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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노동항쟁 명예회복추진위원회(이하 사북항쟁 추진위·위원장 이원갑)등 폐광지역 4개 사회단체들은 한국민주화운동사료 전국순회전시 폐막일인 22일 오후 2시 강릉 문화예술회관 1층 복도에서 '사북항쟁 명예회복 및 폐광지역 소외계층 보호'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22일 <사북항쟁 명예회복 및 폐광지역 소외계층 생존권 확보>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경목
성희직 집행위원장(강원도 정선 전 도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사북항쟁 명예회복과 강원랜드 카지노 수익금에서 진폐환자와 장애인들을 위한 연간 20억원 규모의 가칭 '폐광지역 소외계층 복지기금' 확보를 위해서 갱목시위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 땅에서 가장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탄광 노동자들과 수십 년 동안 버려지고 무시돼 온 폐광지역의 대표적 소외계층의 인권문제를 여론화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아울러 사북항쟁 추진위 한 관계자는 복지기금 활용 방안에 관해 "강원랜드 카지노 이익금 중에서 매년 1%를 지원 받아 페광지역 4개 시,군에 살고 있는 진폐재해자(5억원), 산업장애인(5억원), 극빈 노인(5억원), 도 장애인(3억원), 사북항쟁 관련자(2억원)들을 위한 복지사업 및 생계보조 사업에 지원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어 오후 2시 35분, 사북항쟁 추진위원회 이원갑 위원장과 100여명의 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광부의 노래'로 결의를 다지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오후 3시, 이 위원장과 100여명의 관계자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갱목시위>를 하기 위해 강릉 시내 옥천동 5거리에 모였다.

성 집행위원장은 막장에 들어가는 광부의 실제 작업복장을 하고 1993년 6월, 서울 종로 명동성당 앞에서 벌어졌던 퍼포먼스 갱목시위를 재현했다.

또 이원갑 사북항쟁 추진위 위원장은 조선시대 죄수들에게 쓰여졌던 칼을 목에 차고 2m70cm의 쇠사슬을 두 손목에 감은 채 시위에 나섰다. 칼 앞에는 "노동자의 몸을 가둘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양심은 가둘 수는 없고, 노동자를 해고할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투쟁의지를 막을 수는 없다"라고 적힌 문구를 새겨 놓았다.

▲ (왼쪽)성희직씨와 (오른쪽)이원갑씨가 탄광 노동자의 현실을 말해주는 '갱목시위'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경목
그밖에 전효덕(60·여)씨 등의 여성들은 파란색 두건과 '명예회복'을 새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단결투쟁'이 적힌 붉은 조끼를 착용했으며, 진폐재해자 및 장애인 분들은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탄 채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우리도 할 말이 있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강원랜드는 누구인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님 사북노동항쟁 관련자의 아픈 한을 풀어주세요" "강원랜드 설립취지 망각말고 이익금을 지역에 환수하라"고 외치며 시민들에게 페광지역의 심각성을 알리는데 노력했다.

이날 성 집행위원장이 등에 짊어진 갱목은 100kg이 훨씬 넘는다. 이 갱목은 실제 태백 광산에서 지지대로 사용되는 것이며, 한국민주화운동 사료 전시회 기간 동안 일반인들에게 전시됐다.

5거리에서 신영극장까지 약200m에 이르는 거리를 갱목을 짊어진 채 기어다닌 성 집행위원장은 "석탄을 캐기 위해 지금도 막장 안에서는 이처럼 등에 갱목을 짊어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이승과 저승을 오고 간다"며 광산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또 "이게 인간이 할 짓인가, 개 돼지만도 못하다"며 "돈 한푼 더 받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잔업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덧붙여 말했다.시위는 오후 4시경, 어린 학생들의 안타까운 시선과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무사히 끝났다.

▲ (오른쪽) 이원갑 위원장이 "노동자의 몸을 가둘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양심은 가둘 수는 없고, 노동자를 해고할 수는 있어도 노동자의 투쟁의지를 막을 수는 없다"는 문구가 적힌 칼을 차고 두 손목에는 쇠사슬을 감은 채 시위를 하고 있다.
ⓒ 김경목
내년 3월, 대규모 집회…

지난 8월 사북노동항쟁 명예회복추진위원회 관계자 20여명은 의문사진상규명법과 민주화운동관련 명예회복법 개정촉구를 위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성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일주일만에 끝났다. 이들 대부분이 하루하루 풀칠하기 바쁜 '하루벌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이에, 사북항쟁추진위는 "법개정 운동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이 사안들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운동을 전개할 것이"며"내년 3월말 시민, 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광부들의 처절한 삶의 절규와 애환을 아십니까?
2002년 카지노의 도시, 사북... 80년 그곳에 광부들의 민주노동항쟁이 있었다

