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이 흉흉하다. 미국이 이라크를 친다고 하고, 북한과 미국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으르렁거린다. 그런가 하면 일본의 수상은 전범들의 위폐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여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또 온 세계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자본주의가 꽃 핀 나라, 미국과 일본이 쩔쩔 매고 있으며, 우리 한국도 실물경기가 나빠 중소기업과 영세상공인들은 초죽음이다.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국가들이 멸망할 거라는 말들도 들린다.
참으로 암담하다. 이 난국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일까? 곰곰히 생각해봐도 묘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스트레스는 결국 내게 병을 불러오도록 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이것을 극복하는 대안을 찾자.
국제적인 전쟁이나 국제경기의 침체는 물론 우리가 어쩌지 못한다. 그렇다고 절망의 늪에서 포기할 수는 없다. 마음을 잠잠히 가라앉히고, 정신적인 무장을 새롭게 할 일이다. 이렇게라도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하늘이 가상히 여겨 도와줄 것이 아니던가?
이 때 다행히도 좋은 음반이 나왔다. 그동안 꾸준히 ‘차와 우리 음악의 다리놓기’ 음악인 다악(茶樂)을 만들어 왔던 “한국창작음악연구회”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6집 음반을 내놓았다.
이 음반의 주제는 “계미년(癸未年) 설날, 삼진날, 단오, 칠석, 동지날을 다악(茶樂) 선율로”이다. 다악(茶樂:Tea Music)을 ‘茶로 이어지는 겨레, 숨결’로 승화시킨다.
한국창작음악연구회 회장이며, 추계예술대 교육대학원장인 김정수 선생은 “새해를 맞고, 씨 뿌리고, 태양을 찬양하는 축제를 비롯해서 우리 겨레가 시간 내지 삶의 율(律)인 순환하는 절기에 따라 차를 즐겨온 이야기를 소리의 율(律)에 싣고, 그 음악의 확산을 통하여 여러분께서 우리 겨레의 숨결을 다시금 느껴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음반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음반에는 5곡의 음악이 들어 있다. 우리가 조상 대대로 지내왔던 명절을 주제로 그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첫곡은 한양대 음대 교수인 이종구 선생의 <미풍(美風)에 실려 온 미향(美香)의 미소 - 설날>이다. 자켓 설명에는 “새해가 밝아오는 설날! 몸과 마음을 삼가 태초의 시간을 만나는 때, 청청한 차 한 잔이 우리 겨레의 차문화를 비롯되게 하신 옛님들을 만나게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소금, 대금, 양금, 가야금, 철현금, 대쟁, 개량방향 등이 합주한다.
두 번째 곡은 추계예술대 교육대학원 교수 겸 서울국악관현악단 지휘자로 활동하는 김성경 선생의 <삼짇날-삼화령>이다. “차를 대하는 겨레의 숨결은 삼월 삼진날 서라벌의 풍류승 충담사(忠談師)의 노래에서 일렁인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들에 산에 꽃들이 피고, 신록이 솟아오르는 삼짇날. 이늑한 봄 햇볕. 세속의 바람이 산천을 순례하고, 자연과 교감하며, 삼화령 미륵님께 차를 올리는 풍경을 밝은 소리로 시작하여 헌다의 경건함을 예불소리, 염불소리로 표현하였다”라고 소개한다.
소금, 대금, 생황, 25현 가야금, 대아쟁, 탬버린, 목탁 등으로 연주한다. 특히 최근 개량된 넓은 음폭의 25현 가야금은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준다.
세 번째는 추계예술대학교 작곡과 교수인 박인호 선생이 작곡한 <단오-25현 가야금 독주를 위한 ‘수리’>이다. 이 곡은 이유나씨가 25현 가야금으로 연주한다.
“차를 대하는 겨레의 숨결은 수릿날의 신록과 태양처럼 거침했고 담대했다. 나는 단오 수릿날 녹음 짙은 신록과 빛나는 태양 아래서의 두리차회나 들차회의 향연을 그려본다. 그 아름다움을 호흡하며, 차를 즐기는 그때야말로 삶의 가장 높은 질을 추구하는 때가 아닐까? 그 때 함께 할 음악이 이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작곡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네번째는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박일훈 선생이 작곡한 음악으로 소금, 대금, 피리, 해금, 양금, 18현 가야금, 훈, 아쟁, 장구의 협연인 <칠석-은하의 ‘할멈, 할배’>이다.
박선생은 어렸을 적 할머니가 짚신 짓는 할배와 길쌈하는 할멈의 은하수 사이에 둔 애달픈 사랑 애기를 들려줬던 것을 기억하며, 길쌈 할멈은 가야금을 타고, 짚신 짓는 할배는 퉁소를 불면서 칠월칠석을 기다린다며 작곡의 의도를 설명한다.
이어서 마지막 곡은 1997년 “KBS 국악대상” 작곡상을 수상한 이준호 선생의 <동지-밝누리>이다. 이 음악은 단소, 대금, 생황, 피리, 아쟁, 해금, 거문고, 징, 레이느틱, 장구, 풍경, 무종, 양금, 훈과 함께 25현 가야금의 합주로 천상의 소리를 만들고 있다.
이 선생은 “차로 이어지는 겨레의 숨결은 고려시대의 밝누리굿(팔관회)에서 온누리로 아롱지고, 빛을 냈다. 작설차를 다려마셨던 남녘의 민초들과 풍류 차인들은 차의 숨결을 오늘까지 잇게 했다. 풍류와 신명이 잇는 차문화는 겨레의 숨결을 밝은 누리로 가도록 한다”며, 이 음악을 만든 배경을 이야기한다.
이제 며칠 뒤 우리 겨레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다가온다. 그 설날을 맞아 그윽한 향과 함께 차를 마셔보면 어떨까? 어수선한 명절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틈을 내어 차음악의 향연에 푹 빠질 때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인제대학교 이광주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명절은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흥겨운 놀이의 날, 그 풍경 속에 차와 소리, 다악(茶樂)이 흐르면 그 훈훈한 아름다움을 어디에 비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