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가수 윤도현씨와 함께 성공회대학교에 다녀왔다. 올 3월부터 이 학교 신입생이 되는 그는 수강신청 등 앞으로 학교생활을 상의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고, 나는 그의 학교생활이 궁금하던 터라 동행을 자처했던 것이었다.
학교에 도착한 뒤 매니저와 함께 스케줄을 조정하고 담당교수와 함께 선택, 필수 강의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면서 첫 학기 강의시간표를 짜는 그는 듣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영락없는 새내기였다.
학교 연구실을 나오면서 내친김에 동아리까지 가입하자며 교내 ㄺ밴드 연습실로 쳐들어가(?) 때마침 그의 곡을 연습하는 나이 어린 선배들을 놀라게 하지 않나, 우격다짐으로 오디션을 보고 가입을 결정해 버리질 않나, 급한 성격 하나는 알아주어야 할 것 같다.
주변에 성격 급한 사람들이 있으면 알겠지만 사실 이런 사람들은 화도 잘 내고, 곧바로 후회하기도 한다. 또 마음도 여려 주변 사람들이 난감해질 때가 종종 있다.
"이거 바보 아냐?"라고 여겨질 정도로 단순·고지식한 윤도현
지난 연말 대선과정에서 개그맨 심현섭씨의 무책임한 말에 대해 분노하던 그가 며칠만에 소송만은 피하고 싶다거나 개인적으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에 주변에서는 일반인도 아닌 사람이 이런 일로 이미지가 나빠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사실무근인 게 확실한데 좀더 세게 밀어붙여야지 않느냐고 부추겼지만,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라면서 '나만 아니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으며 빤히 쳐다보는 그는 '이거 바보 아냐'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단순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급하면서 단순하고 고지식하기까지 하며 여하튼 이모저모로 참 안타까운(?) 사람이다.
10억대 CF 이야기나, '오 필승코리아'와 관련된 이야기들, 잦아진 방송활동과 관련된 이런저런 말들은 그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그럴 때마다 흥분하고 분노하고 이내 이해해버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여년 된 그의 음악 이력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는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고, 폭발적인 인기는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몇몇 매니아들만 좋아하는 가수도 아니었으며. 늘어나는 음반판매량, 점점 많아지는 관객들로 매년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솔직히 필자는 오히려 월드컵이 아니었다면 윤도현씨가 좀더 천천히 그리고 완만하게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고 특혜니 수혜니 하는 비아냥거림과 남의 노래를 강요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필자는 적어도 윤도현씨가 인기에 대한 욕심이나 불안보다 자신의 음악과 무대를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월드컵기간 중 어느 날 갑자기 광장에 중심에 서게 된 그가 획기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에 예정된 결혼식을 올리고 한갓지게 신혼여행을 가버린 사건(?) 때문이었다.
월드컵때 뜬 '윤 밴', 한갓지게 신혼여행을 가버린 사건
'오 필승코리아'도 마찬가지,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그는 이 노래를 부르기 꺼려한다. 자기 노래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이다. 월드컵 이후 이 노래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있었지만 애써 사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가만이나 있지 '오필코'가 자기 곡 아니라고 동네방네 이야기할 것까지 없는 일인데 뭘 그리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지….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닌다는 게, 더 이상하다며 만류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는 이른바 '떴고' 아직도 그런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이 출연한 CF가 방송되는 공항에서 신기한 표정으로 TV를 쳐다보기도 한다. 또 동네 슈퍼도 이제는 혼자 못가고, 신문에서도 하지 않은 말이 나오곤 한다. 물론 그때마다 버럭 화내고 이내 후회하는 일의 연속이다.
지난 연말 공연때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덕분에 이제 먹고 살 만해졌습니다." 이젠 더 이상 배고프지 않고 편하게 음악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단다. 하기야 의류 CF부터 핸드폰까지 얼추 잡아도 서너 개는 족히 넘는 그의 광고들은 그를 생활고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을 것이다.
얼마 전 어느 문화평론가는 자신의 칼럼에서 윤도현씨가 너무 쉽게 자본의 유혹(?)에 빠져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바 있다. 그렇게 혹자는 말한다. 그의 상징과 이미지가 저 신자유주의의 전위, 자본의 얼굴을 가려주는 가면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그게 인권 가수, 의식 있는 가수가 할 일이냐고, 해도 가려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가 자본의 유혹에 빠져 정체성을 잃고 있다고?
하지만 윤도현은 가수다. 나는 그가 인권운동가인지 의식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가 가수임은 확실히 안다. 사람들은 그의 노래에서 사랑을 경험하고 이별을 아파하고 때때로 시대를 고민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그가 가수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 자신이 '오늘부터 나는 재벌의 광고는 출연하지 않겠다'든지 '앞으로 노조를 탄압하는 기업의 광고'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 전에는, 그에 대한 이런 유감은 객쩍은 소리하고 생각한다.
그는 운동가도 정치인도 아니다. 자, 나는(우리는) 공익을 위해, 인권을 위해, 맑고 투명한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데 왜 너는 애먼 짓을 하고 있느냐고? 너에게 부여된 상징과 이미지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이런 강요들이야 말로 그를 화나게 하고 그의 음악을 온전히 음악으로만 듣는 사람들 우리들의 감상을 방해한다. 그 역시 자신을 가수로서, 그리고 순수하게 그의 노래로 평가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평양공연에서 흘리던 눈물은 통일에 대한 염원이 아니라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었다고 말하는 등, 솔직히 좀 실망스런 구석이 있는 '윤도현'.
연말 내내 미국의 오만함을 성토하며 전국방방곡곡을 다니며 공연하고 광화문에서 돈 들여가며 촛불콘서트를 열던 '윤도현'.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김제동과 함께 시답잖은 사연들을 읽으며 키득거리는 그가 싫지 않은 건 그가 가수이기 때문이고 난 그의 노래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탁현민 기자는 문화기획자입니다. 탁 기자는 참여연대 문화기획팀간사, 비영리단체 문화공연기획자로 활동하다 대중음악 판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음반제작자단체 음반기획제작자연대 간사로 일하고 있으며 공익문화기획센터 기획실장, 오마이뉴스 문화사업팀장, 케이엠티브이뮤직퍼블리싱 프로듀서를 거쳐 현재 다음기획 컨텐츠 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