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2003년의 첫 번째 토익시험이 있었다. 작년 10월과 11월에 이어 세 번째로 이 시험을 봤다. 흔히 '1월의 토익'은 쉽다는 것이 정설처럼 되어 있어서, 이번 시험에 나름의 대비를 했고 문제만 평이하게 나온다면 목표하는 점수를 넘을 수도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2월 토익을 접수하지 않는 '배수진'을 치고 이번 시험에 임했다.
그런데 지금 기분은 그다지 썩 좋지 않다.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는데, 기대처럼 체감 난이도는 그다지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토익 관련 카페에 들어가보니 이미 여러 사람들이 답을 복원해 놓은 상태였다. 답을 맞춰보니 예상보다 몇 개 더 틀린 것 같다. '배수진'이 무너진 느낌이다.
토익 성적을 올리기 위해 수험자들이 학원 및 각종 교재, 스터디 모임 등에 투자하는 엄청난 물질과 노력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필자 역시 이러한 일련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사설 학원만 다니지 않았을 뿐 남들이 보는 교재로 '전통적인' 영어 공부를 했다. 교재가 권고하는 대로 듣기평가에서는 '철저히 문제를 먼저 읽고 대본을 듣는'훈련을 거듭했고, 문법 평가에서는 수의 일치/관계사/적절한 품사 등 '한국말로'영문법 공부를 했다.
사실 이러한 학습방법은 어디까지나 'TOEIC'을 위한 공부일 뿐이지, 일반적인 영어 학습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시험을 앞두고 다진 각오는, 성공하든지 실패하든지 지금까지 유지해 온 '토익 공부방식'은 더 이상 계속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토익 공부방식으로 올릴 수 있는 성적에는 도달한 만큼, 이제는 '영어 자체'를 헤쳐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어찌 되었든 3월의 토익 시험을 또 접수해야 할 상황이다. '복학생'이자 '4학년'으로 2003년 1학기 개강을 바라보고 있는 필자에게 부여된 또 하나의 사회적 신분은 '구직자'이기 때문이다. 수년을 생각하고 있던 대학원 진학을 피치 못할 상황으로 인해 당분간 접고 구직에 전념하기로 한 만큼, '높은 토익점수'는 험한 취업시장을 돌파할 수 있는 훌륭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구직을 위해 토익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식 및 세상 보는 눈을 키우기 위해 신문을 기본으로 다양한 서적을 접해야 하고, 컴퓨터 다루는 능력 및 관련 자격증 취득에도 신경써야 한다. 운전면허 취득이라는 혹도 남아 있다. 3월에 복학하면 학점 관리가 또 중요하다. 그밖에도 각종 경력 취득을 위해 뛰어야 한다.
사실 작년 9월에 전역하기 전까지만 해도 복학 이후 그리던 4학년 생활이 이러한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군입대 이전에 실패한 전공학회 모임을 다시 꾸려서 댓거리의 내용을 충실히 다져 나가는 학회 간사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4학년이라고 이곳저곳 바삐 뛰어다니기만 하며 후배들도 챙기지 않고 각종 모임에도 불참하던 기존의 선배들과는 달리, 바쁜 가운데에서도 여유를 갖고 인간관계를 지속시키는 그런 모습으로 있고 싶었다.
그러나 '제도권에의 머무름'을 거부하는 사람이나 '중앙 집중화'에 알레르기성 거부감을 가진 사람, 혹은 현실변혁-혁신주의자가 아닌 이상 '4학년 졸업반'에 부과되는 이러한 일련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있을까? 필자 역시 흐름을 거부하고 뛰쳐나갈 '용기'가 없어 과거 선배들이 갔던 그 길을 조용히 답습하고 있다. 나름대로 절박한 여러 이유들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하기에 2003년은 신분상의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중요한 해인 동시에, 한 해 내내 '답답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시간들이 될 듯 하다.
"면접 때 외국인 평가관 위촉해서 업무 관련 내용이나 회화 능력을 영어로 묻고 답하게 함으로써 '실질적인'영어 능력을 테스트하면 되지 이런 일종의 '족집게식 찍기'에 가까운 토익시험을 계속 봐야 하나"라는, "학교 이름이랑 전공 분야 때문에 실력 발휘할 기회도 제대로 주지 않는게 아닐까"라는, "동아리랑 후배들 챙기고 싶은데 그럴 상황이 안된다"라는, 그런 답답함들 말이다.
2주 전 교원 임용고사 발표가 났다. 주위에 우울한 사람들이 늘어났다(필자는 교육학과 재학중이다). 3주 후면 사법시험 및 행정고시, CPA 등의 1차 시험이 있다. 또 결과의 고저에 의해 일희일비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환희하는 이와 우울해 지는 이, 이 대별되는 이분법을 뚫고 구직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그러나 이왕이면 즐겁게 하고 싶다.
'지금까지 얻게 된 능력을 가지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경쟁터에 임하고 싶다. 그것이 그나마 지금의 상황에서 담보할 수 있는 '미시적 투쟁'이다.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