역사적 상황에 떠밀려 80년 '사북노동항쟁'은 <사북사태>로 매도되고 힘없는 광부들의 함성은 허공에 사라졌으며 아무도 시커먼 광부들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사북노동항쟁'의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받기 위하여 투쟁해 왔으며 오늘 또다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탄광촌의 구성은 가진 것 없고 소위 빽도 없으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돈 없는 무식이 있었기에 탄광이 경영되었고 우리는 무지했기 때문에 광부로 종사했습니다. 기업은 이것을 이용하여 같은 국민앞에 총을 쏘며 칼을 들이대고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한 유신독재 권력을 등에 업고 철저한 어용노조 구성으로 임금착취, 작업 안전시설 복지후생 시설투자를 기피함으로서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 억울하게 탄광막장에서 죽어갔고 광부들은 삶에 의욕을 잃고 죽지 못해 숨을 쉬는 두더지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소위 <사북사태>는 민주 노동항쟁인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국가에서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권을 말살 당하고 노동 3권을 몰수당한 상태에서 일해온 광부들입니다.

무식도 죄가 됩니까?
기본권이 보장된 상태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쟁의를 하는 것은 투쟁이며 기본권을 말살 당하고 노동현장에서 노동 3권을 몰수당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우월한 권력과 기업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것은 항쟁인 것입니다. 소위 사북사태가 발발한 후 광부들의 자정노력에 의하여 사태가 평화적으로 수습되자 신군부에서는, 사북사건의 의미와 진상을 왜곡, 매도하기 위하여 "지부장 부인 린치사건"과 "경찰관 1명 순직"을 광부들의 폭력성과 연결시켜 무식한 광부들의 술 취한 폭동과 난동으로 매도하여 비난의 표적으로 만들었습니다.

100명이 넘는 광부와 부녀자들이 신군부에 끌려가 악랄한 고문과 무자비한 폭행으로 인간이기를 거절당하며,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몰아 넣어져 하루에도 몇 번씩 생과 사의 갈림길을 넘나들었습니다.

무자비한 고문과 폭행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고생하는 광부의 부녀자들, 더욱이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하고 석방된 뒤 몇 년 안에 가슴에 아픈 한을 안고 이승을 등진 광부들의 죽음은 강아지 한 마리의 죽음으로 치부되고 경찰관의 죽음은 국립묘지로 갔습니다. 못난 광부인 남편을 만나 아들에게나마 광부를 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살아온 가정은 파탄이 났습니다.

그 가족들의 심정은 무엇으로 달래야하며 무엇으로 보상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들의 한과 아픔을 이 사회와 국가는 22년 동안 방관해왔고 역사마저 외면해 왔습니다. 우리는 소위 '사북사태'로서 비민주적이고 부도덕한 탄광노동현실을 사회에 고발하고 신군부의 억압에 결연히 맞서면서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습니다.

우리의 투쟁이 끝난 다음날인 1980년 4월 25일 하루 만에도 전국적으로 노동현장의 민주화 연쇄투쟁이 일어나고 이러한 열기가 대학가에 민주화를 잉태시키고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당시 사태로는 부마사태, 광주사태, 사북사태가 있었는데, 부마사태와 광주사태는 정치적인 후원자가 있어 민주화 운동으로 승화되었으나 아무도 달래주고 어루만져줄 후원자가 없는 무지랭이 광부들의 민주화 운동은 광부들의 무식한 난동으로 매도되어 폐광되는 탄광 막장에 깊숙이 묻혀지는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 한단 말입니까? 소외되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민주화 없이는 우리나라 미래의 민주화는 암울하다 할 것입니다.

강원도 태백에는 산업전사 위령탑이 있습니다마는 광부는 탄광막장에서 노예처럼 시키는 데로 일하고 돈은 기업주가 주는 데로 받아야만 광부로나마 연명 할 수 있었으며 탄광막장에서 죽으면 허울 좋은 산업전사로 둔갑하는 것입니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고 하여 억울하게 기업 과실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기업주는 정당한 보상을 외면해 온 것이 지금까지의 탄광의 현실입니다. 죽은 자의 넋이라도 있다면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의 맞잡은 손이 우리들의 작은 힘에 큰 용기를 줄 것입니다.
현재, 한시적인 민주화운동 관련법의 적용 등 여러 가지 제도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관련법, 개정을 통해 '사북노동항쟁'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광범하게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데 여러분들의 뜨거운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힘없는 광부들의 손을 꼬옥 잡아주십시오.

<사북노동항쟁 진상조사-명예회복 촉구>

1980년 4월 사북노동항쟁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www.dustsabuk.com tel:033-592-1110

사북항쟁이란?
8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시발

전형적인 탄광마을 사북, 고한에는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펼쳐졌던 격변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져 있다.

1979년 10.26 사건과 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던 80년 4월, 탄광마을인 정선군 사북에서는 전국을 뒤흔든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광부들의 폭동으로 불려진 소위 '사북사태'가 바로 그것인데, 이 사건을 통하여 그동안 장막속에 가려져 왔던 탄광노동자들의 짓밟힌 삶과 노동이 언론을 통해 전국민에게 알려졌다.

