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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그런데 인권침해는 자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일어난다.
용두동이 그에 해당하는 예이다. 용두동 철거민이 강제철거로 집을 잃고 노숙을 한지 145일.

2차에 걸친 폭력적인 강제철거로 숟가락 하나, 이불 한 채 못 건지고 살던 집에서 고스란히 내쫒긴 철거민들은 관할 관공서인 중구청 앞에서 칼바람 부는 겨울을 맞고 있다.

12월 10일 저녁 7시, 체감온도 영하 20도, 추위에 곱은 손으로 <용두동 철거민 인권선언문>을 들고 있는 용두동 사람들을 만났다. 이옥희 임시주민대표의 목소리가 중구청 주변을 애잔하게 울렸다.

“용두동 철거민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직업이 안정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늙었다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아서는 안됩니다.“

지난 2002년 7월 18일 용두동 강제철거 사건은 방송, 라디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10월 22일 서리내리는 상강이 지났는데도 사태는 종결되지 않고 철거민들은 추위를 걱정하며 노숙을 하는 상황이었다.

기자는 철거당일부터 지금까지 현장에 밀착하여 꾸준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왔다. 그동안 기자에게 많이 들어오는 질문은 용두동 사건 해결되었냐는 물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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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 이라고밖에 말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 정확히는 ‘답보’ 혹은 ‘악화’로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용두동 사태는 철거민, 공무원, 시민사회단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 모든 조직이 입을 모아 ‘사정이 딱하니 빨리 해결되어야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왜 해결이 안 되는가?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인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검찰의 중립이 의심스럽다

10월 22일 서리내리는 상강 이후 진행된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부를 만한 사건들이 진행되었다.

강제철거가 임박한 시점에 구속된 조야연 주민대표와 주민 정진용씨는 아직 차디찬 감옥에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소음 등으로 인한 업무방해죄(2001년 시청앞 시위)로 기소되어 판사 앞에 섰던 조야연 주민대표는 법정소란죄로 구류를 살게 되었다. 그러나 통상 15일을 넘기지 않는 구류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그는 바깥 구경을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특수폭력치상(공무원들을 때렸다는 것), 공문서은닉(공문을 던졌다는 것), 공무집행방해(철거 포크레인을 막았다는 것) 명목의 공소장이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중구청과 주택공사 직원의 증언이 절대적으로 채택된 결과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지난 12월 3일 검사로부터 5년 구형을 선고받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공할 폭력을 휘두르고 불법감금행위를 했던 용역철거반원 300여명에 대해서 대전지방검찰청은 신원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며 단 7명에 대해서만 ‘약식명령’을 내렸다. 또 불법계약과 폭력을 사주한 주택공사와 직무유기를 한 중부경찰서 관계자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다.

이에 대해 철거민공동대책위원회 김동중 집행위원장은 “용두동 주민에게 온갖 공작과 위증을 통하여 폭력혐의를 씌워 주민대표를 구속하고, 이를 연장하기 위해 추가고소를 계속하여왔고, 주택공사의 폭력과 불법행위, 중부경찰서의 직무유기에 대해서는 눈감아 주었다며 검찰의 중립성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건설원가와 일반분양가가 같은 것?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주택공사의 신문 하단광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주택공사의 신문 하단광고. ⓒ 박현주
그동안 진행된 주택공사와의 실무협상도 진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9월 금요민원실을 주재한 대전시장 앞에서는 법에 보장된 ‘건설원가 특별분양’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실무 접촉에서 ‘건설원가와 일반분양가가 같다’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대신 “보상금 받은 것으로 계약금을 내고(20%), 나머지 80%는 융자금으로 내는 방식이 재정착”이라며 철거민들이 빚을 얻어 아파트에 입주하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또 가수용단지 입주자를 제한하여 주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게다가 검찰이 내린 ‘면죄부’에 기댄 것인지, 강제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가구훼손과 이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에 대해서 사죄는커녕 오히려 용두동 주민들의 불법행동을 운운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피해배상요구에 대하여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유력일간지 하단광고를 통해 자신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음을 강변하면서 오히려 사태의 책임을 ‘일부 주민’과 ‘철거민공대위’에 돌렸다.

한편 중구청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시행청인 중구청은 임시주거시설로 콘테이너 박스 단 3개를 설치한 것으로 모든 할 일을 다한 듯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집회 중 확성기 사용을 금지하였고, 주민들의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욕설조차도 내뱉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이 바뀌면 해결될까?

저마다 초 한자루 손에 들고 인권과 살권리를 보장받아야함을 외치는 철거민들의 목소리는 한파와 대선열기에 묻히고 있다. 초는 다 타서 사라지겠지만, 집을 찾겠다는 희망 한 개씩 품은 채 차디찬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철거민의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촛불을 들고 인권선언문 낭독을 듣는 철거민들
촛불을 들고 인권선언문 낭독을 듣는 철거민들 ⓒ 박현주
대통령이 바뀌면, 용두동 철거민 문제가 해결될까? 이 땅에 서민을 울리는 폭력적인 강제철거가 사라질까? 주택공사가 국민을 위해 주택을 보급하고, 구청이 구민을 위해 봉사하고, 검찰이 공정한 저울을 지니게 될까?

