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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공동체 놀이'. 마음껏 뛰고 어울리고 싶어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공동체 놀이'. 마음껏 뛰고 어울리고 싶어한다. ⓒ 이국언
아직 전통적 자연부락의 형태가 남아 있는 이 동네엔 자연스레 낮은 주거비를 찾아 몰려온 일용직들이 많았다. 대체로 인근 하남공단이나 일용직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일부는 소규모의 자영업에 종사하기도 하지만 사는 면면에서는 별반 다를 것 없다.

아동들의 유일한 쉼터

이 동네 아이들에게 마음의 위안처이자 보금자리인 '해돋이공부방'. 97년 운남동성당 한 신부는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많던 이 동네에 노래나 한글교실 등을 운영하는 '해돋이 다락방'을 마련했다. '다락방'은 1년 뒤 지역 아동들을 위한 '공부방'으로 새로 개편됐다. 어른들의 지고 가는 삶의 무게는 마찬가지로 이곳 아이들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욱(초6년)이와 성욱(초5년)이는 형제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치료를 위해 따로 요양중이다. 할머니가 이 형제의 유일한 보호자인 셈이다. 아름(중1) 은희(초3년) 수철(초1)이 세 자매도 산수동 할머니가 오가며 돌보고 있다. 큰 애 아름이는 두 동생들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무겁다. 아무 것도 모르는 동생들은 아직 외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셔 어머니가 병간호를 간 것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방 아이들은 부모가 맞벌이를 나가거나 이혼 등으로 한 분이 안 계신 경우가 많다. 가정해체의 위기는 특히 IMF 이후 생활 전면으로 파고들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봐야 아무도 반겨줄 사람이 없어 오락실을 배회하거나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 피아노다 영어다 수학이다 각종 사설학원들이 넘쳐나도 그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 '해돋이 공부방'은 이들의 유일한 방과 후 쉼터이자 인성수양의 공간인 것이다.

'해돋이공부방' 아이들은 20여명.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13명으로 가장 많고 중학생과 고등학생 그리고 유치원생이 있다. 성당 지원이 있을 그 무렵에는 길 건너 아파트 단지에서까지 이곳을 이용해 그 수가 40∼50여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고 한다.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

공부방의 교사이자 유일한 실무자인 이승희(34)씨. 대학졸업 후 93년 월산동에 있는 '꿈터 공부방'의 자원교사로 나선 것이 계기가 돼 97년부터 해돋이와 인연을 맺었다. 그 사이 결혼하여 딸아이를 키워오다 작년 봄부터 다시 해돋이공부방을 맡게 된 것.

"동사무소에 협조를 구해 관내 생활보호대상 몇 군데에 전화를 했더니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시더군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주민들은 자신의 생활처지와는 달리 그로 인한 사회적 피해의식에 아직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13명이 들어갈 방이 없자 4명은 다른 방으로 밀려났다. 아동법에는 일정한 시설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230여개 공부방은 관의 지원이 없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3명이 들어갈 방이 없자 4명은 다른 방으로 밀려났다. 아동법에는 일정한 시설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230여개 공부방은 관의 지원이 없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이국언
공부방 운영은 초·중등 아동들의 학습지도와 유아들의 탁아사업이다.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대화상대가 되는 것도 중요한 내용이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한테 우선 따뜻이 품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방이 그들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야 하고 공부는 그 다음이라는 것.

이승희씨는 두 여중생이 한 말을 아직 잊지 못한다. 애들은 공부방에만 오면 늘 배고프다고 했다. "너희들 다이어트 하냐"고 하면 아니라고 하면서 다시 맨날 배고프다고 하더라는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고만 해 "내가 너희들 엄마냐 왜 나만 보면 배고프다고 하냐"고 했더니 두 애는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그럼 엄마죠"하더라는 것.

이씨는 자기도 모르게 놀랐고 그 말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다고 한다. '정말 저 애들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쟤들한테는 내가 엄마로 느끼고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는 것.

관 재정지원 없어

겨울방학부터는 부족하지만 아이들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초등학생의 경우 주간 학습은 △월 국어 △화 글쓰기 △수 공동체놀이 △목 영어·미술·과학 △금 수학 등으로 이뤄지는데 이는 전적으로 자원봉사에 나선 교사들의 도움이 크다. 현재 공부방은 교사 7명이 자원봉사로 인연을 맺고 있는데 이들은 학원강사, 대학생, 주부, 일반인 등으로 다양하다.

이 외에 자원봉사에 나선 분들의 손길도 크다. 매달 마지막째주 수요일 아이들의 생일잔치에는 신가운남로타리클럽부인회에서 음식을 마련해 주고, 가톨릭 레지오팀에서는 매주 간식과 청소를 도와주고 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동체 놀이에는 광주금속노조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공부방 운영은 전적으로 후원금에 의지하고 있는데 뜻 있는 분들이 개별적으로 매달 보내오는 후원금과 광산SK CRM센터와 가톨릭사회복지회 등에서 후원을 주고 있다.

이들 도움이 큰 힘이 되고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한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아동복지법'에서는 일정한 시설규모에 한해서만 지원하도록 돼 있어 '해돋이' 같은 형태의 공부방은 비인가 시설이란 이유로 지원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IMF이후 급속한 가정해체 위기속에 공부방은 아이들의 유일한 휴식처이자 내일의 꿈을 키워가는 보금자리이다.
IMF이후 급속한 가정해체 위기속에 공부방은 아이들의 유일한 휴식처이자 내일의 꿈을 키워가는 보금자리이다. ⓒ 이국언
전국 230여곳에 이르는 이들 공부방은 자체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공부방은 정부의 부족한 복지정책을 대신하며 소외된 저소득층 지역 아동들의 삶의 쉼터이자 인성교양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법적으로는 비인가 시설로 간주될 뿐이다.

내일의 푸른 꿈

이날 미술수업은 정물화를 그리는 것. 탁자에는 귤, 사과, 바나나가 놓여있다. 방이 좁아 책상을 따닥따닥 붙여도 13명이 한꺼번에 들어가지 못하자 나머지 4명은 옆방으로 밀려났다. 선생님은 가르칠 욕심에 애를 써 보지만 짓궂은 아이는 벌써 선생님의 목을 올라타고 있다.

가희(초4년)는 소식지에 공부방을 이렇게 표현했다.
"공부방은 즐거운 곳이에요. 그중 글쓰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글쓰기를 하면 두 장 이상은 꼭 해요. 또 수요일에는 요리를 만들어서 나눠먹기도 하고, 남자 선생님께서도 오셔서 5학년 오빠들과 같이 축구도 해요. 우린 피구를 하구요."

공부방은 겨울철 들어 난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중창도 아닌데다 겨울난방비가 여간 곤혹스럽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간을 옮기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공부방이 위치한 곳은 주변에 상가가 밀집해 있는 곳이어서 정서적으로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인이(초3년)는 엄마처럼 미용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내심 6학년 올라가는 성욱 오빠를 좋아한다는 초롱이(3년)는 '지오디'처럼 인기 많은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얼마 전 1박2일로 장성 눈썰매장에 다녀온 것을 자랑하는 현정이(초3년)는 의사가 되겠다고 한다. 현정이가 5살 무렵 신안동 큰 엄마랑 약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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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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