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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일요일이었는데 저는 전라도 아무 지역 산자락을 누볐습니다. 사나이 셋이서 함께 산을 누볐습니다. 실상사 작은학교 방학식에 참여하고 오는 길에 같은 학부모인 우리 세 사나이는 소년처럼 약간 들떠서 산기슭을 위 아래로 오르내렸습니다. 우리는 손가락을 잘라 피를 술잔에 나눠 마시거나 머리칼을 나눠 가지지는 않았지만 형제의 의를 맺은 사이입니다. 내가 맏형인 셈이라 가는 길에 들른 인월읍내 중국집 짜장면 값도 내가 선뜻 냈습니다.

언제 소개할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우리 세 사람은 모든 게 다릅니다. 그런 걸 궁합이라고 하는가요? 서로 잘 맞습니다. 성격이나 살아 온 과정이나 체격이나 가진 재주나 뭐로 보건 모든 면에서 그렇습니다. 고향도 그렇네요. 내가 경상도고 둘째가 대전이고 막내는 전라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올 초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학부모로 첨 만나서 바로 형 동생하면서 가까워졌습니다.

등산을 간 것이었냐구요?

산에 오르긴 했지만 통상적인 그런 등산은 아닙니다. 일조량이 넉넉한지, 수량이 풍부하고 물길은 좋은지 꼼꼼히 보았습니다. 향이나 기온도 살펴보았습니다. 향이 정동향인지라 아침은 이르고 낮은 짧을 것 같았습니다. 또 위쪽에 오염원이 없는지 전기나 전화는 들어오는지 인터넷은 될 것인지 등등도 관심거리였습니다. 사실 인터넷이나 전기는 큰 조건은 아니었습니다. 전기가 발명되고 나서 인간들은 사실 생명과 성장의 시간인 밤을 잃어버렸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점검사항은 뭐니뭐니 해도 개발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지역인 게 확실한 지였습니다. 이 모든 사항들이 세 사나이의 매서운(?) 눈길을 감당하며 검열을 받아야 했습니다.

어디 땅 보러 갔었냐구요?

하하 맞습니다. 새로 살 땅을 보러 갔었습니다. 제가 도달한 인생살이의 작은 결론이 있습니다. 밥 짓기, 옷 짓기, 집짓기가 삶의 근본이라는 생각이고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마지막 시도가 될 새 땅과 새 하늘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몇 년 된 일입니다. 그런 얘기는 마르고 닳도록 듣고 보고 읽어 왔던 말이라구요? 그렇긴 하죠. 요즘 생각 좀 한다는 사람치고 귀농이니 공동체니 생명이니 생태니 들꽃이니 기가 어떠네 저떠네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긴 합니다.

그럼 조금만 더 풀어 보겠습니다.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생활은 농사를 기반으로 철저한 생태적인 삶을 살려고 합니다. 내 인격보다도 영격을 높여 갈 수 있는 명상적 영성수련을 계속하는 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셋째와 넷째는 정보화사회의 네트워크 공동체를 주시하는 것과 깨우침의 사회화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욕심도 많고 이질적이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나 8년여 전 제가 귀농이라는 선택을 하고 나서 열심히 노력해 온 분야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4가지의 통합적 맥락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내 삶의 4가지 원리

평생을 사회개혁에 헌신하면서 정작 자기 스스로는 단 한번도 개혁되지 않는 사람들도 보았고 모든 세상사를 ‘일체유심조’라 하면서 관조적으로 사는 ‘큰스승’들도 봐 왔습니다. 명확한 물질의 자기운동법칙을 무시하거나 ‘마음’ 하나로 다 해석하려는 사람들을 보아 왔습니다. 어떤 집단에서는 인터넷과 과학기술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그에 대한 무시로 대체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정보기술분야의 대가들이 정작 정보사회학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인 경우도 있습니다. 내 눈에는 온-오프라인의 몇몇 유명한 논객들은 사변적인 논리만 먹고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개인의 삶도 통합되어 있어야 온전하다고 봅니다. 생활과 생각과 마음이 제 각각이면 모래성이지요. 그래서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삶을 살건 우선은 철학이라고 봅니다.

작년 근 한 달 가서 머물렀던 인도의 오로빌 공동체를 비롯하여 세계의 공동체들. 우리나라의 종교적 또는 비종교적 공동체들. 이들 삶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면서 더불어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전제조건의 문제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도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건 말장난 같지만 모든 걸 버리고 비워 나가다가도 마지막으로 남는 게 ‘버리고 비워야 한다’는 교조는 버리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물질은 버리고 나눠도 자기 생각은 버리지 못하는 경우들.

제가 7년간 농사 지어 온 이곳은 땅 값이 너무 비싸서 저는 보따리를 싸려고 오래 전부터 마음먹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단순한 주거지의 이전이라고만 보지 않습니다. 삶을 전면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새로운 주거지라는 의제로 모아져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평당 1만원 이하이면서 이후에 절대 개발될 가능성이 없는 깊은 골짜기가 우선적인 저의 2차 귀농지의 전제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통 나쁘고 산세 험하고 지대가 높고 투자 가치가 없는 그런 곳일 수밖에 없습니다.

새 땅에는 새 사람이 들어가야

다행히 어제 간 곳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었습니다. 7-8 가구쯤 되는 마을 전체가 완전히 공동화 되어 무덤처럼 고요하였습니다. 마을이 빈 지가 10여년 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곳이 마음에 드는 것은 24마지기나 되는 논이 묵은 지가 5년이 넘는다는군요. 유기농을 하려면 농약과 비료 뿌려대던 관행농 땅은 아무리 못 잡아도 3-4년 동안은 무기질 거름으로 가꿔야 겨우 농약성분이 땅에서 없어지기 시작하는데 여기 논은 묵힌 덕분에 3-4년 이행 기간을 벌은 셈이 됩니다.

다 무너진 집터마다 맑은 샘이 있었고 골방 같은 폐가들은 수리해 살면 될 것 같았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내 손으로 직접 황토집을 지어 본 결론은 가급적이면 이 땅에 빈집들이 없어지지 않은 마당에 새로 집 짓는 것도 사치라는 생각이거든요.

거기가 어디냐구요? 절대 말 못하죠. 사진도 여러 장 찍었지만 이곳에 안올리는 이유가 뭔데요. 만만찮은 준비들이 순조롭게 때론 벅차게 많은 깨우침을 내게 안겨주면서 진행될 것 같습니다. 하늘의 뜻이 있으면 그곳이 내 새 터가 될 것 같습니다.

셋 중 막내가 오늘부터 시작하는 용타 큰스님과 대화스님이 주재하시는 동사섭영성수련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농민운동에 헌신 해 온 분입니다. 연말에 우리 셋은 몸과 영혼이 따로따로 인 채 하나 되는 그런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새 땅에는 새 사람이 들어가야 예의일 것 같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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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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