사람들의 입김이 하얗게 허공을 채우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꽁꽁 얼어붙었을 즈음, 이옥희 임시 주민대표는 마지막 문장을 낭독했다.
“용두동 철거민들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용두동철거민이 주거환경이 개선된 용두동에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촛불은 숙연하게 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용두동 철거민 인권선언문>

    1994년부터 주민의 동의에 의하여 추진되었다는 용두제1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은 소위 ‘도시저소득주민의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임시조치법’의 취지와 하위조항 및 관련법과 시행령 사이의 모순, 그리고 시행기관의 관료주의와 개발이익의 추구에 의하여 가난한 용두동 주민들이 정든 집과 고향에서 밀려나 재정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리하여 주민들이 뜻을 모아 저항하였으나 주택공사측의 와해공작과 위증으로 인하여 주민대표가 업무방해와 폭력행위 등으로 구속된 채 일제와 군사정권의 잔재로서 용역깡패를 동원한 폭력적 강제철거에 의하여 현재 중구청 앞에서 145일째 노숙을 하고 있다. 결국 용두동 주민들은 시행기관과 사법기관의 공조에 의하여 주민의 알권리와 정주권 나아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물론 생존권과 인권까지 침해당한 채 불법집단으로 내몰리거나 멸시 당하고 있다. 
   이에 2002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용두동주민으로 대표되는 대전지역의 저소득주민과 철거민들이 귀중한 인권을 가지고 있음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1. 모든 사람은 어떠한 제한도 없이 세계인권선언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를 누린다. 
모든 사람의 기본적 권리는 어느 국가에서 태어났건, 어떠한 사회적 계급에 속하든, 또 부유하든 가난하든 관계없이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용두동 철거민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힘이 없다는 이유로, 직업이 안정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늙었다는 이유로,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아서는 안됩니다. 

2.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우며, 동등하게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모든 개인은 자신이 누구든지, 어디에 살든지 관계없이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용두동 철거민은 자기가 살던 곳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자기가 살던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권리는 양도될 수 없는 것으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입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은 원주민의 재정착을 보장하는 가운데 추진되어야 합니다. 

3.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할 지식과 정보를 가질 권리를 갖는다. 그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그 사람의 권리를 박탈할 가능성이 있는 동의를 구할 수 없다. 
   용두동 철거민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사업에 있어서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과 손해, 그리고 자신에게 돌아올 결과에 대하여 알 권리가 있습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시행하는 기관은 주민의 동의를 구할 때 사업을 발생할 이해관계에 대하여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주민의 알권리를 박탈한 채 시행된 모든 사업은 원천무효입니다.

4. 모든 사람은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어떠한 물건, 토지 또는 다른 재산을 단독으로 또는 공동으로 소유하거나 자유롭게 처분할 권리가 있다. 아무도 개인의 소유권을 정당한 이유 없이 빼앗을 권리가 없다. 
   용두동 철거민은 당당히 재산소유권을 가집니다. 비록 공익적인 사업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확실한 동의 없이 빼앗거나 철거할 권리가 없습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시행기관은 용두동 철거민의 집을 되돌려주던지, 동의할 수 있도록 모든 요구를 수용해야 합니다. 

5.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 
   용두동 철거민도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가난하고 힘이 없고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정당한 이유 없이 자신의 자유와 안전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비록 실정법에 규정에 의하였다 할지라도 강제철거와 같이 한 인간 혹은 집단의 자유와 안전과 생명을 해치는 일이라면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6. 모든 사람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기본권이 침해당할 경우 권한 있는 국가기관과  법정에서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며 어떠한 차별 없이 평등하게 법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 
  용두동 철거민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보장된 재산권과 정주권, 그리고 인권을 침해당하였으므로 권한 있는 국가기관과 법정에서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7. 모든 사람은 경찰 및 검찰 등 사법기관의 공개적이고 공정한 수사와 법정에서 공정한 공개심리를 받을 권리가 있다. 법원은 국민을 자신의 선입견과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단죄할 권리가 없다. 검찰과 법원은 정부 혹은 정치적 입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용두동 철거민은 경찰 및 검찰 등 사법기관의 공개적이고 공정한 수사와 법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법원은 용두동 철거민을 선입견과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단죄할 권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공공기관 혹은 정치적 입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합니다. 

8.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표현할 권리를 갖는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밝힐 권리가 있다. 비록 소수의 입장이라도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관점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용두동 철거민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표현할 권리를 갖습니다. 비록 소수이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표현할 자유를 갖습니다.

9. 모든 사람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갖는다. 
모든 사람은 공개적으로든 비공개적으로든 모임을 가질 권리가 있으며, 모임을 가지고 평화적인 시위를 조직할 권리도 있다. 이는 사회단체, 노조, 정치적 집단 등의 단체를 만들거나 참가할 권리가 있다. 
   용두동 철거민은 뜻 있는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할 권리와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갖습니다.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하여 연대하고 집회와 시위를 할 권리를 침해받아서는 안됩니다.

10. 모든 사람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킬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존엄성을 보장받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이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용두동 철거민들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용두동철거민이 주거환경이 개선된 용두동에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002. 12. 10.


용두1지구 철거민 주민대책위원회/대전지역 철거민 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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