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경고는 이전부터 간헐적으로 계속 나왔지만, 북한이 90년대 중후반에 못지 않은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할 것으로까지는 예상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핵문제와 식량 분배의 투명성을 이유로 식량지원원량을 대폭 줄이고, 2001년부터 식량지원을 중단한 일본이 납치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파격적인 양보에도 불구하고 식량지원을 재개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의 인도주의적 대참사는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특히 이러한 경고에 대해 한국의 대다수 언론과 시민사회마저도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가 12월 5일자에 북한의 식량난을 크게 보도한 것과도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
WFP, "구호 대상 주민 640만명에서 300만명으로 줄어"
국제사회가 지원한 대북 식량지원의 분배를 담당하고 있는 세계식량계획(WFP)는 국제사회의 대북식량지원이 줄어듦에 따라 이미 지난 9월부터 식량지원 대상자를 640만명에서 300만명으로 줄인 상태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 임산부, 노인 등 취약 계층이 대거 포함돼 있어,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은 이번 겨울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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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북한의 내년도 식량 부족분이 최소 110만톤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WFP를 통한 내년도 식량 확보량이 약 한달치에 불과해 식량지원 대상자를 또 다시 30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줄여야 할 것이라고 WFP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은 약 400-500만명이 기아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약 200만명이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90년대 중후반의 식량위기에 버금가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식량위기의 최대 피해자는 북한의 어린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WFP가 지원해온 약 640만명의 북한 주민 가운데, 어린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넘는 400만명에 달한다고 WFP는 밝히고 있다. 식량지원이 중단될 경우, 단순 계산으로도 북한 어린이 약 250만명 이상이 아사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는 WFP의 지원 대상자로만 한정한 것으로 지원 대상이 아니었던 어린이들을 포함시키면 그 수치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단법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 지난 11월 16일 발표한 '북녘 어린이 건강실태 조사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내용은 확인되고 있다. 북한이 국제기구에 제출한 자료를 비롯해, 세계보건기구, 유엔아동기금, 국제적십자연맹 등 여러 기관들의 자료를 종합·분석한 결과, 북한의 5세 미만 어린이 220만명 가운데, 100만명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 사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설사병과 급성호흡기 감염증이 급증하면서 어린이 사망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산모의 영양불량과 질병으로 산모사망률과 영아사망율도 급등해, 90년에 10만명당 사망자 수가 산모 70명, 영아 1400명에서, 99년에는 각각 110명과 2250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상당수의 영아들이 세상의 빛을 보기도전에 세상을 뜨고 있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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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화'되는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
더욱 우려되는 것은 세계 최대의 대북지원국가들이었던 한국, 미국, 일본 등이 정치적 이유로 식량 등 인도주의 물품 지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임에 따라, 내년도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세계 최대의 대북지원국가라는 점을 강조해온 미국 정부는 최근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 전제조건으로 식량배급 지역에 대한 국제감시단의 자유로운 접근과 감시를 허용해야한다는 전제조건을 내걸고 나섰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대북식량지원의 전제조건을 달고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로써,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식량지원을 지렛대로 삼아 핵포기 등 북한에게 압박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은 2001년에 약 30만톤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했으나, 2002년도에는 15만톤으로 대폭 줄인 바 있고, 이에 이어 내년도 지원과 관련해서도 분배의 투명성을 '전제조건'으로 달고 나옴으로써 지원량이 또 다시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파문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북한에 대해 지원을 줄이고 봉쇄를 높이면서 핵포기를 압박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식량지원' 문제에서도 관철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WFP는 미국에게 내년도 대북식량지원량으로 약 51만톤을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 내의 외로운 온건파로 알려진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식량 지원과 핵문제 등 정치적 현안을 연계시키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핵프로그램에는 돈을 쓰면서, 어린이들을 먹여 살리지 않고 있다"는 발언은 이를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5일자 <워싱턴포스트>는 전하고 있다.
