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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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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대로 이 책이 좀 오래됐다.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 있고 가끔씩 화장실 변기 위해 며칠씩 놓여있는 책 초판날짜가 1992년 12월 25일이다. 만 10년에서 딱 한 달이 모자란다. 번역서인 탓에 책이 최초로 나온 날짜는 이보다 훨씬 전일 게 분명하다. 그러니 지금 고릿적 책을 들먹이고 있는 중이다. 하긴 작가 마빈 해리스가 책에 쓴 내용은 정말 고릿적 이야기다. 기원전 시대와 원시 부족사회의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그럼에도 신선하다.

제목이 알리듯이 책은 각 문화의 독특한 먹을거리에 대한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다행히 작가가 품은 의심은 우리도 궁금해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꼬리부터 머리끝까지 못 발라먹어 안달인 소고기를 두고 인도 사람들은 죄악이니 어쩌니 하며 소를 신성시하고 떠받드는 걸까?

어째서 값비싼 달팽이 요리를 아껴 먹을 게 분명한 어떤 프랑스 여자는 개고기를 먹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야만인 취급을 할까? 식인종들은 왜 돼지고기, 소고기, 개고기도 있는데 사람 고기를 즐겼을까? 그 현상은 알았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거나 막연히 종교, 습속 때문일 것이라 여겼던 것에 대해 작가는 보편 상식과 기본 과학 상식을 적용해 그 이유를 풀어냈다.

그래서 책은 읽기 쉽다. 두껍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몇몇 생소한 고유명사를 잘 기억해 둔다면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는 빠르다. 번역자인 서진영씨가 우리말에 충실하게 번역을 한 덕에 비문이 적어 읽기와 이해가 따로 노는 일이 드물다.

무엇보다 읽는 내내 독자를 편하게 하는 이유는 해박한 현지 조사에 바탕한 명쾌한 논리에 있다. 인도인이 흰 소를 먹지 않는 것은 교리 이전에 타고난 자연·인문 환경에서 살아 남기 위해 소의 힘이 필요했던 탓이고, 작가는 인도 고유의 자연·인문 환경을 알려 독자를 납득시킨다.

간단한 이치로 독특한 먹을거리 선호를 밝히고 있어서 깊이와 무게를 찾는다면 도대체 답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깊이와 무게에 허우적거리지만 않는다면 우리와 다른 문화를 십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노란 정장본 책이 반가운 가장 큰 까닭은 편견 없이 문화를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외국인이라는 고정된 틀을 버리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이 분명하다는 상식에서 외국의 먹을거리에 접근한다. 서양 사람이라고 혀가 달라 고기만을 찾지는 않을 것이요, 동양 사람이 유별나게 튼튼해 완전식품이라는 우유를 멀리해왔던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어떤 방식이든 다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는 게 작가의 글쓴 태도다.

오랜 식 습관인 개고기로 그렇게 턱없이 모욕스런 대우를 받았으면서도 혹시라도 손으로 밥을 뭉치는 인도인에게 불쾌한 마음을 보였다면 우리는 오만함을 의심해야 옳다.

또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피해사례를 접할 때마나 일정 부분 우리의 오만함을 확인한다. 그 오만함이 비단 돈으로 얽힌 노사관계에 국한한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무턱대고 업신여기는 편견이 큰 까닭이었을 터이다. (못사는 나라)외국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 문화를 이해할 노력따위는 성가시다고 여기는 한 우리는 오만한 자이다.

<문화의 수수께끼>를 읽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그들만의 식탁을 차리는지 알았다고 해서 그들의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는 없다. 다만 작은 이해나마 발판으로 삼아 더 많은 이해와 화해로 나아갈 수는 있다. 재미있게 책도 읽고 오만한 자의 탈도 벗을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하니리포터'에도 보냈습니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마빈 해리스 지음, 서진영 옮김, 한길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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