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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라는 말은 이미 시사-정치 용어로 정착된 말이지만 그다지 좋은 용어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386'이라는 사회적 개념과 '세대'라는 인구학적 개념이 어거지로 맞붙여진 이상한 조어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세대'라는 말을 쓰려면 '386'을 포함하는 더 큰 개념으로 '삼별육'이라는 이름을 쓰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386'이라는 이름도 여전히 유용합니다. 80년대에 대학에 다녔던 '386'은 '삼별육' 세대의 일부이자 그 전위(前衛)이기 때문입니다.

[386세대론]의 첫 글에 대한 반론이 있었습니다. "글의 취지는 동의할 수 있지만 이렇게 사실관계가 틀려서야..."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취지에 동의해 주신데 감사하면서 문제가 된 '사실관계'를 해명하지 않을 수 없군요.

문제의 '사실'은 '386'이라는 이름이 사용됐던 처음의 뜻은 모욕과 냉소가 아니라 희망과 기대였다는 지적입니다. 베가본드님은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이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는 XT, AT를 거쳐 대중화되기 시작한 PC에 더 진보된 인텔 프로세서를 적용한 것을 '386'이라는 용어로 통칭하게 되면서... 새로운 흐름, 보다 뛰어난 성능 등의 의미를 차용하여 사회참여에 적극적이고 깨어있었던 80년대 학번들이 본격적으로 사회 진출하는 시기에 맞물려 탄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즉, 조롱이나 부정적인 의미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움에 대한 기대, 갈망 등의 욕구를 희망 삼아 부르기 시작한 것이라는 겁니다."

저 역시 그렇게 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386들은 그렇겠지요. 그렇게 보고 싶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고도 싶었겠습니다. 그것은 80년대에 시작한 '일'을 어떻게든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의무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게 보아주지 않았다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적어도 언론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386'이라는 말이 맨 처음 어디서 어떻게 생겼는지는 저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아직 외국 생활 중인 저로서는 인터뷰나 체계적인 문헌 조사 같은 방법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언론'에 나타난 그 말의 용례를 조사해 보는 것으로 일단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신문을 조사했습니다. 비교적 진보적인 <한겨레>와 수구적인 <조선>을 검색해 보았지요. 그마저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겨레>는 97년부터만 기사 검색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그나마 93년부터 검색해 볼 수 있었습니다.

<조선> 검색 결과를 보면 93년 4월경에 이미 한국인의 386급 컴퓨터 보유비율이 286급 보다 높습니다. KBS연구원의 조사결과를 전한 이 기사(93년 4월20일)에 따르면 386급 보유 컴퓨터 인구가 28.9%, 286급 비율은 25.3%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당시 최첨단이던 386 컴퓨터는 그 '최첨단'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했습니다. 곧이어 출시된 486컴퓨터 가격이 벌써 93년초부터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2년 10월경 3백30만원씩 하던 486컴퓨터는 '상운,' '삼보,' '금성' 등이 가격을 1백만 원대로 인하하면서 급속히 보급됐기 때문입니다. 그게 93년 2월경의 일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94년 2월경에는 멀티미디어 기능을 제공하는 66메가헤르츠급 486컴퓨터가 나타납니다. 94년 2월4일자 <조선>의 한 IT기사는 "386급 컴퓨터는 이미 단종"됐다고 전합니다. 따라서 386컴퓨터의 상품 수명은 기껏해야 92년경부터 93년까지 약 2년여에 불과합니다.

이번에는 '386세대'라는 말이 언론에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살펴봤습니다. 검색 결과에 나타난 '386세대'에 관한 <조선>의 최초의 기사는 "[열린공간30] '386세대' 신30대가 움직인다"(97년 1월4일자)입니다. 그 기사 첫머리는 이렇습니다.

"X세대의 선두그룹으로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20대. 마지막 보수세력을 자처하고 있는 40대. 그 사이에 어정쩡하게 낀 '샌드위치 세대'로 해야할 말조차 삼가온 30대. 격동의 80년대를 가슴으로 살았던 이들의 열정과 도전 정신은 어디로 갔나."

또 같은 해 3월19일자 "가보셨어요?-일산 애니골"이라는 여행기사에서는 "이른바 '386세대'가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철길을 건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전합니다. 9월23일자의 한 기사는 "[막간] '386세대'의 아픈 세상살기"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98년11월4일자 신문 기사의 제목도 "[우리는 H세대]고개숙인 30대...'우리가 설곳은 어디?'"입니다. 예의 "X세대-기성세대 사이에서 정체성 혼돈"을 겪고 있다고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소위 전문가들의 진단이라는 것까지 곁들여서 말입니다.

요약하면, 386컴퓨터가 '최첨단'이었던 기간은 92년과 93년의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386세대'라는 이름이 언론(적어도 <조선>)에 기사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5년이 더 지난 97년경의 일이었습니다. 빨라야 96년경이었겠지요. 그때는 이미 486을 넘어서 펜티움 프로세서가 출시되던 시기입니다. 386컴퓨터는 퇴물취급을 받았고 그 시기에 '386세대'라는 말이 언론에 퍼지게 됩니다.

이런 사정은 <한겨레> 기사를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됩니다. 97년 6월12일자 <한겨레21>의 기사는 지자제 선거에 출마한 두 30대를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역사에서 한 시대에 진보적 구실을 했더라도 변화된 조건과 처지에 맞는 구실을 찾아내지 못하면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끼인 세대' '386세대'가 아니라 6월세대가 갖는 긍정적 가치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때, 대중들은 이들 세대에게 더욱 많은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할 것이다."

이 <한겨레21>기사의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우선 '386세대'라는 말을 제목이나 소제목으로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그게 그다지 보편적인 용어가 아니었다는 간접적인 증거지요. 게다가 '386세대'라는 말의 뜻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끼인 세대'와 같은 뜻으로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신 '6월 세대'라는 말을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386세대'라는 용어가 긍정적인 것이었다면 그랬을 리가 없었겠습니다.

'386' 당사자들은 그 이름을 긍정적이라고 보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끼인 세대'라는 뜻으로, 혹은 순식간에 '최첨단'이기를 포기당하고 '단종'되어버린 세대라는 뜻으로 썼던 것이지요. 그게 바로 '사실(事實)'입니다.

이렇게 '386'이라는 이름을 두고 엇갈린 평가를 드러낸 것 자체가 흥미 있는 일입니다. 어째서 한국 사회는, 특히 언론은, 그 세대에게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꼬리표를 달아주려고 했는지가 궁금해지기 때문입니다.

너무 앞선 주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일종의 한국 사회 내의 '이데올로기 싸움'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변혁의 에너지를 가지고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하려는 386들과, 그들에게 '퇴물'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주면서까지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수구세력 사이의 이데올로기 싸움 말입니다.

그런 이데올로기 싸움의 1회전은 수구세력의 승리로 돌아갑니다. '386세대'라는 이름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뜻으로 통하기 시작했었으니까요. 기껏해야 '옛날에는 한가락했으나 지금은 사그러져 버린' 세대로 말입니다.

하지만 98년과 99년을 전후로 이루어진 2회전에서는 사태가 좀 역전됩니다. 정치권의 '젊은 피 수혈'이 이뤄지면서 '386세대'라는 이름은 그 긍정적인 뜻을 다소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386'이라는 이름은, 베가본드님의 지적대로, '희망과 기대'를 담을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젊은 피 수혈'을 전후로 '386세대'라는 말이 '정치 용어'로 굳어지면서 또 한가지 위험성이 나타났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걸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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