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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22일, 통일민들레 전국순례 여섯 번째 날이다. 희망의 날이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주인으로 살겠습니다. 주인으로 공경하겠습니다.'가 오늘의 명심문이다. 무엇인가 기분 좋아지는 단어들이다. 간결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함하는 문구다. 잘 풀려나갈 것 같은 날이다.
통일민들레 전국순례단은 아침공양 후 컵등을 만든다. 하얀색 연잎으로 영혼을 위로하겠다는 마음이다. 오늘 순례지로 떠날 마음가짐을 준비한다. 순례지는 망월동 5.18묘역이다.
나무대신 꽃 대신 산을 덮고 있는 묘역에 들어선다. 구묘역이다. 아직 신묘역으로 옮겨지지 않은 그래서 돌보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묘역으로 민족민주열사 36분이 안치되어 있다. 정의행님은 아직도 가슴이 미어져서 말을 잊지 못한다고 오월의 빛 김효석님께 마이크를 넘긴다. 동창생의 묘 앞에서 고2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이야기하신다. 죽음에 나이순서가 없겠지만 너무 어린 나이다. 갖가지 사연이 적힌 그래서 목이 메여도 눈물이 나오지 않고 말도 목에 걸려 소리되지 못한다.
'5월 광주민주화 운동의 의의는 시민 전 계층이 주체가 되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라고 한 문장으로 말하기에는 부족하리만큼 가슴이 아프다. 사진자료전시실에 들어선다. 머리 터진 사진, 가슴 잘려 나간 사진... 잔인하여 글로 표현하기도 두렵다. 입으로 전해지던 미끼지 않은 이야기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그림 121점이 무언의 말로 전한다.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을까.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었을까. 억장이 무너진다. 갑갑하여 가슴이 터질듯한데 어찌하면 좋은가. 숨을 크게 들여 마셔본다. 아 답답하다. 신묘역 추모탑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모두 표정이 어색하다.
오늘은 북한동포를 생각하며 점심한끼를 굶는 날이다. 다행이다. 하루세끼 먹는 것이 얼마나 송구한 날인가. 참회의 날이 아니어도, 염원의 날이 아니어도, 참회하고 염원을 한다. 5월 봄풀이 지금 홀씨 되어 뿌려진다. 죽음이 보람되어 헛되지 않게 어리석음이 되풀이되지 않게 희망의 모습으로 우리가 맡으려 한다.
2002년 11월 22일, 통일민들레 전국순례 여섯 번째 날, 희망의 날. 오늘은 대전에서 캠페인을 한다.
정토회 대전법당에서는 캠페인에 앞서 재를 올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어린이를 위해 모금활동을 하던 최미전님의 49재중 4재째다. 생의 마지막 부분을 함께 한 소중한 인연에 감사드린다. 환하게 미소짓는 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은행동 상가거리인 으능정이 문화거리에서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할 캠페인을 알리는 충남대 풍물소리가 요란하다. 70여명 정토행자들이 시민들과 피켓으로 대화를 나눈다. '내 마음의 평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해결해 나가겠습니다.'라고 정토회 대표 유수스님께서 인사말을 하신다. 뒤이어 대전법당 총무인 전외자님께서 대전시민들께 부산에서 대전까지 희망의 통일민들레가 날아왔다고 인사를 드린다.
오늘은 특별한 두 분이 오셨다. 북한동포가 참석한 것이다. 2002년 1월 7일에 한국에 와서 4월부터 대전에서 살고 있는 분이다. 북한동포를 위해 힘이 되고 하루 시간 받쳐 행사해 주니 고맙다고 한다. 같은 동포를 위해 이렇게 애쓰는 것 몰랐는데 통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고 돈을 벌어 기금을 마련하겠다고도 한다. 이렇게 작은 부분부터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가고 있나보다. 희망이 보인다. 통일민들레가 홀씨되어 날아가고 또 날아가는 모습이다.
캠페인이 열리고 있는 문화거리 건물마다 걸려있는 상점의 이름들을 본다. 그곳에 캠페인피켓이 섞여 움직이고 있다. 새롭게 선보이는 핸드폰을 선전하는 멘트와 내 마음의 평화와 한반도의 평화가 둘이 아니라는 캠페인 멘트가 어루러져 거리에 울려 퍼진다. 쉽게 돈을 구할 수 있다는 선전문과 함께 금방 나누어준 통일민들레 홀씨되어 전단이 거리에 뒹굴고 있다.
시민들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자신있게 그들에게 맡겨 보련다.
2002년 11월 22일, 통일민들레 전국순례는 서울정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통일미래를 준비하는 연속대화마당 143강 마지막 강의를 듣는 것으로 오늘 일정을 정리한다. '통일미래와 인류문명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법륜스님께서 강의를 하신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 지구상 40여 곳에서 이념, 종교, 종족, 성별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벌어지고 있는 분쟁을 해결해 주는 사례가 된다고 하신다. 이 세상 인류의 분쟁을 평화로 해결하는 희망이란다. 남과 북의 힘없는 민중의 고통이 해결되고 보통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통일이 필요하다. 물질적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정신적 평화로 메꾸어 나가는 삶의 모습이, 도덕적 강대국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우리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주인 되어 살아가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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