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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에는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11월30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에는 1만여 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 무죄평결' 이후 한국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미열풍은 그야말로 '요원의 불길'이라 표현될 수 있을 정도로 사회 각계각층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관련해 유신독재의 70년대와 군사독재의 80년대를 지내오며 '문인의 사회참여'를 지속적으로 실천해온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 현기영·이하 작가회의)가 2002년 겨울 한국에서 불고있는 반미열풍에 적극 동참할 뜻을 천명하고 나서 주목된다. 특히 '반미=친북'으로 규정됐던 과거 독재 시절, 탄압을 받으면서도 '반미'를 외쳤던 작가와 작품에 대해 재조명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작가회의 산하 자유실천위원회(위원장 김영현)와 청년위원회(위원장 한창훈)는 12월6일 오후6시 마포구 아현동 사무실에서 긴급회의를 열어 7일 광화문 촛불시위 참가와 14일 범국민대회 참여, <반미문학의 밤> 개최와 무죄평결 항의농성 등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 작가회의 전성태 사무국장은 "(이번 반미열풍은) 운동가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일어난 자발적인 움직임이라는데 그 의의가 크다"며 "이는 우리사회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것 아니겠냐"고 현재의 반미열풍을 분석했다.

그는 또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목소리가 작가들에게 자기반성의 계기를 주고 있다"면서 "12월7일 촛불시위에는 이미 40~50여명의 작가가 참가를 약속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향후 반미 관련집회의 지속적 참여도 작가회의 차원에서 적극검토 중"이라는 것이 전 국장의 설명이다.

지난 11월28일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주한미군 범죄의 무죄평결에 대한 한국 문학인 1052명의 견해'를 발표하는 문인들.
지난 11월28일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주한미군 범죄의 무죄평결에 대한 한국 문학인 1052명의 견해'를 발표하는 문인들. ⓒ 홍성식
12월7일 종묘 인간띠잇기 대회와 광화문 촛불시위에는 현기영 이사장과 김영현 자유실천위원장, 이승철 부위원장, 한창훈 청년위원장, 전성태 사무국장, 소설가 김지우 등 50여명의 작가회의 회원이 참가할 예정이며, 6일 저녁에는 청년위원회 소속 젊은 작가들이 집회참가 준비를 위해 '불평등한 소파개정'과 '부시의 사과'를 촉구하는 피켓과 플래카드 등을 제작했다.

<반미문학의 밤>은 대통령 선거 이전에 연다는 원칙을 세웠다. "문인들의 (반미 관련) 자작시·산문 낭송과 반미 강연에 덧붙여 정태춘, 안치환, 윤도현 등 대중가수들의 공연을 결합하는 방식을 고민 중"이라는 것이 전성태 국장의 부연. <반미문학의 밤> 행사 이후에는 미군의 무죄평결에 항의하는 농성이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반미문학의 시발은 벌써 37년 전 <분지>로...

이러한 작가회의의 '반미 기조'는 생경스러운 것이 아니다. 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은 '반미'를 말하는 것이 '친북'이 되고 '친북'이라는 낙인이 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위협하는 '족쇄'였던 엄혹한 시절에도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탐구와 미국의 위선을 지속적으로 문학작품에 반영해왔다.

한국 현대문학에 있어 반미소설의 효시격인 작품은 1965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남정현(69)의 <분지>다. 홍길동의 자손임을 자처하는 홍만수라는 돈키호테적 인물이 미군의 아내를 강간하고, 미국의 최정예부대와 단기필마로 맞선다는 내용을 가진 이 소설은 비현실적인 상황설정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통쾌함을 독자들에게 던졌다.

홍만수가 미군의 아내를 겁탈한 이유는 자신의 어머니가 미군에게 강간당한 뒤 실성해 숨졌고, 여동생 역시 미군의 정액받이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남정현은 이런 설정을 통해 정치·군사적 속국에서 미국이 행하는 악행을 홍만수 가족의 불행을 통해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이 문제가 비단 홍만수 일가의 불행만은 아님을 재삼 상기시켰다.

