(본명 김갑순)씨 등 이미테이션 가수들도 눈에 띄었고, 영화배우 출신 강신성일· 신영균 의원도 참석해 이들을 격려했다. 연예인홍보단은 탤런트 석현씨가 단장을 맡아 주도하고 있고, 가수 설운도씨와 코미디언 이용식씨 등 30여명이 부단장을 맡고 있다. 석현씨는 97년 대선부터 이 후보를 지지했다.

 

구봉서씨는 인사말에서 "석현씨 소개로 이 후보를 만난 지 3년이 됐다"면서 "이 후보를 모신 것만으로 우리는 만족하고 행복하다, 이것이 우리가 애국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랬듯이 이 후보 뒤에는 우리가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서청원 대표는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많은 원로 연예인들이 망라된 자리는 처음"이라며 "이것이 민심이다. 이번 선거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돼 흐뭇하다"고 말했다. 서 대표의 말대로 이날 모인 연예인은 숫자가 매우 많았고, 또한 대부분 원로였다. 이 후보의 지지층이 주로 50대 이상 노령층인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이 후보측이 적극 내세우는 젊은 연예인은 개그맨 심현섭씨와 탤런트 박철씨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젊은 층을 공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적극적인 지지와 활동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한사랑자원봉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다. 심씨는 과거 민정당 총재비서실장을 지낸 심상우 전 의원의 아들이다. 심 전 의원은 아웅산 테러사건 때 사망했다. 심씨는 이후 별다른 정치적 활동을 해 오지 않다가 이 후보와 친분을 쌓은 뒤 개그콘서트 팀 성원 대부분을 한사랑자원봉사단에 동참시켰다.

 

이 후보 지지의사를 밝힌 연예인들의 특징은 숫자는 많지만 대체적으로 연로하고 뚜렷한 정치 지향점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왜 이회창을 지지하는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법조인 출신이기 때문에 깨끗할 것 같다", "인상이 좋다", "아버지 같이 따뜻하다"고 말한다. 단지 '얼굴마담' 이상의 정치적 동기부여가 적다는 말이다. 당연히 이들에게서 문성근·명계남씨에게서 풍기는 후보에 대한 진정성을 느끼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헌신적인 노무현 지지 문화예술인

 

개혁국민정당 창당 발기인대회에 참석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지연설을 한 문성근씨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개혁국민정당 창당 발기인대회에 참석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지지연설을 한 문성근씨와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반면 노무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이나 문화예술인은 차원이 조금 다르다. 대표적 인물인 영화배우 문성근·명계남씨는 거의 노 후보를 위해 자신의 본업을 내팽개치다시피 할 정도로 헌신적이다. 문성근씨는 현재 개혁당 창준위의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고 명계남씨는 민주당 국민참여운동본부 부본부장과 100만 서포터즈 사업단장으로 '희망돼지'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거의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연예인의 몇 백명 몫을 너끈히 해내고 있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지난 11월 3일 민주당 국민참여운동본부 서울지역 발대식에서 명계남씨는 "한나라당은 돈으로 선거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감동으로 선거합니다!"라며 사자후를 토해 박수를 받았다. 노 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문성근씨의 노무현 지지 호소 연설 동영상을 보고 마음이 움직인 사람도 많다.

 

진정성과 헌신성 차원만이 아니다. 이미 문화예술계 약 400여명은 작년 12월 17일과 올해 3월 25일 두 차례에 걸쳐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참여 인물의 면면을 보면 단순한 연예인 모임이 아니다. 정지영(나쁜영화)·이창동(오아시스)·김동원(독립영화감독)·김광수(해피엔드)·김대승(번지점프를 하다)·류승완(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박기형(여고괴담)·서우식(넘버3)·이민용(개같은 날의 오후)·이현승(시월애)·곽재용(엽기적인 그녀)·김미희(주유소 습격사건)·송일곤(꽃섬)·신철(편지)·유인택(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영재(내 마음의 풍금)·이은(JSA)·조진규(조폭마누라)씨 등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나 영화제작자가 거의 망라돼 있다.

 

또한 애니매이션계의 박재동 화백이나 가수 정태춘, 음악평론가 강헌, 시인 고규태·노혜경·안도현, 소설가 김영현·김하기, 공연연출가 김정환, 연극과 김대현 교수, 영화배우 권해효·방은진 등 전 문화예술계가 골고루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록그룹 윤도현 밴드도 노 후보의 심정적인 지지자다.

