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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저녁 초등학교 동창회의 송년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일년에 네 번 '계절모임'을 하니 겨울모임은 자연히 송년모임이 되는 셈이었습니다.
고장에서 또는 이웃 동네에서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여하고 있는 동기들은 대략 100명쯤 되는데, 이번 송년모임에는 40명 정도 참석을 했지요.
시골 초등학교치고는, 그리고 195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치고는 우리 동기는 인원수가 무척 많은 편에 속합니다. 6,25사변 때문에 제때에 취학을 못했던 사람들이 전쟁 후에 왕창 입학을 한 바람에 우리 동기들의 수는 가까운 선·후배들에 비해 거의 배가 더 많지 싶습니다.
바로 위 선배들은 한 학급에 60명씩 4개 학급이었고, 바로 아래 후배들은 5개 학급이었던 것에 반해 우리 동기들은 무려 8개 학급이나 되었으니까요. 지금과는 달리 남자반 여자반을 따로 편성해서 남학생 반이 5개 학급이었고, 여학생 반은 3개 학급이었지요.
역시 6.25사변 탓에 우리 동기들은 어느 기수보다도 동기들간의 나이 차이가 극심했지요. 대여섯 살 정도 차이 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 나이를 놓고 보면 1학년과 6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한 셈이기도 했지요.
우리 모교는(충남 태안의 태안초등학교)는 묘하게도 학교 기수와 출생연도가 맞물려 있는 형국이랍니다. 즉 47년 생은 대개 47회이고, 48년 생은 48회, 49년 생은 49회가 되는 형국이지요.
그런데 나는 48년 2월 생이라서 취학 통지서가 일찍 나온 바람에 48회로 가지 못하고 47년 생들이 주축을 이룬 47회가 되었지요. 그러니 자연적으로 막둥이가 된 셈이었지요. 한 살 일찍 입학을 한 셈인 데다가, 6.25 전쟁 탓에 제때에 취학을 하지 못하고 뒤늦게서야 왕창 입학을 한 나이배기들과 동기가 되었으니, 초등학교 6년 내내 막둥이 설움이 없지 않았지요.
다행히 쑥쑥 잘 자라는 키에다가 성깔도 좀 있는 편이어서 학년이 올라가면서는 학급내 서열상의 역전 현상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학년초마다 아이들을 모두 뒤섞어서 학급 편성을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에는 처음 입학할 때 4반이었으면 졸업할 때까지 4반이었으므로, 학급내 서열상의 역전 현상이 가능했던 것이고….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줄곧 학급 아이들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다가 60명 학급이 무려 8개 반이나 되었기 때문에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동기동창들이 많을 수밖에…. 그것은 동기동창으로서의 친밀감과 결속감을 알게 모르게 방해하는 것이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우리 동기들이 10년 전쯤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만들어서 운영을 잘해 오고 있는 것은, 점점 나이를 먹어 가고 초등학생 시절이 멀어져 가면서,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었을 테지요. 잠시나마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알게 모르게 발동한 탓일 테고….
나는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면 어떤 원초적인 친숙감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런 느낌은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좀더 유다른 것 같습니다. 서로 간에 마구 이름을 부르고 욕설을 하고, 어느덧 할아버지가 된 사람이 할머니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지지배'라는 소리를 할 수 있는 자리이니, 그런 것들이 여간 재미롭지 않습니다.
나는 동기들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고 서너 살이나 위인 사람들도 많아서 그들에게 호칭이나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청년 시절부터 나보다 나이가 많은 동기들에게는 박형, 이형, 하는 식으로 부르거나 직함을 불러 버릇했지요. 동기들과 허물없이 잘 어울리면서도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내게 나이 많은 동기들이 오히려 대접을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친숙감을 해치는 것은 물론 아니지요.
이번 송년 모임에서는 총무를 맡아 고생하는 친구로부터 몇 가지 특이한 발표들이 있었습니다. 두 명 동기가 환갑을 먹었는데, 옛날처럼 환갑잔치를 하는 시절은 아니지만, 동창회 이름으로 축하를 해주었다는 얘기. 아무개와 아무개가 손자 손녀를 보았다는 얘기. 아무개와 아무개가 며느리를 보고 사위를 보았다는 얘기. 또 아무개와 아무개가 부친상과 모친상을 당했다는 얘기. 이런 경사와 애사들에 동창들이 물심 양면으로 부조를 잘해 주어서 고맙다는 얘기. 아무개가 30년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바로 오늘 정년 퇴임을 했노라는 얘기.