1988년 발표된 윤정모의 소설 <고삐> 역시 미군부대 인근 술집에서 스트립걸로 전전했던 안정인이라는 여성의 삶을 통해 미국이라는 '외세'가 어떤 형태로 여성을 억압하여 '매춘'에 이르게 하는 지를 고찰하고 있는 반미 기조의 작품이다.

윤정모는 <고삐>에서 미국을 분단을 야기시켜 한국의 불행을 강제하는 동시에, 약소국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흉물스런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제기된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문제' 등은 14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바로 오늘 광화문에서 구호로 외쳐지고 있다.

<아메리카 드림>을 발표해 '한국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소설가 정도상.
<아메리카 드림>을 발표해 '한국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소설가 정도상. ⓒ 홍성식
소설가 정도상의 1989년작 <아메리카 드림>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더욱 충격적이다. 한국에서 입양시킨 고아를 미국 아이의 심장이식에 사용한다는 소설 속 설정은 그 현실성 여부를 떠나 독자들에게 크나큰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무비판의 성역의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이던 시기에 <아메리카 드림>은 '우리에게 미국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충격이란 방법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 소설이었다.

적접적인 비판은 아니지만 박완서의 <제이 원(J-1) 비자>는 우회적으로 미국의 방자함을 꼬집고 있는 소설이다. 미국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비자를 얻으려고 동분서주하는 한국 대학교수의 모습을 통해 자국민과 타민족에게 보호와 무시라는 각각 다른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미국의 야누스적 태도를 보여주는 <제이 원(J-1) 비자>.

박완서를 이 작품을 통해 '미국은 과연 우리를 평등한 우방으로 대하고 있는가'를 담담한 어조로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2002년 겨울 한국의 상황을 볼 때 이 질문의 유효성은 아직도 여전한 게 아닐까?

80년대 시인들 "이래도 한국이 식민지가 아닌가?"

소설가들만이 아니었다.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내오며 한국의 시인들 역시 "이런 상황인데도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깨어있는 독자들에게 던졌다. 특히 94년 췌장암으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김남주 시인은 반미와 관련된 여러 절창(絶唱)을 남겼다. '고개 들어 조국의 하늘 아래'도 그 중 하나다.

▲ 1989년 1월. '남민전 사건'으로 9년 3개월의 옥고 끝에 석방된 김남주 시인이 작가회의 신년 하례식 모임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정희성, 이시영 시인, 현기영, 강승원 소설가, 김남주, 고은 시인, 백낙청 평론가, 문익환 시인.
ⓒ 아트앤스터디
우방의 이름으로건
평화를 위한 유엔군의 이름으로건
보호다 뭐다 협력이다 뭐다
뭐다뭐다 흰수작 개수작 같은 이름으로건
이방인의 군대가 들어와 있는 한
들어와 총을 메고 이 도시 저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한
나는 아니다 고개 들어 조국의 하늘 아래
직립보행의 독립이 아니다
흰둥이건 깜둥이건
또 무슨 색깔의 알록달록한 인종이건
이 강토 산과 들을
남의 나라 병사들이 밟아대고 있는 한
한 포기 풀이라도 밟고 있는 한
나는 아니다 고개 들어 조국의 하늘 아래
우러러 떳떳한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빨갛게 부끄러운 원숭이 똥구멍이다
벗이여 너와 나 치욕으로 살지 말자
식민지 종속국 배부른 노예로 살기를 거부하고
차라리 주린 창자 자유로 채우며
직립보행 독립의 나라로 일어서자
칼에 얼굴이 긁히고
도끼에 뿌리가 찍히고 외제 총알에
몸뚱이가 온통 벌집투성이인 그러고도
삭풍에 의젓한 우리나라 상수리나무여


