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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의 가을, 홍콩을 보기에는 다소 긴 4박 5일의 일정에서 하루정도를 할애해 우리일행은 주변섬을 찾기로 했다.

우리의 목표는 홍콩의 200개의 섬들 중에 가장 크다는 란타우 섬이었다.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고 신공항이 들어서 있는 섬이기에 홍콩에 도착해 가장 먼저 발을 디디게 되는 곳이지만 막상 그곳을 관광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듯 했다.

셋째 날로 일정을 잡았는데 막상 떠나는 날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홍콩의 여름과 가을은 유독 강수량이 많아서 우산을 준비해가긴 했지만 비오는 날은 꼼짝도 하기 싫은 성격 때문에 조금 기분이 우울해졌다.

어차피 가야하는 길이기에 예정대로 숙소에서 8시 30분에 출발했다.

페리가 거의 30분 간격으로 있어서 되도록 우리가 타고자 한 페리를 타는게 좋을거란 생각에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지만 중간에 하버시티라는 쇼핑몰에서 잠시 윈도우쇼핑을 하느라 조금 늦어져 다음 배를 타야만 했다.

퍼스트 페리라는 홍콩의 각 지역을 연결하는 이 고속 페리는 깨끗하고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행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달리자 35분만에 우리는 란타우 섬에 도착해 있었다.

▲ 무이우의 배들..
ⓒ 이혜경
란타우 섬의 첫 인상은 고요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가랑비가 내리고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배에서 내렸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은 초라하다 싶을 정도의 행색이었지만 얼굴에는 순박함이 묻어 났다. 홍콩의 거리를 걸을 때에는 홍콩 사람들은 모두 딱딱하고 바빠 보이기만 했는데 이곳의 사람들은 우리네 시골마을 사람들을 보는 것처럼 편안하기까지 했다.

무이우라는 페리 정박장이 있는 곳은 그래도 페리가 오가는 곳이라서 인지 사람도 많았고 바로 앞에 연결되어있는 버스정류장에는 버스도 많이 서 있었다.

버스 정류장은 정말 정류장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았지만 사람들은 원하는 자리에 가서 서 있었고 우리도 타이오 어촌마을로 가는 1번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너무 발전되지 않은 느낌이라 우리는 교통카드로 구입했던 옥토퍼스 카드가 여기서도 사용이 될까 하고 잠시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대다수의 버스에서는 그 카드가 적용이 되고 있었다.

홍콩에서 늘 타던 번쩍이고 거대한 2층 버스를 타다가 정말 우리 시골동네의 마을버스를 연상시키는 란타우의 버스를 이용하니 웬지 홍콩이 아니라 할머니 댁에 내려온 마음이었다.

게다가 그 버스 안에 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생선을 봉투에 그대로 담아 가지고 있거나 꽥꽥거리는 닭을 안고 타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우리는 다소 냄새가 나지만 사람 사는 동네 같다고 웃을 수 있었다. 란타우는 큰 섬이라기에 버스를 오래 타야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무려 1시간이나 걸려서야 타이오 어촌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타이오 어촌마을의 입구
ⓒ 이혜경
타이오는 페리가 내리던 무이오보다 더 작은 곳이었다. 란타우 인구의 3분의 1이 살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막 쓰러지지 않을까 싶은 마을의 집들과 작은 다리 하나, 그리고 비 덕택인지 두 세명의 사람들만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타이오에서 내린 사람이 우리들뿐인데다 너무 관광객 같은 티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가 온다며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았던 일행 중 한 명은 벌써부터 후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연경치가 비록 절경은 아니었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친구는 사진을 배운 친구라 더더욱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대나무로 지어진 중국 전통 스타일의 선상가옥이 참 조용한 느낌으로 서 있었다.

▲ 타이오 어촌마을의 다리
ⓒ 이혜경
일단 이곳에서 점심을 하기로 했던 터고 시간도 어느새 12시가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리를 건너 안쪽으로 들어섰다.

한국에서 여행 준비를 할 때 란타우에 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아서 식사에 관한 것은 타이오에 가면 레스토랑이 많다는 것 정도만 알고 왔었다. 하지만 비덕택인지 아니면 주말이 낀 날짜라서 그런지 열고 있는 식당은 불과 두 세곳 뿐이었다.

