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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토요일) 오후에는 초청 받은 자리가 세 곳이나 있었다. 이웃 동네인 서산의 문화회관에서 열리는 <흙빛문학회> 행사, 홍성의 문예회관에서 열리는 <홍주문학회> 행사, 그리고 대전에서 열리는 <오늘의 문학회> 행사 등이었다.
처음에는 대전 행사에 참석할 마음을 가졌었다. 오늘의 문학회 행사에 너무 오래 참석하지 않아 미안한 마음도 컸고, 주최측의 참석 요청도 간곡해서였다. 그리고 대전에 가는 길에 홍성에 들러 홍주문학회 행사에 잠시 얼굴만 비치고 대전으로 달릴 계획이었다.
가장 늦게 연락이 온 서산의 흙빛문학회 행사는 질끈 눈을 감기로 했다. 과거 흙빛문학회를 만들고 키운 사람 처지에서는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전 오늘의 문학 행사에는 꼭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벌써 7년 전인가, 1995년 겨울 대천해수욕장에서 있었던 행사에 참석하고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오늘의 문학회 행사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서로 보고 싶은 사람도 많고, 그 보고 싶은 얼굴들과 만나면 반가움이 무척 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토요일 아침에 마음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에 홍성을 들러 대전으로 가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말았다.
그것은 조카딸이 다니는 유치원의 '재롱잔치' 행사가 오후 3시부터 태안문예회관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용접 기술자로 일용직 근로자인 동생이 주 5일 근무제와 상관없이 그날도 출근을 해서 하루종일 작업을 하리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지난 가을 연포의 잔디 운동장에서 열린 유치원 운동회에도 동생은 참석을 못하고 일터로 출근을 했었다. 그랬는데, 유치원 재롱잔치 행사에도 참석을 못하고 또 일터로 출근을 해야 한다니….
용접 분야에서는 자격증도 여러 개나 되고 최고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일용직 근로자로 생활하는 동생의 처지가 가엾게 느껴지고, 그런 행사에 다른 많은 집들처럼 부부가 함께 참석하지 못하고 또 홀로 참석해야 하는 제수씨도 가엾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의 재롱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 드리지 못하게 된 조카딸 규빈이가 가장 섭섭할 터였다. 규빈이의 그런 마음을 헤아리자니 아빠 대신 큰아빠라도 그 자리에 참석을 해줘야 옳을 것 같았다.
지난가을의 연포 운동회 때도 어머니와 함께 내가 아빠 대신 참석을 해서 규빈이를 기쁘게 해주었었다. 더욱이 내 차는 12인승 승합차라서 다른 가족에게도 덕이 되니, 그것은 제수씨의 사기도 부쩍 올려주는 셈이었다.
그 운동회 때는 가족도 함께 하는 경기가 있었는데, 규빈이의 손짓에 따라 내가 나아가니 진행을 이끄시는 선생님이 돌연 "규빈이네는 할아버지도 나오셨네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의 당혹감과 섭섭함과 무안함이란….
그런데 다음 순간 다섯 살 규빈이가 "할아버지 아니에요. 우리 큰 아빠예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 어린 녀석이 어찌나 고맙고 기특하고 예쁘던지….
나는 그때 일을 떠올리고 슬며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태안문예회관으로 차를 몰았다. 어머니는 물론이고 이번에는 아내도 조카딸을 위해 동참을 했다. 엄마와 함께 할머니, 큰아빠, 큰엄마까지 행사장으로 가는 것이 그저 기쁜지 규빈이는 한결 의기양양한 기색이었다.
문예회관 마당에다 일단 어머니와 제수씨와 규빈이를 내려주고 나와 아내는 잠시 시내로 가서 카메라의 건전지와 필름을 산 다음 다시 문예회관으로 갔다. 그리고 대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서 어머니 옆에 가 앉으니 묘한 설렘 같은 것이 가슴에 차 올랐다.
홍주문학회와 오늘의 문학회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하고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색다른 옷을 입고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극을 하는 어린 조카딸의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즐겁고 다행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이윽고 능숙한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유치원 어린이들의 재롱잔치가 시작되었다. 재롱잔치는 참으로 다채로웠다. 만 4살 반, 5살 반, 6살 반으로 나뉘어진 100여 명 어린이들이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무려 15가지나 되었다.
4살 반 어린이들 중에는 멋진 옷을 입고 무대로 나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냥 가만히 서 있거나 엄마를 찾으며 큰소리로 우는 녀석들이 여럿이었다. 그 우는 친구와 상관없이 제 몫의 노릇을 열심히 하는 녀석들은 또 얼마나 깜찍한지….
