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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티호크 항공모함
키티호크 항공모함 ⓒ fas.org
북한의 핵문제와 미국의 대북강경책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한반도 주변 전력 증강을 추진하고 있어, 그 배경과 의도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러한 미국의 전력 증강 계획이 북한의 사용후 연료봉 재처리 움직임 포착 및 2억달러 대북비밀 지원에 대한 남한의 정치적 혼란 와중에 추진되고 있어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B-1 폭격기
B-1 폭격기 ⓒ fas.org
현재까지 나온 미국과 한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미국 국방부는 B-52와 B-1 장거리 폭격기 24대를 북한과 2천마일 떨어져 있는 괌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는 것과, 일본 요코스카항에 배치된 항공모함 키티호크호이 걸프지역으로 이동할 경우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칼 빈슨호를 한반도 해역으로 이동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또한 미국 국방부가 한국에서 전출 대기중인 미군 2900명에게 6개월간 근무연장을 명령한 것과 토머스 파고 미국 태평양군 사령관이 공군 요원 등 2천 명의 병력 증강을 요청했다는 것도 주목해야할 미군의 동향이다.

일단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 발표가 없기 때문에, 미국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란 힘들다. 따라서 미국의 움직임을 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국내 대다수 언론과 국방부는 '전력 증강'보다는 '전력 공백 메우기'로 보고 있다. 즉 미국이 대이라크 전쟁을 위해 일본 요코스카항에 있는 키티호크호를 걸프 지역으로 이동시킬 계획을 세움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미군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군사력의 이동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미국의 전력 증강 계획이 전력 공백을 메우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키티호크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목적이라면, 다른 항공모함을 배치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하는데, 미국은 항모 배치 외에도 폭격기 추가 배치 및 주한미군 병력 증강 등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십대의 B-1, B-52 폭격기를 북한과 불과 2천마일 떨어진 괌에 전진배치한다는 것은 통상적인 억제 및 전력 공백 메우기를 훨씬 넘어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진의는 무엇일까?

B-52 폭격기
B-52 폭격기 ⓒ fas.org
그렇다고 미국이 북폭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한 군사적 수순으로 전력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대이라크 전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더러,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거듭 천명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정치적 약속을 뒤엎고 북폭을 단행한다는 것은 엄청난 위험 부담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반도 전력 증강 목적과 관련해, LA타임즈는 4일자 신문에서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에 대한 군사 행동이나 긴장 고조가 아닌 현상 유지가 목적"이라고 보도하면서, 미국의 우발계획을 실행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즉, 미국이 대이라크 전쟁에 들어가면, 북한이 '딴 생각'을 하지 못 하도록 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 1차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다른'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선 '현 단계'에서의 북폭 가능성은 배제하면서, 북한이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 등 '다음 조치'를 취할 경우 군사적 선택 폭을 넓이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지난주에 태평양 사령관과 주한미군 사령관 등과 함께 화상회의를 열어 대북한 선제공격 방안을 비롯해 다양한 군사적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미국의 한반도 전력 증강 계획이 북핵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되는 시점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미 12일 특별이사회를 열어 북핵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한다는 방침을 정해놓고 있다. 안보리에 회부되더라도 당장 대북한 제재안이 상정되지 않겠지만, 미국의 군사력 증강은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군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의도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미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가 결의될 경우,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북한이 선언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군사력 증강을 통해 북한이 제재에 대한 보복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 반대 입장 분명히 해야

이번 미국의 한반도 전력 증강과 관련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한미간의 '비정상적인' 의사결정구조이다. 국방부는 미국의 전력 증강 계획이 미국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에, "아무런 정보도 없다"며 미국 측으로부터 이 문제와 관련해 사전에 협의한 적이 없다는 것을 시인한 바 있다.

이는 한반도 안보 정세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군사력 증강이 한미간의 합의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이후에, 한국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시켜주고 있다.

또 하나의 초미의 관심사는 북한의 대응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북한은 미국의 전력 증강을 북폭의 전단계로 인식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9.11 테러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강행하면서 주한미군 전력을 강화시키자, 남북간의 합의 이행을 중단하면서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던 사례도 있다.

특히,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말을 믿지 못해 불가침 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에게, 미국의 한반도 전력 증강은 더욱 큰 불신과 불안감을 줄 것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미국의 전력 증강에 맞서 사용후 연료봉의 재처리에 들어가고 전방배치 군사력의 강화를 비롯한 군사적 준비태세의 강화에 나선다면, 한반도의 정세는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철저하게 '작용-반작용'의 메커니즘을 보여온 북한이 이와 같은 수순을 밟아나갈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위기가 고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직 부시 행정부가 한반도 전력 증강을 결정하지 않은 만큼, 외교적 채널을 동원해 전력 증강을 자제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해야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에게도 사용후 연료봉을 재처리하지 말 것을 거듭 요구해야 할 것이다.

현 정부와 차기 정부가 한반도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근 논란이 커지고 있는 2억달러 대북비밀지원 문제를 이른 시일 내에,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푸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솔직히 해명하고 사과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한다. 분명 지금은 한반도의 위기를 슬기롭게 풀 수 있도록 국민적인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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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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