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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큰 아이가 폐렴에 걸린 것을 확인한 것은 열이 난 지 이틀째였다. 평소 감기 때와는 달리 열이 쉽게 조절되지 않았고, 폐의 한 쪽에서는 폐렴을 의심할 만한 숨소리가 들렸으며, 엑스레이로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에 건강했고, 엑스레이 소견과는 달리 멀쩡한 듯이 잘 놀고 잘 먹고 해서, 먹는 항생제를 일정기간 투여하면 충분히 치료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3일이 지나갔다. 아이는 고열이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열이 있을 때 힘들어하긴 해도 역시 잘 지냈다. 그런데 다시 찍어본 엑스레이 결과는 폐렴이 더 진행되었고 범위가 넓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정맥주사제로 항생제를 교체했다. 이 항생제는 물론 페니실린 내성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항생제였고 4-5년 전까지만 해도 대학병원급에서도 아주 효과적인 1차 항생제로 쓰이던 것이었다. 평소에는 의원급에서 쓸 일이 별로 없기도 해서이지만, 독감유행후 폐렴환자가 급증하면서 품절현상이라고 해서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제 폐렴이 좀 잡히겠지 내심 안심하면서 하루, 이틀... 그런데 갈수록 아이는 얼굴에 병색이 완연해지고 열은 계속되었다. 해열제의 효과가 떨어질 때 쯤이면 어김없이 열이 치솟아 아이를 지쳐 떨어지게 했다. 불행히도 가래검사에서는 항생제를 투여한 후 시행한 탓에 원인균 배양이 되지 않았다.
다른 계통의 먹는 항생제를 함께 투여하면서 흔한 폐렴유발균들은 거의 빠짐없이 치료범위에 들어가는 상황이었는데 별 효과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사용하는 항생제 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는 강력한 항생제 내성균에 의한 감염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항생제를 다시 바꿔야 했다. 예상되는 내성균에 대해서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 중 하나를 투여하면서 다시 하루, 이틀... 다행히 열나는 간격이 점점 벌어지더니 병세는 호전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숨을 돌리고 생각하니, 우리나라의 항생제 내성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구나 싶다. ‘2002년도 국내 항생물질 내성률은 흔한 감염균들에서 70%를 넘어선다’고 하고, 이번에 아이의 폐렴의 원인균으로 추정되는 ‘폐렴구균의 경우에는 77%가 페니실린 내성균’이라고 해도 그에 대한 책임에서 나는 자유롭다고 생각했고 현실감 있게 느끼질 못했다.
외래치료과정에서는 항생제를 쓸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실감할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 그런 결과들은 나와는 무관한 병원내 감염균이나, 만성 질환자, 중증환자 등에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원내 감염이나 만성 질환자가 아닌 일반적인 지역사회 감염균에서도 강력한 내성균이 문제가 되고 있음을 경험한 것은 최근 항생제 내성에 대한 우려들이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며,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새삼 확인해 주는 일이었던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 항생제 내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런 결과는 세계 최고의 항생제 복용률, 처방률과 무관하지 않은데,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는 비율이 우리나라는 1000명 중 33.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 1000명 중 21.3명보다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처방률은 세계보건기구 권고치 22.7%의 두배가 넘는 58.9%나 된다.
항생제 내성문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들의 의료 관행, 약에 대한 인식과 태도, 그리고 여러 가지 의료환경이 한 몫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문제는 어쨌든 의사와 병원에 책임과 그 해결의 열쇠가 쥐어져 있는 문제다.
항생제의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전체 의료계의 자각과 공동의 노력들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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