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직 소방관입니다. 근무한 지는 햇수로 7년째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여러가지 화재를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한 마디로 불은 무섭고 두려운 공포의 대상입니다. 불이 인류에게 끼친 긍정적인 영향의 이면에는 오늘(18일)의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와 같은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주는 이중성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불이 나서 연기가 자욱해지고, 깜깜해지면 인간은 누구나 이성을 잃은 행동을 합니다. 고도의 흥분상태 즉, '패닉현상'에 빠집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출구도 찾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약간의 빛이라도 보이는 곳을 향해 돌진합니다. 건물 화재의 경우 화장실에 사망자들이 몰려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패닉현상에 빠지면 인간은 몇 가지 본능적인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빛을 보고 돌진하는 지광 본능,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가려고 하는 좌해 본능, 왔던 곳을 되돌아가려고하는 회귀본능, 대중 중에 한 사람이 말하는 대로 따르려는 군중심리 등 입니다. 화재나 여타 비상사태 발생시 무엇보다 패닉현상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스스로 통제해야 합니다.
보통 목조화재의 경우 불이 최성기(불이 빨갛게 활활 타는 시기)에 이르면 불꽃의 내부 온도는 목재의 재질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약 섭씨 1700도 가량 됩니다. 불이 최성기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충분한 량의 산소와 활성화 에너지(불씨 등), 탈 수 있는 물건 즉, 가연물입니다. 여기서 가연물은 탈수 있는 조건을 가진 모든 물건을 의미합니다. 역으로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화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번 대구 지하철 화재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에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으로 판단 됩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현장에서 화재를 진압하다 보면 여러 가지 유형의 화재를 접하게 됩니다. 이론적으로 산소가 없으면 불은 자연적으로 소멸하게 되는데 실제 화재 현장에서 보면 훈소 화재라는 게 있습니다. 훈소 화재란 밀폐된 공간에서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 연기와 불기운만 가지고 있으면서 더 이상 가연물이 타지도 않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러한 경우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 문을 열거나, 개구부를 개방하는 순간 산소가 공급되면서 폭발과 같이 불이 붙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를 바로 백 드래프트 현상이라고 합니다. 현직 소방관들도 화재 현장에서 이러한 현상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산소가 공급됨으로 폭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의 경우 지하철 역사에서 외부로 통하는 몇 개의 환풍구와 기차가 마주 올 때 일어나는 공기의 유동이 산소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해 폭발적인 연소가 일어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 역사에 대한 소방안전대책은 철저히 수립하도록 지도하고 있으나, 열차의 차량에 대한 소방안전대책은 사실 전무한 실정입니다. 객차 안에는 소화기 정도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차량을 소방법으로 규제할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화재 참사의 경우 승객용 시트(의자)가 타면서 엄청난 양의 유독가스를 품어낸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먼저 이 연기에 질식된 후 불에 타서 변을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유독성 연기 속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시안화수소, 질소,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등의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한두 번의 호흡만으로 당장 질식하게 만드는 무서운 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다중이 이용하는 업소에서 사용되는 내장재는 모두 방염선 처리된 물품을 사용하도록 소방법으로 규제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차량의 경우 방염 처리되지 않은 시트(의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피해가 더욱 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방염 처리된 물품일지라도 전혀 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타는 것을 지연시켜주는 기능을 할 뿐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섭씨 1700도의 온도에서 타지 않을 물건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불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립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의 경우 차체가 형편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화재 당시 지하철 내부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고온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주 오는 열차가 불길에 휩싸였을 정도니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화재 현장으로 투입되어 진화작업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보통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사용하는 공기 호흡기는 유독성 연기 속에서 약 16분 정도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16분 이상은 지속할 수 없습니다. 공기가 바닥나면 바로 죽음이니깐요. 그러나 고온의 열기를 차단할 수 있는 방열복은 전 소방대원에게 지급되어 있지 않는 실정입니다.
앞으로 지하철 역사뿐만 아니라 달리는 전동차 안에 대해서도 소방안전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트(의자) 또는 차량의 내장재를 불연재로 사용하도록 한다든지, 차량의 유리를 신속하게 파괴할 수 있는 파괴기구를 비치토록 한다든지, 철로 중간중간에 비상 탈출구를 만드는 것도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대형버스나 붙박이창으로 된 대형 호텔에는 이러한 파괴기구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참사에 희생된 분들에게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