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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보길면 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군수와 군민과의 대화' 시간이 있었습니다. 나는 보길도 상수원 댐과 관련한 군수의 입장을 듣고 싶어서 난생 처음으로 그런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군민과의 대화라고 이름은 걸었으되 대부분의 시간은 군정홍보에 할애되었고, 군민과의 대화 시간은 극히 짧았습니다. 대화 시간이라고 했으나 그 '대화'는 참으로 이상한 대화였습니다. '대화'라는 것이 보길도 주민 서너 사람의 질문을 군수가 일괄적으로 듣고 나서 짧은 답변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주민들은 현안에 대해 주고받으며 토론하는 것이 대화라고 생각하고
나왔을 텐데 군수의 대화에 대한 생각은 달랐던가 봅니다. 대화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른 사람들끼리 대화를 하겠다고 마주 앉아 있는 것은 얼마나 난감한 일 인지요.

이 자리에서 보길 상수원대책위원회 조정옥 위원장은 부용리 상수원 댐 증축에 대한 보길면 주민들의 반대 입장을 전달하고 김종식 완도 군수에게 답변을 요청했습니다. 몇 개의 질문에 군수는 답했으나 답변들은 하나같이 초점을 벗어 낫습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답을 피해간 오답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책 위원장은 "수 백 억의 예산을 들여 고산 윤선도의 문화 유적지 복원사업이 진행중인 부용리에 댐을 건설하는 것은 모순이며 고산 유적지의 훼손을 가져 올 것이다. 돈을 들여 건물 한 두개 새로 짓는다고 문화유산이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고산이 사랑한 부용리의 자연 환경자체를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군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군수는 "물 문제가 가장 큰 문제다. 국가적으로도 큰 문제다. 지금은 물 전쟁 시대다. 물이 없으면 개발도 관광객 유치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편의 시설이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물이 확보 되야 한다.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댐 건설이 필수적이다. 환경을 보전하며 관광객을 유치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 복원과는 별개의 문제다. 물 전쟁의 시대에 모든 다른 문제는 부수적인 것"이라면서 댐 건설을 강행할 뜻을 밝혔습니다.

지금 같은 물 전쟁의 시대에 수자원 확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적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 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군수의 말은 "고산 윤선도의 문화유적지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물을 제공하기 위해 고산의 문화유적지에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얼마나 모순적인 말입니까, 더구나 다른 대안까지 있는데도 말이지요.

게다가 보길도 주민들의 소득은 수산물 양식 등으로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그러니 굳이 생계를 위해 관광객들에게 묵을 맬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보길도가 관광객들이 던져 주고 가는 푼돈만으로 생활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복된 자연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굳이 문화유적과 자연 환경을 훼손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군수는 주민들에게 관광객 유치에 목을 매라고 호소합니다. 보길도가 주민들을 위해 있는지 관광객을 위해 존재하는지 군수에게 되묻고 싶을 뿐입니다. 게다가 문화유적의 보존보다 문화재를 훼손하더라도 관광수입의 증대가 우선이라는 군수의 경제제일주의 사고 방식에는 실망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대책위원장은 또 물었습니다. "섬 지역의 댐이라는 것은 우기에 잠깐 물을 받아 가둬 놓고 쓰는 것이기 때문에 가뭄에는 속수무책이다. 우리는 이미 기존의 댐이 극심한 가뭄에 바닥을 들어낸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다들 속수무책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었다. 그러므로 댐은 수자원 확보나 가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댐 증축 대신에 가뭄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이 가능하고 건설비용도 저렴한 바닷물 담수화 시설로 대체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군수는 답했습니다.
"해수 담수화 사업은 어렵다. 담수화 시설은 면 단위 광역 상수도같이 큰 사업은 가능하지 않다. 인구가 적은 낙도에나 가능한 사업이다. 완도지역에서도 낙도에 시설을 하려 했으나 물 값이 비싸다는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 된 바 있다. 아무튼 광역 상수도 문제는 해수 담수화로 해결할 사항이 아니다. 상수원 문제로 지역민들 간의 갈등이 일어나 대외 이미지에 손상이 없도록 조용히 대처해 달라."

군수는 담수화 시설은 인구가 아주 적은 조그만 섬에나 쓰는 시설이지 보길도 같이 큰 섬에는 가능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그렇다면 중동 여러 나라들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수담수화 시설을 건립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나라의 두산중공업 같은 회사는 뛰어난 기술력으로 그런 나라들에 담수화 시설을 수출하고 있으며 이미 세계 담수화 시장의 29%까지 장악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두산중공업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쇼아이바에 하루 1억 갤런, 총 46만 톤의 담수량, 하루 120만 명분의 물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해수 담수화공장을 건설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도 군수는 기술 부족으로 보길도 같이 '큰 섬'은 바닷물 담수화 시설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이미 제주의 우도, 전남 신안군의 홍도, 통영시의 욕지도 등 크고 작은 여러 섬들에 담수화 시설이 들어서 가동되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보길도 같은 큰 섬의 상수도로 해수 담수화 시설이 적합하지 않다는 군수의 대답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군수는 어떻게든 댐 증축 공사를 관철시키기 위해 해수 담수화 시설이라는 대안 같은 것은 고려할 생각도 없는 듯 합니다.

그렇게 보길도 주민과 완도군수와 '대화'의 시간은 끝이 났습니다.
보길도 상수원 댐 증축 문제는 바닷물 담수화 시설이라는 더 좋은 대안이 있기 때문에 대화로서 충분히 풀 수 있으리라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문득 합리적인 판단이 작용하지 않는 보길도 상수원 댐 증축 공사의 저편에 어떤 부조리한 이면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보길면 사무소를 빠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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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섬 활동가입니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당신에게 섬><섬을 걷다><전라도 섬맛기행><바다의 황금시대 파시>저자입니다. 섬연구소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islan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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