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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반도에 불어닥친 위기

미국의 대이라크 개전의 징후가 현실감있게 다가오면서 국제적 이목이 모두 중동의 위기에 쏠리고 있다. 이에 유가의 끝없는 상승으로 인한 경제불안 등 세계가 모두 때아닌 엄동설한의 추위에 떠는 형국이다. 마치 유명한 시구처럼 봄은 왔으되 봄같지 않다.(春來不似春) 한편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은 북한과 미국의 상호위협론에 따른 날카로운 긴장관계까지 이중의 부담을 떠안고 있다. 아직까지 북한과 미국의 책임있는 정책결정자들은 공식적으로 전쟁가능성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북한은 주한미군의 보유 핵탄두를 들면서 불가침조약이 선결되지 않는다면 적의 위협에 상응하는 자위책 강구가 불가피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북한의 대륙간 미사일이 본토까지 위협하는 상태에서 대북제재를 넘어선 공습가능성도 염두에 둔다는 초강수를 두고 있다. 북미간의 최근양상은 언뜻 보면 간단하다. 즉, 불순한 상대의 의심스런 의도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자국의 힘있는 군사력이란 논리이다. 쉽게 말하자면, '말로 안통하면 힘으로 해결하자'는 얘기다. 이에 관해 역사는 우리에게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말해주고 있다: '외교적 해결 가능성이 증발하면 불화의 종착역은 전쟁에 의한 물리적 청산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에서 이에 대비할만한 위기상황은 없었을까? 만약 있었다면 그때의 정책결정자들은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

2. 고종의 선택 1: 군비증강

쉽게 떠올릴만한 것이 열강의 침략야욕속에서 풍전등화와 같던 한말, 당시 위정자의 정치적 선택의 경험이다. 지금부터 정확히 1세기전을 기록한 고종순종실록 1903년 2월의 역사를 펼쳐보자. 우리는 당시 고종이 열강의 침탈속에서 국가위기의 방어책으로 군사력 배양에 전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02년부터 전국을 휩쓴 한발과 이에 따른 세수부족으로 중앙정부의 재정이 고갈된 상태에서도 고종은 근대적 상비군 설치에 절치부심하고 있었다. 1903년 연초부터 함경도의 대기근에 대한 보고가 빗발치는 와중에서도 그는 2월 20일 혼성여단(混成旅團) 설치의사를 천명하고, 28일에는 이에 관한 칙령을 반포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그의 시도는 효과가 있었을까? 불과 석달이 채 안된 같은해 5월 18일 혼성여단은 고종의 명으로 해체하고 만다. 자신이 추진한 군사력 증강책으로서의 중앙상비군을 스스로 포기할 수 밖에 없을만큼 이를 뒷받침할 재정적 한계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런 처지에서 차관공여자인 외국공사들은 지속적으로 이 문제의 시정을 요구했고 고종은 결국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강한 군사력에 대한 열망과 이를 지탱할 역량의 괴리가 빚어낸 씁쓸한 촌극이라 할 수 있다.

3. 한반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

그렇다면 한반도는 국제사회에 어떠한 모습으로 비추고 있었는가? 1898년 1월 11일 동경주재 오스트리아공사 비덴브룩(Wydenbruck)의 본국정부 보고서는 한반도의 국제적 운명을 논하고 있다. '국제열강에게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늘 불화의 여신 에리스(Eris)가 던져놓은 황금사과이다.' 이렇듯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는 우리의 유동적 자유의사를 제약하는 고정된 불변조건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한반도의 국제적 생존양식에서 우리를 둘러싼 다수의 강자들을 제어할 수 있는 수단으로 결코 군사력을 절대시할 것이 아님은 자명해진다. 따라서 미국의 대이라크 문제 접근방식이 북한문제 해결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해진다. 비록 미국의 일방주의적 독선이 맹비난 받고 있지만, 이라크에 대해서 끝내 유혈적 해결수단을 불사하려는 듯하다. 반면 한반도의 긴장상황은 양자만의 그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주변강대국의 실타래같은 이해관계가 이를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난맥상이야말로 평화적 외교력의 지혜가 빛을 발휘할 역설적 호조건이다.

4. 고종의 선택 2 : 국제안보 보장

그렇다면 마치 북한이 미국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북미불가침조약체결과 같은 쌍무적 외교합의는 군사적 긴장해소에 복음이 될 수 있을것인가? 결론을 앞서 말한다면 외교문안의 효력은 현실적인 국력의 지원에 조응될 때만 의미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1896년 고종이 민영환을 러시아에 밀사로 파견하여 비밀보호조약을 강력히 요청했던 실례를 떠올릴 만하다. 당시 러시아는 양국관계의 안정성을 이유로 완곡하게 거절한 바 있다. 실상 아관파천 이후 한반도위의 국제적 역학균형은 러시아쪽으로 급속히 쏠렸다. 이런 국제환경에서 양국의 쌍무적 호혜성을 근본원칙으로 하는 근대적 조약체결이 과연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설사 러시아와 조선간의 독립보장조약이 체결되었다고 하자. 하지만 그 세부조항이 타국과의 기존 조약의 내용과 충돌할 경우 러시아의 외교적 판단의 우선순위는 무엇에 근거하겠는가. 그것은 오직 자국의 현실적 이해관계에 달려 있을뿐이다. 이는 1904년 러일전쟁의 참화앞에서 고종이 알렌(Allen)을 통해 미국을 상대로 시도했던 외교적 노력의 실패에서도 증명된다. 조미수호조약에 명시된 거중조정의 의무또한 강자의 편의적 해석앞에서는 무참히 묵살된다. 즉, 북한과 미국의 상호불가침조약은 호혜성의 원칙이 강조된다면 미국에게 거의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설사 체약된다 하더라도 그것의 실효적 기능성은 외교문안의 문구와 별개인 현실적 국력과 이해에 호응할 것이다.

5. 외교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일국의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정책결정자의 시각에는 두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하나는 실제 국제정치현상을 보여주는 현실세계이며, 또 하나는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의 세계이다. 예측불허의 국제정치적 기류가 한 나라의 눈앞에 드리우고 있다면, 그 나라의 정책결정자는 무엇을 근거로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겠는가? 그것은 오직 과거의 시행착오가 알려주는 역사적 교훈을 음미함으로써 획득되는 정련된 인식틀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택의 딜레마에 휩싸인 현재와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미래보다는 아쉽게 지나간 과거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격랑을 헤쳐나가는 혜안은 우리의 외교사를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고찰해보는 겸손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국제관계의 실재상을 구명하는 외교사의 의미는 단순히 과거경험의 나열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는 국제정치구조의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여 현재의 구조가 갖고 있는 특징을 이해하게 한다. 나아가 미래 국제 정치사회의 난점을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러한 사려깊은 노력은 우리의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고 미래의 삶을 보다 자율적으로 튼실하게 가꿔나가는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숭실대학신문 2003년 2월 21일자 학술면에도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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