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천주교 신자로서 나에겐 하나의 특별한 자부심이 있다. 유아 시절에 영세를 받은 대전교구 태안교회 초창기부터의 신자로서 지금까지 열 한 분의 주임사제와 두 분의 보좌신부를 모셨다. 수녀님들도 20분 이상이 우리 성당을 거쳐갔다. 그런데 나는 단 한 번도 성직자 수도자의 입에서 다른 종교를 비방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주일 미사 때마다, 그리고 평일 미사에서도 자주 신부님의 강론을 듣는데,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강론은 물론이고, 사제와 신자들이 어울려 친교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성직자의 입에서 단 한 번도 타종교를 비방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느 날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나에게 야릇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신선한 희열로 변했다.

타종교를 비방하고 비판하는 일보다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더욱 중요시하는 사제들의 그런 태도에서 나는 나도 늘 조심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제들이 어쩌다 개신교나 불교에 관한 얘기를 입에 올릴 때는 그 종교의 좋은 점,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본받아야 할 점만을 얘기하는 것에서도 사랑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오는 14일 사제 서품을 받게 되는 우리 본당 출신 방영훈 부제는 5일 주일 미사의 신부님을 대신한 강론에서 현재 인터넷상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개신교 신자 이지선씨의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면서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신교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꽤 많은 편이다. 현재 SBS의 인기 드라마 <야인시대>를 집필하고 있는 이환경씨와 함께 1970년대 후반 서울에서 노동자 생활을 할 때는 매주 금요일 저녁 종로 5가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열린 '박정희씨의 회개를 위한 금요기도회'의 단골 참석자였다. 그 기도회는 주로 개신교 목사님들이 인도를 했지만 때로는 천주교의 신부님과 불교의 스님들이 참석을 하기도 했다.

기독교회관 강당에서 개신교의 목사님들과 천주교의 신부님, 불교의 스님들이 한데 어울려 집회를 여는 모습은 내 눈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그분들과 함께 천주교 신자인 나도 개신교 신자들, 불교 신자들, 무종교인들과 함께 기도회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 시절에 명동성당에서 목사님들과 스님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내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명동성당에서 고(故) 문익환 목사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지금도 내게 신선한 감격 같은 것을 안겨 주고 있다.

몇 년 전 공주 처가에 갔을 때의 기억도 즐겁다. 장모님의 칠순 생신 날이었다. 장모님이 다니시는 감리교회의 담임 목사님과 부목사님, 그리고 신도 여러분이 오셔서 축하 예배를 보았다. 나도 기꺼이 그 예배 자리에 참석했다. 신도 한 분이 건네주는 찬송가책을 받아들고 찬송가도 열심히 불렀다.

예배를 마친 후 감리교회의 담임 목사님이 내게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천주교 신자라고 대답했더니 목사님은 놀라며 고마워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목사님을 보자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 심정이었다.

니는 지역의 한 분 장로교 목사님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가서 그 교회 주일 예배에 참례하면서 강론을 한 적도 있고, 목사님들과 친밀하게 지내면서 지역의 여러 가지 민권운동에 관여한 적도 많다. 나는 그런 일들을 매우 즐겁게 기억한다. 현재 내가 대표로 일하고 있는 고장 문학회의 회원 중에는 목사님도 한 분 계시는데, 나는 그 목사님과 아주 친숙한 편이다.

전국 각지에 산재되어 있는 천주교의 수많은 '성지(聖地)'들을 순례하다 보면 가끔 개신교 순례단도 만나게 된다. 경기도 용인의 미리내 성지에서도 그런 적이 한 번 있고, 인근 해미무명순교자성지에서도 안흥의 한 감리교회에서 온 순례단을 본 적이 있다.