87년 교통사고로 요절한 '문단의 마당발' 채광석 시인도 미국이란 나라가 사실은 허위와 위선, 가식과 오만의 토대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사상누각(砂上樓閣)임을 시를 통해 여러 차례 설파했다. 아래 전재(全載)하는 '위대한 나라'는 헐리우드 액션의 '오노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이미 80년대부터 수 차례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987년 정기총회에서 구속문인 석방 촉구성명서를 낭독하는 채광석 시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987년 정기총회에서 구속문인 석방 촉구성명서를 낭독하는 채광석 시인. ⓒ 아트앤스터디
세계에서 제일 힘세고 부자인 나라
챙길 재미 곱빼기로 다 챙기고 나 몰라라
근로자들 팽개치고 떠나 버린 콘트롤 데이터의 나라
과실송금 이자돈 가져간 건 따지지 않고
무역수지 적자 들어 무역장벽 쌓으면서
우리더런 쫙 벌려라 더 벌려라 겁주는 나라
인더안들 박살내고 세워 놓은 자유 평등 평화의 나라
엘 에이 올림픽 남자배구 예선에서
브라질엔 져주고 한국은 꾹꾹 눌러
우리 팀 결승 진출 가로막고 금메달을 목에 건
치사하고 비겁한 스포츠 정신의 나라
프로로 전향할 때 주가를 올리려고
심판들 구워삶아 김동길을 물먹이고
제 나라 유망주에 금메달을 안겨 준
복싱 장사꾼의 나라 장사꾼 복서들의 나라
세상에서 제일 약한 그레나다 침공하고
자존심을 회복했네 위신을 되찾았네 환호하던 나라
이집트 비행기를 불법으로 요격하고
국제법은 국제법 우리의 정의는 힘이요
우리의 평화는 총구에서 나오는 법이라
뽐내며 웃음짓는 람보와 레이건의 나라 젱킨스의 나라
월남에서 밀린 나라 이란에서 쫓겨난 나라
세계에서 제일 힘세고 부자인 나라


<좋은 세상>의 이은봉 시인.
<좋은 세상>의 이은봉 시인. ⓒ 창작과비평사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자'는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읽는 이은봉 시인의 '아메리카여'의 마지막 구절은 절절하다 못해 통쾌하다.

이 시는 미선이와 효순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미군에게 무죄를 평결한 미국 군사법정과 간접적으로 무성의한 유감표명만을 한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한국의 국민들이 하고싶은 말을 대신 해주고 있다. 거친 시도 때에 따라선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다.

오고야 말 날을 더욱
빨리 오게 하는, 그리하여
세상 앞장서 끝나게 하는
아메리카여 천의 얼굴이여
오오,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흐르는
촛대가리여 욕정의 찌꺼기여
방글라데시에서도 니카라과에서도
눈물, 구두굽으로 짓이기는 슬픔을
혼자서 혼자서 다 껴안고도 낙진을
자유를 평화를 뜨거운 자본주의를
벅찬 한숨을 가래를 만만한 인디언을
뺨에 입술에 젖가슴에
카키빛 딸라뿐으로 콜라뿐으로
지구 위 모든 사랑을 숫처녀를 니그로를
어루만지는 주무르는 집어삼키는
더러운 춘화 같은 시궁창 같은
꿈을 통일을 한반도를
핵폭탄을 솟아오르는 내일을
마구 걷어차는 엎어치는
아메리카여 가엾은 미합중국이여
오오, 미칠 것 같은
돌덩이여 니기미 쑥떡이여


다시, 반미의 붓끝을 주목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국에서의 반미문학은 역사가 깊다. 그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작가들이 '달라진 세기의 반미'에 대해 발언하기 시작한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녹록치 않다.

작가회의 소속 문인들이 어떤 시와 소설로 80년대와는 또 다른 '사회참여'를 보여줄지. 반미문학에 관한한 만만치 않은 저력을 가진 그들의 붓끝에 거는 독자들 아니, 국민들의 기대가 사뭇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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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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