일본 역시 납치자와 핵문제 등을 이유로 중단한 대북식량지원을 재개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2000년까지 약 50만톤의 식량을 지원해왔으나, 그 후 납치자 문제 등을 이유로 식량 지원을 중단한 상태이다. 일본의 대북식량지원 분위기가 얼마나 차가워지고 있는지는 얼마전 대북식량 지원을 이유로 사임한 외무성의 외곽단체인 외교협회의 와타누키 다미스케 회장의 사례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의 외교협회는 얼마전 오래된 쌀과 비스켓 등 약 45톤의 식량을 북한에게 지원했다가, 일본 내 대표적인 대북 매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지사가 이를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나오자 지난 4일 외교협회 회장이 사퇴했다. 특히 이번 파문으로 외교협회 관계자들은 협박 전화와 항의 집회에 시달려야 했다. 또한 나고야에서 열리 한 모임에서는 참석자들 400명 가운데 단지 3명만이 대북식량지원에 찬성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일본의 대북식량지원 여론이 얼마나 차갑게 얼어붙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이유로 식량지원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기는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김대중 정부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로부터 '퍼주기' 논란에 시달린 나머지, 적극적인 대북식량지원에 나서지 못해왔다. 더구나 대선이 임박해오고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 차원의 대북식량지원 움직임도 둔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대선과 핵문제 등 정치적 문제와 여론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적극적인 식량지원을 추진할 분위기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나서야 할 때
<뉴욕타임즈>는 5일자 신문에서, 대북식량지원이 줄어든 요인 가운데 하나는 국제사회가 대북지원에 피곤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아무리 많이 지원해도 북한의 식량난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반면에, 식량 분배의 불투명성과 핵개발 등을 이유로 "대북지원의 피로감(donor fatigue)은 분노(donor anger)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사회의 대북식량지원이 대폭적으로 줄어늘고, 이에 따라 북한이 또 다시 인도주의적 대참사에 직면하게 된 이유는 대단히 복잡하다. 이는 북한의 식량난을 완화시키기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주장대로 북한은 유엔기구의 구호활동에 일정 정도 제약을 두고 있고, 핵개발 등으로 국제사회의 여론이 차가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후 국제사회가 대북지원을 줄이고 아프가니스탄 지원을 늘리고 있는 것도 오늘날 북한의 대기근 사태의 복잡한 성격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2003년 한반도 위기설과 북한의 대기근 사태와의 만남이다. 미국 정부는 물론이고 일본 역시 '식량지원'을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한 또 다른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 "주민들이 굶어죽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는 식의 대북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 정부가 굴복하면 이는 외교적인 승리로, 북한 정부가 계속 버티면 북한 정부를 비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정치적 노림수가 밑바탕에 갈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볼 때, 북한 정부가 이에 굴복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북한은 미국, 일본 등의 식량지원 중단이나 대폭 삭감을 "우리에 대한 압살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련 국가들의 첨예한 갈등과 대결 국면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북한 어린이를 비롯한 주민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북한의 인도주의적 위기가 또 다시 '정치화'되면서, 한반도의 북녘은 기아와 질병으로 또 다시 절망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각국 정부들이 '정치 논리'를 앞세워 '식량지원' 문제에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시민사회 역시 이 문제에 대해 너무나도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식량계획 등 유엔기구들이 거듭 북한의 인도주의적 참사를 경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물론 언론을 비롯한 시민사회조차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우리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대북지원 활동을 펼친다고 해도, 북한의 대기근을 치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북녘 땅의 비극에 둔감해지고 있는 우리사회를 변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단돈 1만원이면, 북한 어린이 한 명이 2개월동안 먹고살 수 있는 식량을 구입해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지원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감을 갖기에는 우리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운 현실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북녘 동포를 돕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래의 지원 단체를 통해 작은 정성을 보내는 일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대북지원활동 단체 안내
남북어린이어깨동무 : http://www.okedongmu.or.kr
한국 JTS : http://www.jungto.org/jts/kor.html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 http://www.ksm.or.kr
국제옥수수재단 : http://www.ic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