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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를 긁어 내리는 새들이 뒤편으로 햇살이 못 들어 온 나무 그림자 아랫쪽은 눈이 쌓여 있다.
갈비를 긁어 내리는 새들이 뒤편으로 햇살이 못 들어 온 나무 그림자 아랫쪽은 눈이 쌓여 있다. ⓒ 전희식
갈비를 긁어모을 터를 잡고 지게를 내려놓았다. 아들과 나는 주저앉아 지게 등태에 비스듬히 기댔다. 눕다시피 한 자세로 따뜻하지만 또 날카롭기까지 한 햇볕에 눈살을 찌푸리며 동네마을과 앞산을 바라보았다.

따사로운 햇살과 오슬오슬한 겨울공기. 푹신한 산기슭에 쌓인 나뭇잎. 그 위에 드러누워 바쁠 것 없는 세월. 실없는 한담을 나누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난로가에 앉아 있을 때 하고 햇살을 쬐고 있을 때 하고는 기분과 영감이 전혀 달랐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빠. 저 눈들이 다 녹으려면 앞으로 며칠이나 걸릴까요?”
“야 이 촌놈아 이제 너도 6학년이 되는데 말을 그렇게 하면 진짜 촌놈이지. 날이 오늘처럼 계속 따뜻할지 갑자기 또 얼어붙을지 하나님만 아시는 일이다”
“언제는 아빠가 하나님하고 동격이라고 했잖아요. 그것도 몰라요?”
“하나님아버지나 전희식아버지나 다 같은 아버지니까 동격이지 이놈아. 근데 같은 아버지라도 전공이 달라서 날씨 같은 건 내가 모른다.”
“아빠는 방구 전공이죠? 이히히...”

내가 난데없이 방구쟁이가 된 사연은 남매의 묘략에 의해서다. 며칠 전 방학이라 집에 와 있던 딸 새날이와 함께 셋이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핑계로 이틀 동안 앞마당에도 안나가고 구들장을 등짐진 채 뒹굴면서 노닥거릴 때였다.

이행시 짓기와 삼행시 짓기를 하는데 새들이가 낸 단어가 ‘누나’였다. 새들이가 시키는 대로 한 자씩 내가 선창을 했다.

나 : 누
새들 : 누가 방구 꼈어?
나 : 나
새들 / 새날 : 우헤헤헤 아빠 방구장이다.

고마운 하늘의 햇볕정책이여~

지게에 갈비를 차곡차곡 삭정이를 걸쳐 가면서 쌓아 올리고 있다.
지게에 갈비를 차곡차곡 삭정이를 걸쳐 가면서 쌓아 올리고 있다. ⓒ 전희식
방구쟁이가 되어버린 나는 겨드랑이에 손바닥을 오므려 넣고 방구소리를 내는 시범까지 보이기에 이르렀다. 건조한 손바닥에 침을 발라 가지고 했더니 방구소리 음색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왼쪽 겨드랑이와 오른쪽 겨드랑이는 계곡의 깊이가 달라서인지 소리도 달랐다. 두 아이도 나를 따라 하면서 넋이 나갈 정도로 신났던 날들이었다.

양지바른 언덕이 너무 따뜻하여 나무하러 일어 설 엄두가 안 났다. 부전자전이요 이심전심이라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아들 새들이가 혼잣말처럼 또 말을 걸어왔다.

“아빠. 여기처럼 저기 저 눈들이 다 녹으려면요. 사람들이 다 녹인다 쳐봐요. 그러려면 보일러 백 개 돌려도 안 되겠죠?”
“당연하지 이놈아. 보일러 백 개 아니라 열 개 돌려도 모자라지.”

정말 그랬다. 저 응달진 산기슭과 골짜기들. 동네 앞들에 난로를 갖다 놓는다면 몇 천개를 놓을 것이며 스팀을 튼다면 몇 메가 칼로리 보일러를 돌릴 것인가. 갑자기 앞이 캄캄해 왔다. 저 눈을 사람들 힘으로 다 녹여야 한다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에 하늘이 인간들에게 햇볕정책(!)을 중단하고 하루아침에 햇살을 거두어 간다면 우린 어떻게 될까. 별 희한한 걱정이 생겨났다.

이때부터 새들이와의 잡담 겨루기는 내가 주도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느린건 늦게 가고 빠른건 일찍간다? 거북이처럼?

“새들아. 아빠가 지금 아주 중요한 걸 발견했다.” 내가 약간 격앙 된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요?” 새들이는 부러 시큰둥하게 대꾸한다.
“폭설이 내리거나 태풍이 몰아치거나 하면 차례차례 쓸모없이 변해 가는 것들이 생기자나.” 나는 실제 진지해 졌다.
“지금 봐라. 우리 동네 버스 안 들어 온지가 벌써 4일째야. 너 TV 에서 비행기 못 뜬다는 얘기도 들었지?”
“근데 무슨 얘기 하시려고 그래요?”
“아이고 이 촌놈. 아직 눈치가 안 가냐? 비행기나 버스는 못 가도 사람 두 발은 가잖아. 그 말 하는 거야.”
“그걸 가지고 중요한 걸 발견했다고 함부로 말해도 되는 거예요?”
“이 짜슥이 증말. 머리가 그렇게 나쁘냐. 내가 널 다리 밑에서 주어온 게 지금 드러난다 드러 나.”