천주교 성지에서 개신교 순례단을 보면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마음도 한량없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좋지 않게 보고 비판을 하는 신도는 없을까 은근히 걱정도 하게 된다. 같은 교회 안에서는 비판을 하는 신도가 없을지라도, 다른 교회나 교파에서는 그것을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도 인터넷 공간에서는 종교 논쟁이 참으로 극렬하다. 종교 관련 사이트를 접해 보면 그것의 정도와 실상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타종교 비방과 공격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트집거리가 너무도 많아, 트집잡지 않을 게 하나도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개신교의 경우 교파도 많고, 천주교에 비해 신도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특공대 전사'들도 많이 나타난다. 천주교 사이트에 들어가서 치졸하고 방만한 공격과 비방으로 게시판을 어지럽히는 예를 자주 본다. 그럴 경우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방어적 자세로 대응을 하는데, 천주교 신자 네티즌 가운데서는 개신교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서 싸움을 일으키는 특공 전사가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을 나는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종교의 교리 논쟁은 참으로 무익하며 불필요하다. 그것은 별다른 결과를 낳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과 불화만 심화시킨다. 교리 논쟁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신념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며 자신에게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내 교회 안에서 다른 교회의 모습과 내면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자기 교회의 일정한 창으로만 보는 다른 교회의 모습이 전부일 수는 없다. 내 교회 안에서 내다보는 것과 그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오래 살펴보는 것이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내가 그 교회 안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면 그 교회의 내면까지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이 글이 진행되는 동안 '독자의견'란에 '어느 기독교인'이라는 분이 천주교의 성물 성화 공경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 제기를 해주신 것을 일단 고맙게 생각한다. 천주교의 그것을 우상숭배로 규정하며 성경 안의 수많은 관련 구절들을 찾아 제시해 주신 그 노력과 성경 지식에도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분의 그런 '새삼스러운'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2000년 동안 성물 성화 공경을 해온 가톨릭교회는 그 오랜 전통을 하루아침에 버리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것이다. 그런 식의 문제 제기와 비판에 따른 극렬한 논쟁은 이미 오래 전에 수없이 있었고, 2000년 동안의 교회의 수많은 역사체험과 신앙체험 안에 잘 축적되어 있다.

그런 비판을 하실 때는 성경 안의 수많은 관련 구절에도 불구하고 왜 천주교가 성물 성화 공경을 계속하고 있는지, 그 이유도 진지하게 '공부'를 해보아야 한다. 성경 안에는 그분이 제시하신 그런 구절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구약시대부터 하느님께서 강생하신 '말씀'으로 성취된 구원을 상징적으로 가리켜주는 형상들을 만들도록 명령하시거나 허락하신 구절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구리뱀(민수 21, 4∼9) : (요한 3, 14∼15)과 계약의 궤와 케루빔(출애 25, 10∼22) : (1열왕 6, 23∼28)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천주교의 성물 성화 공경이 신자들의 성화(聖化)에 얼마나 이바지하고 있는지, 그것이 교회 안에서 어떤 부작용이라도 일으켰는지, 성물 성화 공경의 본 목적에서 벗어나는 미신적인 신심 행위가 있을 경우 교회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련 사항 전반에 대한 탐구와 고찰이 선행된 다음에 비판을 하는 것이 온당하고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다.

천주교의 성물 성화 공경을 우상숭배로 간주하고 비판을 하는 것도 한국 개신교만의 상황이고, 그런 인식의 방만한 발화로 개신교의 신도가 천주교의 성모상과 불교의 불상을 훼손하는 것도 한국만의 일이고(몇 년 전에 아프가니스탄의 회교원리주의 탈레반 정권이 세계 최대의 불상을 파괴하는 만용을 저질렀지만), 술과 담배를 금하는 것도 한국 개신교만의 특성이라는 점 등을 살피는 것도 포괄적인 고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천주교의 성물 성화 공경이 교회와 신자들의 성화와 신심에 도움을 주기는 할지언정 아무런 부작용도 없다는 사실을 천주교 신자로서 자신 있게 말씀 드리며, 성물 성화 공경으로 말미암아 천주교 신자들이 모두 지옥에 갈 거라는 걱정은 삼가주시기 바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의 소관 사항이기 때문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