그런 발표 끝에는 으레 모든 친구들의 축하 박수와 위로 박수가 쏟아지곤 했지요.
총무 친구의 발표 중에는 가슴 아픈 얘기도 있었습니다. 올해도 한 친구가 세상을 떴다는 얘기였지요. 올해는 한 명이 이승을 하직했지만, 세상 떠나는 일에 순서와 수효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 모두 다같이 건강 조심하고 교통 사고 조심하면서 착한 마음으로 살자는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한 순간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지요.
잠시 동안은 나에 대한 얘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답니다. 공무원 생활 덕에 직장에서 인터넷 웹상에 오른 내 글을 더러 읽기도 한다는 한 친구가 내 글에 등장한 딸아이에 대해서 관심을 표한 것이 계기였지요.
결혼을 늦게 하여 이제서야 중학교를 졸업하게 된 딸아이와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아들녀석을 두고 있는 나는 여러 동창 친구들로부터 이상한 부러움을 사는 것도 같았습니다. 아이들 덕에 그만큼 젊게 산다는 내 말에 친구들이 동의를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아이들이 어린 만큼 젊게 사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동창 모임에서 어떤 동창이 환갑을 먹었다느니, 손자를 보았다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왠지 '징그러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전에는 나이 마흔에 결혼하여 겨우 얻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나를 딱한 눈으로 보곤 했던 친구들이 이제는 부러워하는 눈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고….
고향에서 살면서도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가서 앉아 있노라면 고향 속의 고향에 돌아와 있는 것만 같은 느낌도 나는 재밌습니다. 고향에 몸을 놓고 사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농민이 다수인 동기들 속에서 흙냄새와 풀냄새가 물씬 풍기는 옛날 속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나는 즐겁습니다.
읍내에서 사는 친구들보다 좀 떨어진 곳에서 사는 친구들이 더 열심히 동창회 모임에 나오는 것을 보면, 시오리 밖에서 '마라손'으로 학교에 오는 애들보다 학교 가까이 살고 있는 놈들이 더 지각을 많이 한다고 선생님께 야단맞던 그 시절의 교실 풍경이 아슴히 떠오르기도 합니다.
허리나 어깨에다 책보를 두르고 시오리 길을 달리는 친구의 발걸음에 장단을 맞추어 주던 필통 속 연필 쩔렁거리는 소리도 다시 들리는 듯싶습니다. 철 필통 속에서 골병이 들어 자꾸만 심이 부러지는 연필을 겨우 깎아 가지고 엠원 소총 탄피에다 꽂아서 끝까지 써먹었던 아까운 몽당연필도 명료하게 눈에 떠오릅니다.
눈 내린 추운 겨울날에 양말도 신지 않은 발로, 검정 고무신 안에 지푸라기를 넣어 신고 다니던 저 두야리 친구의 까마귀 아저씨 발도 이상한 그리움으로 떠오르고….
일주일 간격이었는지 한 달 간격이었는지 기억이 명확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원조 물자인 '우유가루'를 타는 날이 있었지요. 맛이 썩 좋았던 우유가루를 한 됫박씩 보자기나 시멘트 푸대 종이에 타 가지고 집에 가지고 가기도 전에 혀로 찍어 먹어대느라 온 얼굴에 우유 투갑을 하곤 했던 모습도 아련히 떠오르고….
생각하면 동화 속 풍경 같습니다. 요즘의 초등학교 아이들이 먼 훗날 오늘을 돌이켜보면 동화 속 풍경 같은 느낌이 들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는 점점 멀어지는 시간의 길이 만큼 초등학생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의 부피도 점점 커지는 듯싶습니다. 우리의 아련한 그리움 속에는 아릿함도 있지요. 순수한 흙냄새 풀냄새와 함께 가난의 아릿함도 있기에 그 그리움은 더욱 아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초등학생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순수지정에 대한 희구(希求)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나의 경우, 흙냄새 풀냄새가 함께 하는 고향에서의 확실한 고향 체감을 소망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초등학교 동창 모임 역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면, 어린 시절의 순박한 동심을 한껏 그리워하면서 그것으로 잠시나마 나 자신을 정화하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것을 소망하며 수십 년 인연지기들과 다시 한번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한해 동안 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과 이런저런 의견을 주신 여러분께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거의 저문 2002년의 끝마무리를 잘하시고 희망찬 마음으로 새해를 기쁘게 맞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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