 

노 후보측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연예인·문화예술인과의 차이점으로 △연예인에 치중하지 않고 문화예술계 전반이 망라되어 있는 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아래로부터 꾸려진 점을 꼽았다. 실제로 노문모(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는 아직 국민경선을 통해 노 후보가 떠오르기 훨씬 전인 작년 5월부터 문화예술계의 대선참여를 논의하고 노 후보 지지로 가닥을 잡아나갔다. 이들은 노 후보 지지 성명서에서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리지 않기 위해, 민주개혁세력의 힘을 결집할 수 있으며 전국적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국민통합후보로서 우리는 노무현 고문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적 이유와 명분이 분명한 것이다. 노문모 초기부터 관여했던 개혁당의 김종선씨는 "문화예술계가 단순한 얼굴마담이 아닌 대선에서 한 부문으로서 자기 몫을 확실히 찾아나가는 의미를 가진다"면서 "한나라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선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흥국에 의존하는 정몽준, 비장한 감동을 주는 권영길

 

정몽준 축구협회장과 가수 김흥국씨가 상암동 연습구장에서  친선 축구 경기를 한 뒤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몽준 축구협회장과 가수 김흥국씨가 상암동 연습구장에서 친선 축구 경기를 한 뒤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에 반해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측과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측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정 후보 지원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연예인은 역시 축구광인 김흥국씨다. 지난 93년에 정 후보가 축구협회장에 취임했을 때 "우리 함께 축구발전 일궈봅시다"라고 김씨에게 청해온 데서 인연이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축구로 맺어진 사이. 김씨는 현재 정 후보의 문화예술특보를 맡고 있으며 각종 행사에 정 후보와 동행하고 있다. 그는 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10년 동안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MC도 내던진 상태다.

 

이외에 국민통합21 여의도 당사 개소식 때 참석한 연예인은 탤런트 강부자, 연극배우 윤석화, 가수 겸 작곡가 노영심, 가수 김상희 등이다. 이들은 모두 정 후보와 함께 축하 케이크를 잘랐다. 주목할 인물은 강부자씨. 강씨는 정 후보의 아버지인 정주영 전 회장과 30년 이상 교분을 쌓아온 사이로서 지난 92년 국민당에도 참여해 국민당 소속 전국구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힌 연예인들은 '철새'라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김흥국씨는 지는 97년 대선에서 연예인 자원봉사단으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를 지지한 바 있고, 강부자씨는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했다. 당사 개소식 때 축사를 했던 김상희씨는 92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지만 5년 뒤인 97년 대선 때는 한나라당 소속 연예인 모인인 '한나래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 5일 대전 창당대회 때 신당발기인으로 참여했던 탤런트 백일섭씨는 92년 대선 때 국민회의에 입당한 바 있고, 남궁원씨는 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다.

 

이외에도 정 후보 지지 연예인군은 가수 김현정·방실이·이은하·이태원, 탤런트 손지창·차인표·박상원·이서진·이상아·임호, 개그맨 박경림·김수용씨 등이다. 또 소설가 윤후명, 성악가 박인수, 축구선수 홍명보도 음으로 양으로 정 후보를 돕고 있다. 국민통합21측은 "연예인을 조직해 모임을 만들어서 선거운동을 할 계획은 없다"면서 "김흥국씨나 강부자씨 정도가 가장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지지 의사를 밝힌 문화예술인들은 규모는 가장 작지만 비장한 감동을 준다. 지난 11월 5일 민노당 여의도 중앙당사에서는 여성선거운동본부 발대식과 함께 여성 홍보위원단 발표가 있었다. 영화감독 변영주, 소설가 공선옥·김중미·송경아씨 등은 다음과 같은 글을 읽으며 민노당 운동을 벌이기로 약속했다.

 

"강미희씨는 10년 빈민지역에서 이웃으로 지낸 아줌마다. 미희씨가 온 몸에 멍이 들어 우리 집으로 도망올 때마다 나는 사진기를 들이대며 말했다. '끝내, 아이들을 위해서도, 끝내, 어떻게 살아도 지금보다는 사람답게 살 거야.' 그런데 요즘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깨닫는다. 이 땅에서는 못 배우고 힘없는 여자가 혼자 살아가는 게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꿈을 접어야 하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난 그녀들과 꼭 꿈을 이루고 싶다. 그리고 내 말에 책임을 지고 싶다. 나는 이 사회에서도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이 꿈을 키우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이 땅에서 땀흘려 일하고 살면서도 불평등과 차별, 억압으로 고통받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주 간절히. 바로 그런 간절한 염원이 우리가 민주노동당과 함께 하는 이유다."

 

이들은 앞으로 여성들과 진보적 문화 대중인과의 다양한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분야 종사자들의 지지도 함께 조직하고, 글을 쓰는 작가들이 대부분인 만큼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민노당 지지 글도 띄울 생각이다. 민노당도 이미 오래 전부터 문화예술인이나 연예인 지지자들을 모으려고 힘을 쏟았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대학 때 민노당 당원으로 가입했던 베니스 영화제 신인상의 주인공, 영화배우 문소리씨의 공개지지를 끌어내려 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주간 <오마이뉴스> 제28호에도 실렸던 글입니다.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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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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