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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
일본의 국민소설가 시바료타로가 쓴 <항우와 유방(전3권)>은 2000년 전, 중국대륙을 무대로 펼쳐지는 영웅들의 이야기다. 중국역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유방과 항우에 대해서만은 알고 있을 만큼 두 영웅은 유명하다. 두 인물의 유명세에 톡톡히 공헌을 한 것이 바로 그들의 성격이다.

유방을 ‘물’이라 하면, 항우는 ‘불’이고, 유방을 ‘부드러움’이라 하면, 항우는 ‘강함’일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영웅은 곧잘 두 개의 극단적인 리더십의 상징으로 규정되어진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 두 가지 통치 스타일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소설 속 항우와 유방을 만나는 일은 사회조직 안에서 접할 수 있는 현실의 리더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들 또한 변형된 항우와 유방일 것이다. 이 소설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항우의 또 다른 이름, 독선적인 카리스마

ⓒ 김태우
원전 <초한지>의 시바료타로 버전인 이 소설에서 항우는 독선적인 인물로 나온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리하여 <초한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가장 지략이 뛰어난 모사 범증마저도 그의 곁을 떠나게 만든다. 그가 유일하게 숭상하는 가치는 용맹함이며, 물러서지 않는 임전불퇴의 정신뿐이다. 이러한 정신을 제외한 다른 어떤 가치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항우는 천하에서 가장 용맹한 장수이다. 마지막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위기에 처해 죽음을 택할 때조차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자신을 제외한 그 어떤 사람도 그를 죽일 수 없는 듯이 보인다.

항우의 매력은 그가 처한 위기 상황에 대처할 때 뿜어져 나온다. 그는 상황을 판단하고, 그 상황을 피해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리한 상황을 자신의 용맹함으로 단박에 역전시켜 버린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항우는 약간 미화, 과장된 요소가 있어 보인다. 역사조차도 인간이 쓰는 것이니까.

소설 속 항우는 잔인하고, 매정하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보면 그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인간이다. 어쩌면 그가 유방의 군대에 목숨을 잃은 것은 그가 진정한 의미의 장수였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현실은 모략과 배신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너무 곧았고, 융통성을 발휘할 줄 몰랐다.

그가 자신의 부하들과 조금만 더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공정하게 상을 베풀 줄 알았다면 천하는 틀림없이 항우의 손아귀에 들어왔을 것이다.

유방의 또 다른 이름, 현대적인 리더십

ⓒ 김태우
소설 속에서 항우가 미화되는 반면에, 유방은 자주 비하 된다. 그는 얼치기 소인배로 묘사되고, 하늘의 운이 닿아 다른 사람의 힘에 의해 저절로 신분이 상승되는 것처럼 묘사된다. 유방은 겁쟁이고, 비겁하다. 하지만 유방은 솔직하고,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

유방의 장점은 그가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의 편이 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 그는 귀가 얇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결국 항우와 유방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유방은 신화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모든 방면에서 뛰어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의견과 재주를 높이 평가했다.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해볼 때, 이러한 장점은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에서도 이러한 리더를 만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다.

유방의 리더십은 현대적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천하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적 자원을 활용하여 천하를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임무를 맡기고 진행상황을 체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대적인 리더십이 아닐까. 거기에 신하를 믿고 의지하는 마음까지 더해서.

영웅은 없다. 좋은 리더십만 있을 뿐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웅도 인간이다. 그리고 사실 그저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다만 평범한 사람들보다 보다 높은 이상과 강한 의지력을 가진 사람일 뿐이다. 완전한 인간의 전형으로서의 영웅은 없고, 좋은 리더십만 있을 뿐이다. 결국 영웅이라는 칭호는 좋은 리더십의 훈장일 뿐이다. 그리고 강하게, 혹은 약하게 할지라도 원활한 의사소통과 신뢰만이 그 리더십의 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항우와 유방 -상

시바 료타로 지음, 일각서림(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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