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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눈먼 아버지를 수년간 봉양하다가 결국에는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빠진 심청이 이야기를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효녀’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심청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누구도 심청이가 효녀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심청전 완본을 다시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심청이가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와 그런 ‘효-행각(?)’을 하였을까?
'효'라는 것이 진심으로 해야 '효'이지 어떤 압력에 의해 행한다면 그건 절대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물론 효를 받는 사람이야 주는 사람의 속내를 모르면 상관이 없겠지만, 행하는 본인은 얼마나 괴로운 일일 것인가?
그러면 심청이가 받았을 압력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암묵적인 압력, 효
심청전의 배경은 조선시대이다. 조선시대 하면 또 가장 중요시했던 것이 바로 ‘효’이다. 부모가 병이 들면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저수지 얼음을 깨서 잉어를 잡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며칠 밤낮을 헤매 산삼을 찾아야 하고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깨물어 나오는 피를 먹여야겠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효' 축에도 못 끼었다.
당시 조정에서는 효자, 효부상을 만들어 사람들이 효가 지상 최대 가치로 인식하게 했고 사람들은 자신의 자식에게 효를 가르치는데 열심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회는 부모에게 잘하지 않는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이미 효는 거역할 수 없는 암묵적인 압력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우리의 심청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을 동냥젖을 얻어 먹인 심 봉사를 예닐곱 살부터 동냥을 해다가 봉양한다. 심 봉사는 심청이가 얻어다 주는 밥으로는 부족했던지 우연히 자신을 구해준 후 절에 시주하면 눈을 뜰 것이라는 노승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해 시주자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만다. 그리고 또 그 얘기를 심청이에게 하고 만다.
심청이는 이 상황에서 어쩔 것인가 얘기를 안 들었으면 모를까 아비의 눈을 뜰 수 있다는데 그냥 ‘우리 형편에는 어림없는 일이니 그냥 봉사로 사세요’이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식은 맡은바 본분인 효를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되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효의 힘이라고 먼저 간 선배들이 몸소 행동으로 보여줬지 않은가.
결국 심청이는 공양미 삼백석 때문에 팔려가 인당수에 몸을 던진다. 물론 심 봉사는 사실을 알고 슬퍼하지만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치고는 밥 잘먹고 후처, 뺑덕어미도 얻는다.
한편, 심청이는 다행이 용왕님의 도움으로 환생하고 왕을 만나 왕후가 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보면 효녀인 심청이가 왕후가 되고 곧바로 아비, 심 봉사를 찾을 것 같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그렇게 한다. 심청이의 효심이 마음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었다면 3년이라는 기간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심청이가 단기 기억상실증에 빠진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더구나 심청이는 심 봉사가 1년 전에 마을을 떠났다는 얘기(심봉사와 뺑덕어미는 재산이 바닥이 나자 다시 빌어먹기에는 동네사람들 보기에 부끄러워 다른 곳으로 떠난다)를 듣고 장님잔치를 연다.
심청이는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바친 것이다. 그런데 장님잔치를 열었다는 것은 아비가 눈을 떴을 거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처음부터 절에 시주해서 아비가 눈을 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효라는 당시 사회의 암묵적인 압력 때문에 자식의 도리를 다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당수에 몸을 던졌던 것이다.
남성의 소유물, 여성
과거, 조선시대에는 남존여비 사상이 굉장히 강했다. 특히 여성을 단순히 남성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어려서는 아비를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고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여성은 남성에게 관리 대상이었다. 그리고 집안 살림 품목 중 하나로까지 여겨지기도 했다.
아비는 노름을 하다가 빚을 지면 값나가는 집안 물건들을 갖다가 팔이 빚을 갚았는데 그걸로도 부족하면 딸을 팔았다. 같은 자식이지만 절대로 아들을 팔지는 않는다. 또 그뿐이 아니다. 부인도 팔았다. 오라비도 같은 경우에 누이를 팔기도 했다. 또 여성을 사고파는 모두가 남성이었다. 여성은 어디까지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재산이었던 것이다.
또 각종 재물로 바치는 것도 여성이었다. ‘은혜갚은 두꺼비’에서 나오는 지네에게 재물로 바치는 것도 여성이고 ‘심청전’에서 상인들이 인당수에 바치는 것도 여성이다. 그것도 처녀로 말이다.
이렇게 여성이 수단화되는 사회에서 심청이도 절대 자유롭지 못했다. 심청이도 심 봉사에게 한가지 수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심 봉사의 자식이 여성인 심청이가 아니라 남성인 심청식이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몸을 팔아서까지 아비의 눈을 뜨게 하려고 자신을 희생했을까? 또 설사 그렇게 한다고 나섰더라도 심 봉사는 심청이에게 그런 것처럼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들이기 때문에 결사 반대 했을 것이다.
남성의 전유물, 性
‘여성은 자고로 조신해야 한다’는 의식이 아직까지도 적잖이 남아있다. 이 말은 광범위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지만 성적으로 조신해야 한다는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여성들은 성을 억압받고 살아왔다. 절대로 성에대해서 많이 알아서도 안 되고 떠들어서도 안 된다고 강요받았다. 또 남편 외 다른 사람과는 성적인 관계를 가져서도 안 됐다. 돌팔매질에 맞아 죽어도 할말이 없는 큰 죄였다. 물론 남자는 반대다. 많은 여성을 거느리는 것이 능력처럼 대우받았고 성을 즐겼다. 성 역시도 정치와 권력처럼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심청전을 마당놀이로 했을 때 가장 희극적인 인물로 표현하는 뺑덕어미는 행실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다. 심청전의 서술자는 이런 뺑덕어미를 음탕하여 서방질을 잘한다고 묘사하고 있다. 부정한 여성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뺑덕어미만 음탕한 것은 아니다. 뺑덕어미는 심 봉사와 여기저기 떠돌다가 생활이 어려워지자 자신을 꼬시는 황 봉사를 따라가 버린다.
뒤에 홀로 남은 심 봉사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방아 찧는 아낙네들을 발견하고 점심이나 얻어먹을까 해서 방아를 찧어주는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 아낙들이 비교적 신분이 낮은 여성들인 걸로 판단이 들자 심 봉사는 성적인 야한 농담을 지껄인다. 이렇듯 뺑덕어미나 심 봉사는 음탕하기는 서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런 심 봉사를 비판하는 서술자의 목소리는 찾을 수 가 없다.
후에 장님잔치에서 심청이를 만나 눈을 뜬 심 봉사는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뺑덕어미와 황 봉사를 잡아들인다. 둘이 같이 도망갔으니 형벌은 같을 것 같지만 뺑덕어미에게 내린 형벌이 훨씬 더 크다. 뺑덕어미는 능지처참을 하지만 황 봉사에게는 귀양만 보낸다. 같은 죄를 졌는데도 유독 여성인 뺑덕어미가 더 큰 형벌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꼬신 사람은 더구나 황 봉사인데 말이다. 그 이유는 바로 남성의 전유물인 성을 여성인 뺑덕어미가 향유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레포트 때문에 쓴 것입니다.
반응이 괜찮으면 <옥단춘전 비평>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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