앞쪽에 대략 메뉴라고 나와있는 것들이 전부 한자로 쓰여있어 우리는 기겁을 했고 일행은 이런 중국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든다며 이따 홍콩섬으로 나가 맥도널드나 가자고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일행은 그래도 이왕 계획한대로 하자며 안으로 더 들어갔고 그곳에서 익숙한 영어 메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주춤주춤했더니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한 분이 나와 영어 메뉴를 들이밀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Fook Moon".

적어도 한마디 정도는 영어를 할 줄 알거라고 생각하고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 직원은 영어라곤 단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 상황이 난감하지 않았다. 메뉴는 누가 해줬는지 모르지만 영어로 아주 잘 표시가 되어 있었고 직원과의 의사소통은 바디 랭귀지가 있었다.

나는 레몬소스가 들어간 치킨, 콘스프, 칠리소스가 된 새우조림을 시켰다. 혹 모자랄까봐 새우조림은 두개를 시켰는데 그건 실수였다.

콘스프는 양푼크기의 대접에 가득 나왔고 치킨이며 새우며 양이 정말 많았다. 덕택에 셋이서 열심히 먹었지만 결국 남겨야 했다. 맛은 정말 좋은 편이었다. 사실 걱정스러웠던 것은 맛이 없지 않을까 했던 것이지만 그 면에서는 분명 성공한 셈이었다. 게다가 그 직원은 우리가 신기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친절한 건지 내내 옆에서 웃으며 무언가를 중국어로 떠들어댔다.

나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간혹 미소로 화답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레스토랑의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그가 나서서 자신이 셔터를 눌러주겠노라고 표했고 우리는 멋진 포즈를 취하며 레스토랑 앞에서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 능핑의 포린사, 옥외좌불상
ⓒ 이혜경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타이오를 나온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랐다.

다시 한번 긴 여행을 해서 능핑이라는 곳에 내린 우리는 높은 산 위에 지어진 포린 사원을 찾았다.

멀리서 보아도 거대하다고 생각이 드는 옥외 좌불상은 180개가 넘는 계단을 하나하나 밟을때마다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옥외 좌불상을 보호하듯 조각되어있는 양옆의 보살들의 모습이 평온하고 신기해 보였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한국의 절에 가면 평온한 마음이 들듯이 이곳 역시 우리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이 옥외 좌불상 옆쪽에서 내려다보는 산세는 그윽한 안개와 함께 환상적인 느낌까지 가지게 해주었다.

이제는 비가 내리는게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안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고 향을 피웠는데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했다. 우리들도 그 안에서 '가족의 건강과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해주십사'하며 소원을 빌었다.

차 시간만 아니었다면 조금 더 머물고 싶을만큼 아쉬운 마음이었다.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에 서 있을 때 한 외국인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옥외좌불상을 배경으로 자신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포즈를 잡았는데 표정이 매우 경건해보였다.

카메라 렌즈로 다시한번 좌불상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온함을 느끼던 나는 덜컹이는 버스안에서 란타우의 자연을 하나라도 더 눈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시끄럽고 늘 북적이는 홍콩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홍콩 사람들은 란타우로 편안한 휴가를 온다고 했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방문하기를 잘 했다는 우리 일행들을 보면서 나 역시 여행은 열심히 걷고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배우게 되었다.

란타우는 지금 개발중이라고 했다. 2005년이나 2006년쯤에는 디즈니 랜드도 들어오고 신도시들도 더 많이 만든다고 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 자연도 그대로 보존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램이 일었고 개발 전에 다시 한번 꼭 들러야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 란타우로 가는길

▒ 센트럴의 각종 페리를 이용할 수 있는 페리선착장에서 페리를 이용하여 란타우로 갈수 있습니다. 오디너리라는 보통선은 1시간 정도 소요되 퍼스트 페리인 고속선은 35분가량 소요됩니다. 
▒ 침사추이 이슬람 사원앞에서 일요일과 공휴일에 포린사로 가는 버스가 운행됩니다. 
▒ MTR 통청역까지 가서 버스를 이용할 수 도 있습니다 
▒ 무이우에서 타이포 어촌마을, 능핑까지는 버스 1번이 운행합니다.

wrhongkong.x-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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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업계에서 근무하면서 이쪽의 이야기를 싣어보고 싶었습니다. 여행지 소개나 안내, 그리고 제가 관심있는 분야인 뮤지컬에 관한 내용들도 써보고자합니다. 좋은 기사와 좋은 정보로 여러분들에게 많은 내용을 전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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