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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 이후 거의 글이라는 걸 쓰지 못했다. 잡문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고 겨우 <오마이뉴스 '2월 22일 상'을 받고>라는 '알림 글' 하나 꾸려서 홈페이지에 올리고 그것을 그대로 오마이뉴스의 내 시리즈 코너에 올렸을 뿐이다.

도대체 글이라는 걸 쓰고 싶지가 않았고, 아예 쓸 수도 없었다. 명확하게 잡히는 생각이 하나도 없었고,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한가하고 사치스런 일로만 생각되었다. 어떤 공동(空洞)의 세계를 지향 없이 부유하는 심정이었다. 텔레비전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게 일이었고, 어딜 가나 기가 막혀하고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한숨쉬며 애통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참변을 당한 사람들과 유족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를 하는 것뿐이었다. 일시적인 성금 행렬 동참과 기도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묘한 무력감과 인간의 한계 같은 것을 절감시켜 줄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참변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과 유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은 무력감 속에서도 나를 더욱 기도하게 만들었다. 내 건강보다도 기도를 위해 매일같이 이른 저녁에 백화산을 올랐고, 보통 때보다도 백화산에 체류하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그전에는 백화산을 오르내리는 시간이 길어야 1시간 30분이었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 후에는 2시간을 채우는 날이 많았고, 산을 오르고 내리며 하는 묵주기도도 20단에서 25단으로 늘게 되었다.

참변을 당한 영혼들과 유족들을 위해 기도를 한다는 것이 너무도 추상적인 일로 느껴지고, 도대체 실제적 가치가 무엇이며 무슨 의미일까라는 생각에 기도를 멈추고 한숨쉬는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도뿐이라는 그 엄연함 속에서 더욱 열심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기도만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다. 기도를 통해 그들의 슬픔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 내가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는 신앙인의 처지라는 것은 생각할수록 고맙고도 다행스런 일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대구 지하철 참사로 숨진 영혼들과 유족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하느님께 빌고 또 빌 것이다.

어제는 새로 출범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러 간 집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조각 발표를 보는 순간 성호를 그었다. 각료 인선 배경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직접 설명을 들으며 신선하면서도 즐거운 감동을 맛보았다.

새로 입각한 각료들 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도 있었다. 문화관광부 장관이 된 이창동씨다. 그는 나와 같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작가로, 나보다 문단 등단 한해 후배가 되는 사람이다. 나는 1982년에 등단을 했고, 그는 다음해인 83년에 문단에 나왔다. 80년대 초에는 문학동네의 이런저런 행사에서 그와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도 열심히 소설가로 활동하다가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던 그가 마침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장관 자리에 올랐다. 그의 그런 눈부신 입신을 보자니 문득 부러운 생각도 들고, 상대적으로 한결 졸아붙는 듯한 내 초라한 몰골에 대한 속물적인 비애도 한순간 가슴을 저미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가 장관직을 아무 탈 없이 잘 수행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힘껏 추동하면서 문화 예술계 전반에 만연해 있는 진부 고루한 타성들을 타파하며 새로운 가치관과 활력의 물결을 잘 이룩해 가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 시점에서는 다수 국민들의 '축복'이 모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참으로 명료했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변화와 새 활력의 물결은 참으로 필요하고, 그것은 이미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명제가 되었다. 그 명제를 우리 사회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모든 국민의 열린 마음과 화합의 자세가 중요하다.

생산적 가치를 지니는 정당한 비판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부정적으로만 보는 진부 고루한 타성은 국민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새 정부의 출범을 축복하고, 새 정부가 나라와 민족과 사회 전반의 질적 발전을 위해 힘차게 일을 잘 하도록 격려하는 아량쯤은 누구나 가져야 하는 국민의 몫이다.

새 정부에 의해 창출될 수 있는 것,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진부 고루한 타성들을 타파하고 극복하는 일은,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무책임하고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최선의 방책이다.

나는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도 새 정부의 출범을 진심으로 축복하며, 노무현 대통령과 새 각료들을 위해서도 온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나는 한 시절 시골구석의 작은 지성인으로서, 문단의 변방을 지키는 문인으로서,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소박한 생활인으로서 하루하루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내 몫의 삶임을 요즘 새삼스럽게 절감하며 되새기고 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삶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다시 깨닫고 있다.

매일매일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몫이다. 여러 가지 악조건과 초라한 형색 속에서도 내가 이 세상과 다른 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산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신의 축복이요 은총일 것이다.

얼마 전부터 백화산의 등산로를 바꾸었다. 바꾼 이유는, 지금 밟고 있는 등산로에서는 도중에 건너편 가운데 산자락의 한 곳에 있는 무덤 하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무덤이 누구네 묘인지는 모른다. 그 무덤이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고, 누가 묻혀 있는지는 더더구나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산을 오르고 내리며 그 무덤이 훤히 가장 잘 보이는 지점에 잠시 멈추어 서서 그 누군지 모를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곤 한다. 그리스도교 밖에서 하느님을 모르고 믿지 않고 살았을 지도 모르는 그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런 믿음의 세계를 포유하고 있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새삼스럽게 다행스러운 마음을 갖곤 한다.

내가 밟는 등산로에서 건너편 가운데 산자락의 무덤을 볼 수 있다는 것, 내 등산로와 그 무덤이 서로 떨어진 거리에 있되 서로 마주 볼 수 있다는 것 역시 이 세상의 조밀한 인연의 톱니바퀴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내가 그 무덤의 임자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가 영혼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덕을 본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나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이요 은총일 것이다.

나는 비록 미욱하게나마 지천명의 세월을 살면서 오늘도 소박한 내 몫의 삶을 헤아려본다.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며 함께 슬퍼하고, 변을 당한 영혼들과 유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빌고,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축복하며 5년의 훌륭한 성과들을 기원하고, 매일같이 산을 오르고 내리면서 등산로 건너편 산자락 무덤의 임자를 위해서도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내 몫의 삶임을 다시 되새긴다.

내 삶의 위치에서 힘껏 좋은 세상, 참된 미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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