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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사망사건 관련, 미2사단 앞에서 미군과 시위대가 충돌한 가운데 미군들이 부대를 지키고 있는 모습(2002.6.26)
여중생 사망사건 관련, 미2사단 앞에서 미군과 시위대가 충돌한 가운데 미군들이 부대를 지키고 있는 모습(2002.6.26)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러한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논란을 키워 야기되는 결과에 대한 사려를 갖고 있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이 사안을 침소봉대해 불필요한 논란을 키우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함승희 의원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심각한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말을 미국 행정부 고위 관료로부터 들었다"며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데 비해 우리 정부는 상황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안이한 쪽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함 의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발언이 몰고올 결과에 대한 사려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미국 행정부 고위 관료가 어떠한 근거로, 어떠한 맥락에서 이런 얘기를 했는지 밝혔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와 맥락이 오해와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 여론과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불필요한 논란이 커지지 않도록 미국 관료를 자제시켰어야 옳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 의원의 중대한 실수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미국 '일부' 관료와 정치인, 그리고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론이 마치 미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처럼 일반화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내 일부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제기된 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며, 미국 정부나 정치권 내에서 검토되고 있다면 그 내용은 적지 않게 우리에게도 알려지기 마련입니다.

미국 내 '미군철수론'의 맥락 정확히 읽어야

오늘날 미국 내에서 미군철수론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과거부터 있어왔고, 또한 미국 정부의 정책을 좌우할 만큼 높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 내 일부의 미군철수론의 이유와 배경입니다. 특히 보수강경파들 가운데 일부가 미군철수론을 들고 나온 것은 "북한을 손봐주고 싶은데, 주한미군의 안전이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국 내 대표적인 미군철수론자들인 윌리엄 새파이어 뉴욕타임즈 칼럼리스트나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촛불시위가 있기 전부터, 북핵 문제가 불거지기 전부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북한을 폭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바 있습니다. 최근 이들이 촛불시위를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반미시위로 매도하면서, 미군철수를 들고 나온 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금창리 핵의혹 시설에 대한 북미간의 협상이 한참 진행되던 1999년 3월 2일자 사설에서 느닷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나선 바 있습니다.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이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주한미군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햇볕인가, 달빛인가?"라는 사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과 이에 끌려다닌다는 클린턴 행정부에게 잔뜩 독설을 퍼붓고 나서, 이 신문은 다음과 같은 '예언'을 한 바 있습니다.

"최근 미국은 (한국 정부의) 포용정책에 질질 끌려다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권은 바뀌게 된다. 그리고 미래의 정부는 의회와 국민으로부터 강하게 행동하고 위험으로부터 미군을 철수시키며, 미국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미사일이나 핵무기와 같은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하라는 강한 압력을 받을 것이다."

주한미군철수 반대 모임?

용산 주한미군부대 입구.
용산 주한미군부대 입구. ⓒ 마이너
철없는 것으로 따진다면, 느닷없이 '주한미군철수반대' 모임을 만들어 대국민 서명 운동과 국회에 '주한미군철수반대 결의안'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과 지구당 위원장을 당할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미국 정부에서 미군철수를 추진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정부나 국민 여론이 철수를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모임을 만들었는지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흥미롭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점은 미군철수에 대한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일부 보수강경파들이 실은 철저한 반북주의의 '쌍생아'라는 점입니다. 미국의 일부 보수강경파들은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북한을 폭격하자는 것이고, 한국의 일부 보수강경파들은 미군이 철수하면 한반도가 공산화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들의 이러한 위험하고도 철없는 주장들과, 일부 정치인 및 언론이 이를 침소봉대하는 행태가 확대 재상산되면서 한미간의 핵심적인 의제와 국민적인 요구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한미간의 핵심적인 의제는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SOFA 개정 문제이고, 국민들의 요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씁쓸한 점은, 작년말 대선을 앞두고 들불처럼 번진 '촛불시위'에 편승해 SOFA 개정을 외쳤던 정치인들이, 대선이 끝난 이후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고, 일부는 느닷없이 미군철수 반대를 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정치권을 보고 있으면, 안 그래도 어려운 SOFA 개정이 과연 이뤄질지, 행여나 '미군철수 우려'를 들고나와 SOFA 개정 불가 및 촛불시위 자제 주장이 강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위기 예방 및 SOFA 개정에 힘 모아야

북한이 핵문제 해결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불가침 조약 체결에 대해,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위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는 일부 전문가와 언론의 우려도 근거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반대로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들도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 아닌가 합니다.

자세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이지만,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불가침 조약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는 기계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닐 뿐더러, 단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통해 북한이 얻을 실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탈냉전 이후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공정한 평화 유지의 역할을 한다면 상당 기간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신효순, 심미선 양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해 6월 18일 저녁 미2사단 공병여단에서 열린 '촛불추모행사'에 참석한 미군들.
미군 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신효순, 심미선 양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해 6월 18일 저녁 미2사단 공병여단에서 열린 '촛불추모행사'에 참석한 미군들.
저는 지금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운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제가 이런 주장을 하면 욕먹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저 개인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사족을 달면 한반도 위기가 수습되고 있다는 판단이 들면, 2000년 상반기에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미군없는 한국을 준비하자'를 다시 쓸 것을 약속드립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준비를 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주한미군 존재 그 자체를 놓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위기를 예방하는 데 모아야 할 소중한 힘과 지혜를 유실시킬 때가 아닙니다.

또한 솔직히 우리는 주한미군 존재를 객관적으로, 냉철히,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포함해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주한미군의 득과 실을 정확히 평가하고 이를 공론화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비약을 통해 주한미군 존재 문제로 논란을 벌이는 것은 '생산적인 결과'보다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 마련입니다.

부디 정치권과 언론은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이에 대해 반대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여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 의지(general will)'는 분명 고조되는 한반도의 위기를 슬기롭게 풀고 SOFA 개정 등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바로잡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위기가 수습된 이후에 '두 눈'을 모두 뜨고, 정말 우리의 국익과 가치를 실현하는 데 주한미군을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치열하게 토론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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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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