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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치열하게 삶의 현장을 일구어나가는 그의 생활을 KBS와 MBC 등 여러 언론에서 다큐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수년 전부터 정부와 인권연구소 및 장애재단 등에서 장애극복상의 후보로 지명하기도 하였으나 그는 한사코 고사하고 있다.
고사하는 이유는 장애인의 날이란 것이 오히려 장애 차별을 부각시키는 날이고 또 자신은 하루 하루를 치열히 격전을 벌이며 살아가고, 삶이 계속되는 한 그렇게 도전과 긴장의 연속일진대 극복이란 얼토당토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반문하기를 '육신이 부족한 사람은 정신이 강건하고 외면이 건강해 보이는 사람은 내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결국은 우리 모두가 다 장애인인데 구태여 그렇게 차별시할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차라리 아름다운 사람이라거나 참사람이란 상이라면 몰라도...'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그랬다.
얼마 전에는 작년의 장애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은 중증지체 여성장애인을 만났다. 그녀가 한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다. 그녀는 정말 그 상을 받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를 쳐다보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여성장애인을 생각하면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 큰 도시에서 해마다 그 상은 남자만 받았기 때문에 그녀가 상을 받으면 자신이 받은 것처럼 기뻐하고 춤추는 여성장애 아줌마들.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받은 그녀들의 한풀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을 받고 한참을 여기 저기 불려다니느라 하던 일에 지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장애아동을 훌륭히 키워서 장한 어버이상을 받은 부모의 자식들은 거의가 아들들이다. 남아 선호의 호주제가 뿌리깊은 이 땅에서 여성 차별과 장애인 차별로 여성장애인의 70%가 초등 수준이거나 문맹인 열악한 실정이다. 그래서 그 지방에서 그녀가 상을 받음으로써 나이 많은 여성장애인들은 대리만족을 가진 셈인지도 모른다.
이 땅의 최소외계층이자 약한 계층의 여성장애인들은 더러는 보호를 받지만 보호에 치우쳐 자아의식에 눈뜰 수 있는 교육, 문화, 환경에 대한 접근권도 제한받는 처지이며 때로는 자신을 지키는 힘과 변호할 능력이 없는 그들을 친지와 이웃들은 성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또 지속적으로 반복하기도 하며 일부의 보호시설들은 그들을 보호하면서 영리적인 부를 키워나가고 세상은 그 관습을 묵인하거나 방조하였던 것이며 수년 전부터는 여성장애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 장애인의 날은 두어 달 남았지만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공문을 받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왜냐하면 정말 그 상을 받고 명예와 상금이 삶의 윤활유가 되어야 하는 착하고 좋은 장애인들은 공적 조사에 기록할 만한 찬란한 행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에 따라 결국은 상을 안 받아도 되는 관변단체들끼리 나눠먹기가 되고 그 날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장애인들도 많이 생겼다.
떡과 빵과 음료와 기념품과 경품, 그리고 위안잔치 같은 마술과 쇼를 기다리는 장애인들과 일 년내내 그들이 사는 곳을 둘러보지 않던 온갖 간판급 지도자들이 그 날 하루는 덕성스럽고 자비를 베푸는 표정으로 장애인들과 악수를 하는 것이다.
내 친구는 자신이 장애인으로서 살아간 것이 아니니 그 상의 후보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은 그냥 한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갈 뿐이라고... 그 친구의 TV 프로를 보고 가난과 장애와 환경 탓으로 자포자기하던 많은 이들이 주저앉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꿈과 용기를 다시 챙기게도 되었고 어린 장애인들은 그의 전철을 밟아 장애학교를 다니지 않기도 하였다.
지나간 일이지만 획일화되고 모델화된 정형의 아름다움을 겨루는 미스코리아대회를 반대하기 위해 생겨난 안티미스코리아대회에 팀을 만들어 나가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에서 유를 창출해나가는 각고의 노력과 작은 마음들이 모여서 바다처럼 한 마음이 된 것이란 것을 실증한 것이다.
자신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 시를 낭송하고 십년 동안 시설에 살던 뇌성마비,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한 팔뿐인 아가씨, 음대성악과 출신이지만 갑자기 실명해 삼십 여년을 집에만 있던 시각장애인, 뇌종양 양수술후유증의 여러 장애인들과 비장애 청년과 여대생과 아줌마 등으로 이루어진 수화노래 팀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따로이면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땀을 흘려서 뼈가 녹는 정성으로 시를 낭송하고 수화노래와 율동을 통해 한 마음의 하모니와 꾸밈없는 영혼들의 불타는 아름다움은 천 오백명의 관중과 심사위원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대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부상으로 받은 유럽항공권을 제주도 항공권 수십 장으로 바꾸어 태어나서 한 번도 비행기를 타지 못한 장애인들과 소풍을 다녀왔다는 후일담도 가슴이 따스하게 하였다. 그런 그에게 올해도 어김없이 정부는 장애인의 날에 상을 받으라고 하고 그는 고사하였던 것이다.
장애인의 날이 왜 따로 필요한 것인가... 루즈벨트 대통령의 방한을 기념으로 하여 제정된 장애인권을 위한 상이 본질을 떠나 변질되어 오히려 민주적인 사회발전에 좋지 않다는 지적과 공감대가 장애인계와 인권 및 사회 각 단체에서도 일어나 이것은 하나의 시민단체의 조직적인 운동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있다.
장애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육신이 성하고 좋은 교육과 환경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주체 못하고 가족과 이웃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 바로 장애인이며 육신이 불편하고 환경이 안 좋더라도 가족과 이웃에 사랑과 도움을 나누는 사람이면 오히려 그는 정말로 좋은 참사람이 아닌가.
인권변호사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장애차별법도 급속도로 바른 속도로 만들어져가고 있는 이 시점에 난 '안티 미스코리아'처럼 '안티 장애인의 날'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