오십대 중반 시절을 사는 나는 결혼을 늦게 해서 큰아이가 이제 중3이고, 작은 녀석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젊게 사는 편이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나는 물론 더 젊었었다. 그 젊었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인데….
내 아이들이 어느새 유치원을 졸업하는가 했더니, 그 세월이 금세 10년 전쯤으로 달아나서 생각하면 아쉬움과 그리움이 커지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은 젊다고 느낀다. 어린 조카들이 있기에 나의 젊음은 좀더 연장이 되는 것도 같다. 아빠를 대신하여 어린 조카딸 유치원의 재롱잔치 행사에도 참석하는 등 큰아빠의 구실을 충실히 하는 한 내 젊음은 좀더 연장되고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일터로 출근한 아빠를 대신하여 어린 조카딸에게 큰아빠 노릇을 잘하려고 유치원 재롱잔치 행사에 참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어쩌면 몇 시간이나마 동심의 세계에 푹 파묻혀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곤 한다. 내 아이들이 귀여운만큼 남의 아이들도 귀여워해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잠시나마 아이들 세상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접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 날도 아이들의 천사 같은 모습을 보다 보니,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저런 아이 시절이 있었겠지하는 공연한 생각이 다시 들었다. 왜 사람은 어른이 되면 어린아이의 순박하고 정직한 마음을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 그런 공연한 의문도 다시 들었다.
어린이의 순진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슬픔을 다시 떠올리다 보면, 왜 동심에 대한 그리움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인가도 더불어 생각하게 된다. 또 그러다 보면 "어린이가 되지 않고서는 결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도 다시 상기하게 되고….
아이들과 어울리거나 천사 같은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즐기는 일은 잠시나마 나 자신을 정화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동심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말씀도 상기하는 것은 결국 한 순간이나마 나 자신을 정화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데 이 날은 문득 지난 대선 동안의 풍경들도 내 눈앞에 떠올랐다. 특히 노무현 후보의 유세장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많은 젊은 아빠들이 노무현 후보의 유세장에 가면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어린 딸의 손목을 잡고, 어린 아들을 목말 태우고 유세장을 찾는 젊은 아빠 엄마들의 모습은 내게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젊은 아빠 엄마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노무현 후보의 유세장에 몰려간 것은 참으로 깊은 의미를 지니는 일이었다. 그 어린아이들에게 밝은 미래를 열어주자는 뜻만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들의 세계와 같은 거짓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뜻이 더 컸을 터였다.
어린아이들의 세계와 같은 거짓 없는 세상, 진실과 정직이 대접받는 세상에 대한 희구(希求)는 사실 노무현 후보에게 더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인간 노무현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무현은 진실과 정직의 표상이기 까닭이었다. 노무현 후보의 유세장으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는 '바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바보란 무슨 뜻이고 왜 그에게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를 잘 설명해주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조중동 사이비 언론에 사로잡히지 않고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정보망을 확보하고 사는 덕분이었을 것이다.
오늘 슬하에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들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삼십대들이다. 그들의 대체적인 성향은 이번 선거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들은 절실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 희망의 하나가 어린이의 세계와 같은 거짓 없는 세상, 진실과 정직이 대접받는 세상이다. 그 희구를 그들은 자신의 어린아이들을 노무현 후보의 유세장에 데리고 가는 것으로 표현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그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유세장에 아빠 엄마를 따라온 어린아이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것의 의미를 늘 상기해야 한다.
나는 결국 세 가지 '행복'의 실체를 체감하기 위해 내 조카딸 유치원의 재롱잔치 행사에 참석했던 셈이다.
하나는, 내 조카딸 규빈이에게 큰아빠 구실을 잘해 주면서 어린 조카딸 덕에 내 젊음을 연장, 유지하기 위한 일.
또 하나는, 잠시나마 동심의 세계에 파묻힘으로써 나 자신을 정화하기 위한 일.
다른 또 하나는, 노무현 후보의 유세장에 어린아이를 대동함으로써 거짓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절절하게 표현한 삼십대 젊은 아빠 엄마들 속에 나도 끼어 앉아 동질감 같은 것을 느껴보기 위한 일.
그 세 가지 양질(良質)의 기분을 잘 체감하고 무려 3시간 30분만인 6시 30분에 태안문예회관을 나선 나는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었다. 그것은 내년이면 팔순이 되시는 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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