80년 소위 '사북사태'는 이후 80년대 탄광촌의 모습을 뒤바꾼 일대 사건으로 기억되면서 지금까지도 무시하지 못할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87년 전국적으로 펼쳐진 민주화운동과 활화산처럼 타오른 노동자 대투쟁의 역사속에도 광산노동자들의 민주노조운동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 담겨져 있다.

정선군 고한, 사북에서 80년대를 휘감은 역사적 계기가 사북사태였다면, 90년대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의 영향력 하에 고스란히 놓여있다. 이름과 달리 전혀 비(非)합리적으로 진행된 이 정책은 80년대를 소중하게 가꿔온 탄광노동자들과 지역상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파괴력을 보였다.

168개에 달하던 고한, 사북지역 탄광이 2곳만 남고, 6만에 달하는 인구가 불과 5년만에 1/3로 줄어든다. 숫자에 익숙한 정부관료들조차 당황할 정도로 급속하게 진행된 탄광노동자들의 집단 이주(?)는 지역 상인들에게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지역전체가 거의 공동화, 폐허화되는 최악의 위기를 겪게된다.

이러한 90년대 초반의 상황은, 합리화정책으로 누적된 지역 사회적 모순이 95년을 계기로 폭발하는 토대로 작용하게 된다.

사북항쟁은 정치적으로는 80년 정권장악에 나선 신군부에 저항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고, 노동운동 차원에서는 80년대 초 전투적이고 폭력적인 한국 노동운동의 시발이 됐다. 또 사북항쟁은 단순한 노동자 투쟁이 아니라 파업투쟁 와중에 노동자 가족까지 참여하는 항쟁의 형태로 전개된 것도 한 특징이다.


정선지역발전연구소, 김창완 <90년대 사북,고한지역의 주민운동> 중에서 서문 발췌
한겨레신문 11월 25일자, 백기철 기자<늙은광부들 통곡하다>제하 기사 중에서 일부 발췌
/ 김경목

덧붙이는 글 | 성 명 서 

사북항쟁 명예회복 및 폐광지역소외계층 보호를 위한 
투쟁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막장인생'이라 말해온 이 땅에서 가장 수고하는 노동자 광부!. 지하 수천m 막장은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아침에 막장에 함께 들어간 동료가 오후에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오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70-80년대만 해도 한해 200명이 넘는 광부들이 사고로 숨지고 부상자는 수천 명에 달했다. 그렇게 우리들 노동의 역사는 피와 땀과 눈물로 쓰여졌다. 무엇보다 10년, 15년쯤 일하고 나면 숨쉴 때마다 들이마신 탄 먼지, 돌가루에 불치의 직업병인 <진폐증>에 걸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그 시절 우리는 '산업역군' '산업전사'로 불리었다. 국내 유일의 에너지자원을 생산하고 산림녹화에도 절대적인 기여를 해온 우리 탄광노동자들. 그러한 우리들이 언제부턴가 산업쓰레기 마냥 내팽개쳐지고있다. 병원에 입원조차 못하고 있는 진폐재해자들이 전국에 5만 명이 넘고 있다. 탄광사고로 다치고 불구가 된 사람들도 수만 명이다. 정부대책과 관심도 너무도 미흡하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터 같은 지하막장에서 우리는 짐승처럼 일했었다. 그럼에도 어용노조는 회사와 한통속이라 우리는 투쟁을 시작했고, 우리는 일부 언론에 의해 졸지에 <폭도>가 되어버렸다. 공권력은 <사북사태>란 이름으로 우리를 마구잡이로 끌고 가 고문하고 징역을 살렸다. '사북사태 관련자' 그렇게 낙인찍힌 우리들은 폐인이 되고 가정 파탄으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세월을 살아왔었다. 
'광주'는 <항쟁>인데, '사북'은 왜 아직도 <폭도>이고 <사태>이어야하는가? 이처럼 억울한 우리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 

우리가 오늘 '민주화운동사료 및 자료전시회'를 하는 강릉에서 극단적인 방법의 <갱목시위>를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달라. 이처럼 정당한 주장과 요구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날씨가 따뜻해지는 3월말쯤 강원랜드카지노가 있는 '사북'에서 사생결단의 대규모투쟁을 벌일 것이다. 

관계기관에서는 이점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참고 지내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요구) 

1. 억울한 '사북항쟁' 관련자 명예회복과 고문, 구속자 피해 보상 조속히 이루어져야한다! 

2. 강원랜드카지노 이익금 1%를(연간 약20억원 규모) 폐광 지역 소외계층 복지 및 생계대책비로 사용하라! 

3. 강원랜드카지노 총 매출액의 35%를 정부가 챙겨가고 있다. '1천억 도세 확보' 문제 조속히 해결하라! 

2002년 12월 22일 

사북노동항쟁 명예회복추진위원회. 전국진폐재해자협회. 폐광지역4개시군 장애인단체연합회. 폐광지역 민주화운동동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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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강원정치 대표기자, 2024년 3월 창간한 강원 최초·유일의 정치전문웹진 www.gangwoninnews.com ▲18년간(2006~2023) 뉴시스 취재·사진기자 ▲2004년 오마이뉴스 총선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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