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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농활을 갔다가 수박농사를 짓던 아저씨에게 출하하기 전까지 농약을 몇 차례나 하는지 물었던 적 있다. 그때 정말 깜짝 놀랐는데, 족히 스무 번은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비온 뒤에는 어김없이 해야한다고 했다.

수박을 워낙 좋아하는 나지만 그때 이후로는 사다 먹을 때마다 개운치 않았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농산물도 이 지경인데, 인스턴트 식품들은 더 말해서 뭐하랴.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어 재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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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병진
물밀 듯 들어오는 수입 농산물에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식품들까지 다량으로 유통되고 그것이 앞으로 우리에게 미칠 영향은 예측불허다. 그런데도 농업도 하나의 '산업'일 뿐이라며, 경쟁력 없는 농업보다는 '핸드폰' '자동차' 하나 더 파는 것이 낫다는 경제 논리가 판치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통탄할 노릇 아닌가. 그런 생각이 병든 식탁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아이들은 김치를 싫어하고 햄버거와 피자, 콜라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내 어린 시절엔 방 한 켠에 고구마를 쌓아두고 겨우내 간식으로 삼는가 하면, 칡을 캐서 입안이 새까맣게 될 때까지 맛있다고 먹었다. 우리에겐 산에만 오르면 널려 있는 게 간식거리였다. 머루, 다래, 으름, 산딸기까지 따로 과자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한데 지금은 어떤가? 방부제, 화학 첨가물, 인공 색소가 들어간 과자를 안 먹고는 아이들이 자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무얼 먹느냐가 우리의 정신도 좌우하기 마련이라는데 그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섬뜩해진다.

이 책의 제목인 <마른 새우>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새우과자를 말한다. 아내는 이 책을 읽더니, 인천 월미도 들어갈 때 탔던 배 위에서의 일들이 생각난다 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재미 삼아 날아드는 갈매기들에게 이 '마른 새우'를 던져주는 걸 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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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던져주는 마른 새우를 먹으려고 무수한 갈매기들이 몰려든단다. 여기에 맛들인 갈매기는 힘들여 고기 잡아먹는 법을 잊어버린다.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마른 새우로 배를 채우려는 데만 정신이 팔려 주위의 친구를 배려할 줄도 모른다.

이 책은 마른 새우에 맛들인 갈매기들이 결국 어찌 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갈라섬 노랑부리 갈매기는 고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마른 새우를 처음 맛보았다. 그때 이후로 마른 새우말고는 어떤 것도 맛있게 보이지 않았다.

아빠 갈매기는 이런 노랑부리를 걱정한다. 알고 보면 노랑부리네가 오래 전에 고모가 살던 선착장 근처에서 갈라섬으로 이사온 것도 마른 새우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걸 모르는 철부지 노랑부리는 아빠의 걱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른 새우를 찾는다.

그러다 아빠 갈매기가 죽고 나서야 고모로부터 그간의 사연을 듣고 마른 새우 대신 물고기와 갯지렁이, 가재를 사냥할 수 있었다. 마른 새우에 길들여진 갈매기들은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다리도 허약해져서 쉽게 부러지고 만다. 마른 새우가 없으면 생존할 능력마저 잃고 마는 것이다. 이러므로 마른 새우는 갈매기들에게 마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무심코 재미로 던져주는 마른 새우 하나가 갈매기들에게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 잘 그려낸 동화이다. 마른 새우 한 가지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 동화는 우리가 무얼 먹고 어찌 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스스로 "먹고살기 힘든 세상"을 자꾸 자꾸 만드는 우리들, 먹을 것이 많지만 정말 먹을 것이 없는 이 시대에 마른 새우에 중독된 우리가 처할 결국이 어찌 될지를 무섭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마른새우

김하늘 지음, 김상섭 그림, 삼성당아이(여명미디어)(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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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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