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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서울 정토법당에서 통일민들레 전국순례 발대식을 가졌다
11월 16일 서울 정토법당에서 통일민들레 전국순례 발대식을 가졌다 ⓒ 정토회
2002년 11월 20일, 통일민들레 전국순례 넷째 날, 참회의 날이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참회합니다'를 명심문으로 살아보는 날. 묵언으로 하루를 살펴보는 날이 되면 더욱 좋을 듯하다.

통일민들레 전국순례단은 오전 9시 30분 대구 인근 경산시 평산동 '경산페코발트광산'에 도착했다.

경산대 정문이 보일때쯤 우측으로 난 길로 들어가서 10여분 굽어진 길을 올라가면 80년대 들어선 안경공장이 나온다. 물론 명패가 있는 것은 아니다. 흰색과 주황색의 건물 모두 유리창이 깨어졌고 음산한 분위기다. 안경공장 옆으로 폐광산이 있다. 오늘 이곳에 참배를 하러 온 것이다. 구천을 떠도는 넋들의 외침이 들리는 곳이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다. 천도제를 지낸다. 초를 켜고 향을 사른다. 천수경을 시작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예를 한다. 어느 정도의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면 영혼을 달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우리가 어리석어서 발생한 일인데.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나와의 만남 시간이다. 참회의 시간이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 다시금 새겨 보는 시간이다.

경산페코발트광산은 일제가 대동아전쟁 당시 수탈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곳으로, 한국전쟁 당시 50년 7, 8월경부터 일년동안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돼 3천여명 양민들의 학살지로 알려진 장소다.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유골더미를 직접 보고 있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감정을 솟구치게 한다. 10대부터 50대까지 남녀 가리지 않고 흩어져 쌓여 있다.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지금에서라도 찾아와 준 것으로 그들의 영혼이 위로될 것인가.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마나 분노했을까. 어찌하면 좋을까. 이 막막함을, 이 안타까움을...

정토행자들이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며 명상을 하고 있다
정토행자들이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며 명상을 하고 있다 ⓒ 정토회
무지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학살당한 사람이나 학살한 사람이나 모두 어리석어서 생긴 일이다. 나만을 생각하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행한 일이다. 그때는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참회합니다.

영가시여 빈손으로 오셨듯이 가실때도 빈손으로... 억울하다는 한생각을 돌이키면 억울할 것도 없고... 공한 도리를 아시옵고... 왕생극락하옵소서... 맘속으로 자꾸 되뇌인다. 저희들이 풀어가겠습니다. 인류가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02년 11월 20일 오후 2시, 통일민들레 전국순례 넷째날, 대구지역 캠페인 날이다.

정토행자 90여명이 두시가 동안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앞에서 캠페인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백화점 앞 사거리다. '마음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는 둘이 아니다.'가 오늘의 주제다.

대구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캠페인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떤 여운이 남을까. 유골더미를 보고 온 뒤에 진행되는 캠페인이 진지하게 다가온다. 참회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참회에 대한 공유가 가능할까.

풍물이 신명나게 길을 열었다. '부산에서 시작한 이번 캠페인은 울산과 마산 등 남도의 통일열기를 모아서 대구까지 왔습니다.' 정토대구법당 전병득총무님의 인사말이 끝난 뒤 두줄로 늘어서 거리행진을 한다. '통일의 나무되어 평화의 숲이 되어. 나의 평화 세계의 평화, 한반도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어야 됩니다.' 여러 가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한다. 재미나게 풍물로 놀이같이 시작한 것처럼 신나게 같이해 보자고 거리행진을 한다.

거리행진 후 오늘은 참회의 날로 참회의 절을 한다. 네방향으로 시민들을 바라보며 절을 한다. 한배한배 절을 할 때마다 쌓였던 민족의 한이 풀어지기를, 아픔과 고통이 사라지기를, 과거에 우리가 저지른 어리석음을 반성하는 시간이다.

'등안시하고 모른척하고 남탓만 한 것을 참회합니다. 통일되지 않은 것이 남북의 정치인 탓이라 했습니다. 참회합니다. 경제가 어려운 것도 기업주들의 폭리 때문이라고 탓했습니다. 사회가 불안정한 것도 모두 남탓이라 했습니다. 참회합니다. 모든 것이 내탓입니다. 나 먼저 참회합니다.' 천천히 한배한배 참회의 절을 한다. 어리석었음을 온 몸으로 진참회를 한다.

참회와 거리명상 후 북한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모금활동을 한다. 김옥자(42세)님은 대구에 사는 정토행자로 모금활동을 하기 전에는 내 일 남의 일이 구분 되었고, 가족만 생각하던 것에서 1년 동안 모금활동을 하다보니 주어지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게 되었고, 나와 가족, 법당일이 전체로 보이게 되었다며 당당하게 말한다.

또한 조옥분(45세)님은 옛날에는 북한사람과 통일한다는 것이 싫었는데 모금을 하다보니 하나가 되는 것이 너무 좋은 것이라고 느껴졌단다. 사람들하고 대화가 엇갈릴 때 상대방의 마음이 되어보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단다. 이것이 통일이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해서 남탓으로 돌렸던 것을 떠올려 오늘 참회했다고 한다. 보기 흐뭇한 광경이다.

이렇게 통일은 나로부터 되어가고 있다. 전국에서 하나 둘씩 통일의 씨앗, 평화의 씨앗, 통일민들레가 피어나고 있다. 참회는 통일로 나가는 지름길인 것 같다.

대구지역에서 진행된 넷째날 거리캠페인이 풍물과 어우러져 왁자지껄하게 막을 내린다. 모두 흥에 겨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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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성찰을 통해 개인적 과제를 극복하며,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늘 정면으로 응시하고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연대하며 사는 교육운동가입니다. 오마이뉴스의 살아있는 시대정신과 파사현정(破邪顯正) 사필귀정 [事必歸正] 정론직필[正論直筆] 기자 정신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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