그러다 보니 과연 내가 발견한 게 대단한 것인지 어떤지 판단이 잘 안 섰다. 그래도 나는 이 말을 다시 주어 담을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눈이 엄청나게 이 시골마을을 뒤덮다시피 하고 나서 앞집, 옆집 보일러들이 얼어 터져가지고 다들 냉돌방이 되어 버렸을 때다.

시내 대리점에서 보수공사도 올 수 없었다. 차가 다닐 수 없으니 말이다. 귀뚜라미 보일러 아니라 독수리 보일러가 있었다 해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돈이 다발로 있어도 당장은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유독 우리 집만 구들장이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나무만 아궁이에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추워도 불은 얼지 않는 법이다. 나무도 얼지 않는다. 고로 내 방은 내 뜻과 무관하게 냉돌방이 될 일이 없다. 그러니 뒤꼍에 처마 밑에까지 쌓아 둔 장작더미만 쳐다보면 밥 안 먹어도 내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는 게 이해가 될 것이다.

빠르고 힘센 기계나 장비들은 하나 둘 작동을 멈추고 고철 덩어리가 되어 갔지만 오직 살아남은 것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힘으로 살아오던 것들뿐이었다. 두 발로 걷기와 온돌방과 우물물 등이 그것들이다. 이 대목에서 거북이가 오래 사는건 느리기 때문이라는 말이 떠 올랐다.

내 중요한 발견에 대해 새들이가 맞장구를 쳐 주지 않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햇볕 빤 한 지금 불살개 용 갈비를 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일을 시작했다. 새들이는 가랑잎과 갈비를 긁어내리고 나는 칡넝쿨을 걷어다가 반으로 쪼갰다. 새끼 끈 대신 나뭇짐을 묶기 위해서다. 산 속에 몇 년이나 쌓인 갈비는 금시 한 짐 되었다. 갈비더미 위에 새들이가 두 팔을 벌리고 벌렁 들어 누웠다. 침대처럼 푹신 거린다.

눈이 오기 전 어느 날. 그러니까 벌써 지난주다.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한쪽 산비탈을 다 긁어 내렸을 때는 나뭇잎이 산더미 같이 쌓였었다. 밭으로 내서 이른 봄 감자 심은 다음 덮어줘야겠다 싶었는데 앞집 할아버지가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집에 와서는 어이 히시기….

섭섭하게 생각지는 말게 하더니만 자기가 나뭇잎을 긁으려고 몇 년 전부터 억새하고 잡목을 다 걷어 냈었다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긁어 놓은 것을 내 놓으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게 있어야 거름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말투가 워낙 단호해서 나는 뭐라 말 머리를 찾지도 못하고 우물우물 하다가 그냥 예예 하고 말았다. 시골 노인네들은 다른 것은 다 관대하지만 농사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고지식하리만치 완고하시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참동안 너무 아깝고 서운했다. 일을 좀 쉬엄쉬엄 할 걸. 그날따라 쉬지도 않고 종일 그 많은 일을 할게 뭐람. 자기가 할 거면 내가 다 긁어 놓기 전에 말 할 것이지 참 염치도 없는 할아버지다. 등등 아쉬움이 많았지만 입맛만 다실 뿐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할아버지와의 숨바꼭질

마당 구석에 서 있는 하얀꽃의 수국나무에는 한겨울에 꽃이 만발 한것처럼 눈꽃이 안 녹고 있다.
마당 구석에 서 있는 하얀꽃의 수국나무에는 한겨울에 꽃이 만발 한것처럼 눈꽃이 안 녹고 있다. ⓒ 전희식
우리집에 갖다 놔야 내 것이 되지 집 밖에 있는 동안은 언제 또 할아버지에게 빼앗길지 몰라 갈비를 서둘러 묶어지고 집으로 왔다. 내가 오늘은 주의를 놓지 않아서 그런지 할아버지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 때도 다음날로 미루지 말고 밤이 좀 늦을지언정 갈비를 다 묶어서 집에 들였으면 할아버지가 그마저 내 놓으라고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갈비를 한 짐 아랫방 헛간에 넣고 보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내 부를 지키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와의 숨바꼭질에서 눈에 띄지 않아야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불살개와 장작더미를 뿌듯한 마음으로 번갈아 쳐다보면서 날씨야 얼마든지 추워봐라 싶었지만 오늘도 날씨는 봄날처럼 따스했다. 라디오에서 당분간 추위가 오지 않을 것이라 해서 쩝쩝 입맛을 다셔야 했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정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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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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