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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잔설을 빠져나온 버들강아지꽃
ⓒ 임소혁
한참 시간이 흘렀다. 그때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강군이 왔다. 교통 체증으로 약속시간보다 더 늦어서 죄송하다는 인사를 거듭했다. 우리는 곧 거기서 가까운 한 주점으로 갔다. 쑥스럽게 큰절을 받고 맥주를 한 컵 들이킨 후 나는 강군에게 그날의 일을 상기시킨 후 뒤늦게나마 간곡히 사과했다.

"선생님, 저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럴 리가…… 오늘 모임의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겠다는 너의 갸륵한 마음씨일 테지."

"글쎄요. 선생님이 그때의 정황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니까 언뜻 생각이 난 듯합니다만, 이제 와서 저에게 사과까지 할 거야 없지 않습니까?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그때 선생님은 막내였잖습니까? 선생님이 반대하였더라도 그때의 분위기를 뒤집지는 못했을 겁니다. 제가 반 아이들을 잘 설득하지 못하고 불쑥 교무실로 찾아간 게 잘못이지요."

강군은 끝까지 나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의 마음씀이 나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거리로 나온 후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 까치수염꽃
ⓒ 임소혁
"선생님, 이거 집사람이 준비한 겁니다."
장군은 내 손에 쇼핑백을 쥐어주었다.
"선생님, 전 선물은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편지를 썼습니다. 읽어보시면 아마 필체가 선생님과 비슷할 겁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 필체가 하도 멋있게 보여서 그대로 많이 연습했거든요."

그들과 작별한 후, 버스에 올라 편지를 펼쳤다.

"봄비 소리를 들으며 필을 들었습니다. 아침 이른 시간에 이렇게 기분 좋게 어떤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입니다 ……."
영락없는 내 필체였다. 온몸이 오싹했다.

"제자는 스승의 모든 걸 배운다."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

집 앞 어두운 계단을 오르면서 더욱 묵직한 부끄러움이 나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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