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워지자, 눈발 날리는 중구청 앞 철거민들의 비닐움막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용두동 철거민을 위한 예배를 올리고 새벽송을 부르기 위해 저마다 가슴에 축복의 초한자루씩 품고 드럼통 난로를 빙 에둘러쌌다. 용두동 철거민 할아버지들은 손님들을 위해 연신 장작을 넣었다.
생나무에 붙자, 불꽃은 나비처럼 까만 허공으로 날아 올랐다. 천주교 신부님, 수녀님들, 사회단체 회원들, 그리고 여러 교회에서 모인 사람들로 중구청 앞은 흥성스러웠다. 이윽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새벽송이 울려퍼졌다. 수녀님들이 연주하는 작은 트라이앵글 소리가 맑게 울렸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고요한 복음성가, 혹은 경쾌한 캐롤들이 골고루 울려 펴졌다. 노래가 끝나자, 대전지역철거민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김규복 목사(빈들장로교회)가 말문을 열었다.
“예수님은 빈 방이 없어 추운 마구간에서 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교회가 집을 빼앗기고 방이 없어 길거리에서 자는 철거민을 길바닥에 두고 따뜻한 성탄예배를 드리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독교청년협의회(EYC) 소속의 한 청년은 “복된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노숙현장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며 이옥희 임시주민대표에게 힘내시라고 선물을 전달했다. 이옥희 대표는 “이길 때까지 힘내서 싸우겠다”고 답례했다.
2천년전 예수님이 어울리던 사람들은 당시에 죄인취급 당하던 고아, 과부, 이방인 등이었다. 그들과 그들을 핍박하는 악한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시키고자 했던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당시 기득권층은 십자가 처형으로 화답했다.
힘없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어야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조야연 주민대표와 주민 정진용씨는 지난 17일, 업무방해 등의 죄목으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금도 다수의 주민이 업무방해 죄목으로 검찰 소환에 시달리고 있다. 벌금형을 받은 사람도 여럿 된다. 그러나 진짜 죄인은 과연 누구일까. 세상사람들이 판단하는 '죄‘와 예수님이 판단하는 ’죄‘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간격이 있는 듯하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2천년이 넘었고, 사람들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 그러나 진짜 ‘죄인‘이 누굴까 생각하게끔 하는 사건이 여전히 일어난다.
기독교인들만이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했더라면, 용두동 철거민 싸움은 벌써 끝났을 것이다. 대다수 한국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지 않고, 권력을 가진 국가와 공기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철거되던 그 날부터 예수님이 용두동 주민과 함께 하시지 않았을까? 폐허가 된 용두동 언덕은 예수님이 고난받던 골고다 언덕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주택공사는 350여명의 용역철거반원을 동원하여 예수님에게 함부로 폭력을 가한 셈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게 평화로다. 아멘.” 축도로 예배는 끝났다. 예수님께서는 기쁘게 노래를 들으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